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5장 11절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자의 기쁨을 선포한다.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졌고, 스스로 그 관계를 회복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들을 화목제물로 보내셨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고 죄인을 향해 화해의 길을 여셨다.
화목은 단순히 다툼이 끝났다는 뜻이 아니다. 죄로 인해 끊어졌던 관계가 다시 이어지고, 원수였던 자가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졌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자기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막힌 담이 무너졌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더 이상 하나님을 피하며 숨어야 하는 자가 아니라, 은혜를 힘입어 아버지께 나아가는 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한다고 고백한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환경이 항상 평탄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죄인이 용서받았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세상의 형편이 달라지지 않아도 구원의 은혜는 변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신앙생활은 이 구원의 사건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축제와 같다. 우리는 마땅히 심판받아야 할 자였지만 용서를 받았고, 원수의 자리에서 자녀의 자리로 옮겨졌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을 기억할수록 감사와 기쁨은 깊어진다. 그리스도인이 기뻐하는 이유는 자신이 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이루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곧이어 죄와 사망이 세상에 들어온 근원을 말한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여기서 한 사람은 아담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생명과 사랑의 관계 안에서 창조하셨지만,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불순종했다. 그 불순종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다.
인간은 아담의 죄가 왜 자신의 죄가 되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정직하게 바라보면 죄와 사망이 모든 사람을 지배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인간은 선을 원하면서도 악을 행하고, 생명을 바라면서도 결국 죽음 앞에 선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본래 인간이 갈망했던 에덴과 같지 않다. 죄와 고통, 갈등과 죽음이 폭군처럼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
바울은 이 보편적인 죄와 사망의 현실이 한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설명한다. 아담은 단지 개인 한 사람이 아니라 인류를 대표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하나님을 떠났을 때 인류 전체가 하나님과 단절된 역사 안으로 들어갔다. 한 사람의 불신과 불순종이 죄의 문을 열었고, 그 문을 통해 사망이 세상에 들어왔다.
그러나 바울이 아담을 말하는 목적은 인간을 절망에 빠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죄와 사망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밝힘으로써, 우리에게 왜 새로운 한 사람이 필요한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이 들어왔다면,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와 생명이 들어온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무너진 관계를 그리스도의 순종과 희생이 다시 회복한다.
11절의 화목과 12절의 죄는 서로 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다. 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았기 때문에 화목이 필요했고,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기 때문에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가 필요했다. 복음은 인간의 비참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죄와 사망의 깊이를 분명히 드러내고, 그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한다.
오늘의 말씀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기뻐하고 있는가. 동시에 죄와 사망의 현실이 얼마나 깊은지 깨닫고 있는가. 죄의 심각성을 알수록 십자가의 은혜는 더 크게 보이고, 아담 안에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알수록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생명이 얼마나 귀한지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해야 한다.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이 세상에 들어왔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이 되셔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다시 이끄셨다. 죄가 끊어놓은 관계를 그리스도께서 회복하셨고, 사망이 지배하던 자리에 생명의 길을 여셨다. 이것이 우리가 기뻐하고 전해야 할 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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