성경

제목
“그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

본문
고린도전서 15장 3–11절

서론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일상에서 “인격적으로 대한다”, “비인격적으로 대한다”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이 무엇인지 훨씬 분명해집니다. 비인격적 관계는 상대를 하나의 ‘수단’처럼 대할 때 생깁니다. 마음은 무시된 채 결과만 바라보고, 사람을 감정 없는 기계처럼 다루는 관계입니다. 겉으로는 접촉이 있어도 마음은 전혀 닿지 않습니다.

반대로 인격적 만남은 마음이 마음을 만나는 경험입니다. 상대를 존재로 받아들이고, 그의 말에 귀 기울이고, 마음이 깊이 이어지는 관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말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 자체가 인격적이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막연한 힘이 아니라 말씀하시고, 기뻐하시고, 슬퍼하시고, 우리와 관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설명하는 대상’이 아니라 ‘만나는 대상’입니다.

본론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의 장일 뿐 아니라, 바울의 고백을 통해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네 단계로 보여줍니다. ①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시는 은혜(5–8절) ②내 존재가 하나님 앞에 드러나는 자리(9절) ③은혜를 받아들이는 의지적 결단(10절 상) ④삶의 방향이 바뀌는 열매(10절 하)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마지막에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이 말은 하나님이 한 사람의 삶 속으로 들어오셔서 그의 인격을 만지고, 방향을 바꾸신 사건을 압축한 고백입니다.

Ⅰ. 인격적 만남은 하나님이 먼저 나를 찾아오시는 은혜입니다(고전 15:5–8).

바울은 반복해서 말합니다. “보이셨고, 보이셨으며…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이 고백은 신앙이 내가 하나님을 찾아간 여정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내 인생을 찾아오신 은혜임을 선언합니다. 성경은 이를 분명히 말합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 15:16),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눅 19:10), “내가 문밖에서 두드리노니…”(계 3:20) 말씀 한 구절이 마음을 찌르고, 설교 한 문장이 내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들리고, 양심이 뜨겁게 흔들리는 순간,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나에게 보이신 순간’입니다.

베드로와 제자들, 오백여 형제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실제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부활 사건 이후 회심했습니다. 그가 본 것은 육체적 예수님이 아니라, 영광의 현현(계시)이었습니다. 사도행전 9장의 다메섹 도상에서 빛과 음성으로 주님을 만났고, 그 만남이 그의 인생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합니다. “나중에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방식은 달랐지만, 만남의 본질은 동일한 ‘부활의 주님’이었습니다.

Ⅱ. 인격적 만남은 내 존재가 하나님 앞에서 드러나는 일입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직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다.”(고전 15:9) 여기서 중요한 점은, 바울이 오랫동안 자기를 분석하며 자기 죄를 찾아낸 것이 아니라, 빛 되신 주님 앞에 서자 감추어져 있던 존재의 실체가 드러났다는 사실입니다.

어둠 속에서는 옷에 묻은 작은 얼룩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강한 빛이 비치는 순간, 보이지 않던 먼지와 자국들이 그대로 드러나듯,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는 우리의 내면이 정확하게 드러납니다. 가식도, 포장도, 자기합리화도 통하지 않습니다. 그분 앞에 서는 순간,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하게 됩니다. 성경은 이 동일한 경험을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증언합니다.

1. 이사야의 무너짐(사 6:5)

이사야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자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라고 외칩니다. 예배 인도자이고 선지자였던 그도,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는 자신의 부족함과 부정함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인간을 파괴하지 않지만, 교만을 무너뜨리고 숨겨진 실체를 드러내는 빛입니다.

2. 베드로의 무너짐(눅 5:8)

베드로는 기적의 그물을 보고 감동한 것이 아니라, 그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의 거룩함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는 평생 어부로 살아왔고, 나름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거룩함이 가까이 오자, 겉으로는 보이지 않던 자기 중심성, 완고함, 교만이 드러난 것입니다.

3. 말씀의 빛(히 4:12–13)

히브리서는 말씀의 기능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며… 그 앞에 드러나지 않음이 없다.” 말씀은 단순히 지식을 주는 텍스트가 아닙니다. 말씀은 우리의 내면을 해부하는 빛입니다. 사람에게조차 말하지 못한 동기, 나도 모르게 쌓아 둔 두려움, 신앙의 옷을 입고 숨겨 둔 죄책감, 말씀의 빛이 비치는 순간 그 모든 것이 드러납니다.

1) 말씀 앞에 설 때 일어나는 실제 경험들: 우리가 말씀을 읽다가 갑자기 마음이 찔리고, 숨겨진 죄가 떠오르고, “이 말씀이 내 이야기다”라는 깨달음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힘겨운 시즌에 시편 23편을 읽는데 설명할 수 없이 눈물이 흐를 때, 관계 갈등 후 마태복음 5장을 읽다가 마음이 콕 찔릴 때, 누가복음 15장의 탕자를 읽다가 “저게 바로 나구나…” 하는 자각이 올 때, 시편 139편을 읽는데 하나님이 나의 생각을 다 알고 계심이 두렵고도 은혜롭게 다가올 때, 그 순간은 단순한 감정의 폭발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빛이 내 영혼을 비추고 계시는 순간입니다.

2) 이것은 정죄가 아니라 은혜의 시작이다: 주님 앞에 자신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은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하려는 은혜의 시작입니다. 정죄는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들지만, 하나님 앞에서의 깨달음은 우리를 변화의 자리로 이끕니다. 그래서 초신자든, 평생 신앙생활을 한 성도든, 참된 회심을 경험한 사람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깨달았습니다.” “도망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말씀이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습니다.” 인격적 만남은 하나님이 나를 폭로하시는 시간이 아니라, 나를 다시 세우려는 은혜의 시간입니다. 빛이 드러내는 것은 파괴가 아니라 회복의 첫걸음입니다. 이 자리에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됩니다.

Ⅲ. 인격적 만남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의지적 결단

여기서 말하는 의지적 결단은 어렵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예”라고 반응하는 선택입니다. 감정에 흔들리는 반응이 아니라, 하나님의 초청 앞에서 마음을 열고 방향을 돌리는 선택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이신 분이라 억지로 끌어오지 않으십니다. 초청하시고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초청 앞에서 “주님, 제가 가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성경은 이 결단을 다음처럼 말합니다.

1) 영접은 의지의 선택(요 1:12): “영접하는 자에게… 권세를 주셨으니.” 영접은 “주님, 제 삶에 오십시오”라는 의식적 결단입니다.

2) 초청에 응답하는 선택(계 22:17): “듣는 자도 오라… 원하는 자는 생명수를 받으라.” 응답 없는 만남은 없습니다.

3) 고백은 의지의 표현(롬 10:9–10):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 믿음은 입술의 고백을 통해 실제가 됩니다.

Ⅳ. 인격적 만남은 삶의 방향을 바꾸는 열매로 나타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10절) 인격적 만남은 잠시 눈물 흘리는 감정적 체험이 아니라 삶의 방향 자체가 전환되는 사건입니다. 성경은 이 변화를 세 가지 차원으로 설명합니다.

1) 존재의 전환(고후 5:17):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되었습니다. 정체성이 바뀝니다.

2) 행동의 재구성(약 2:17): 말씀 중심의 선택이 시작됩니다. 용서하고, 기다리고, 순종할 힘이 생깁니다.

3) 가치관의 재배치(빌 3:7–8): 나의 유익보다 그리스도의 영광이 더 귀해집니다. 바울의 변화는 단순한 태도 변화가 아니라 전 인격의 완전한 방향 전환이었습니다.

적용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납니까?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말씀과 성령을 통해 분명하게 우리와 교통하십니다. 성경이 글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릴 때, 말씀이 ‘내 이야기’처럼 다가올 때, 설명할 수 없는 평안과 뜨거움이 올 때, 하나님의 성품이 말씀 속에서 깊이 느껴질 때, 말씀 앞에서 숨겨진 마음이 비칠 때, 이 모든 순간은 하나님이 내게 보이시는 자리입니다.

결론

“그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바울이 경험한 인격적 만남의 네 단계는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집니다. ①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시는 은혜 ②내 존재가 하나님 앞에 드러나는 깨달음 ③그분의 뜻을 받아들이는 의지적 결단 ④삶의 방향이 변화되는 열매, 이 네 가지가 한 사람 안에서 일어날 때 그는 주저 없이 고백합니다. “주님이 내게도 보이셨습니다.” “주님이 내 인격을 만지셨습니다.”

이제 질문이 우리에게 남습니다. 오늘 나는 주님의 초청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말씀 앞에서 드러난 내 마음을 주님께 내어놓을 것인가? 주님이 말씀하시는 방향으로 실제로 걸음을 옮길 것인가?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마음의 문 앞에서 두드리십니다(계 3:20). 억지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기다리며 부르십니다. “너는 네 마음을 내게 열겠느냐?” “내 음성에 응답하겠느냐?” 이 예배가 지나가는 감정의 순간이 아니라, 주님께 인격적으로 응답하는 결단의 자리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말씀과 성령을 통해 보이지 않으나 살아 계신 하나님을 실제로 경험하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최원호 목사
최원호 목사(서울 상봉동 은혜제일교회)

마무리 기도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이 무엇인지 다시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를 먼저 찾아오신 은혜를 기억하게 하시고, 주님의 빛 앞에서 우리의 모습이 드러나도록 도와주옵소서. 말씀하실 때 “예”라고 반응하는 마음을 주시고, 감정이 아니라 의지로 주님을 받아들이는 믿음의 결단을 하게 하소서. 우리의 삶이 주님을 만난 증거로 변화되고, 말씀과 기도 속에서 하나님이 보이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원호 목사 (서울 상봉동 은혜제일교회)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원호목사 #은혜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