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제프 파운틴 작가의 기고글인 ‘정의와 긍휼, 그리고 겸손의 필요성’(The need for justice, mercy, and humility)을 1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제프 파운틴 작가는 슈만 유럽 연구 센터(Schuman Centre for European Studies)의 창립자이며 1990년부터 YWAM 유럽의 이사로 재직하며, 공산주의의 붕괴 이후 변화된 정치 환경에서 활동해왔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정치적 혼란과 문화적 분열의 시대에, 가장 큰 목소리가 가장 지혜로운 목소리를 삼켜버리는 이때에, 예수의 제자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최근 필자는 브뤼셀에서 젊은 전문인들과 이 주제를 함께 고민했다. 우리는 먼저 미가 선지자의 말씀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6:8)
이 세 가지 덕목, 정의(Justice), 긍휼(Mercy), 겸손(Humility)은 분열의 시대 속에서 우리가 걸어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다.
정의를 행하라: 진리에 뿌리내린 삶
정의는 진리에서 시작된다. 가짜 뉴스와 조작이 만연한 시대에, 그리스도인은 사실적 진리와 도덕적 진리 모두에 충실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비록 그것이 내 주장을 불리하게 만들지라도, 진리를 조작해서는 안 된다. 정의를 행한다는 것은 옳은 일을 추구하는 것, 단지 유리하거나 인기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정의는 우리가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서도 하나님의 형상(Imago Dei) 을 보게 한다. 정의는 세상을 “우리 vs. 그들”로 나누는 부족 본능을 거부하며, 정치적 이익을 위해 신앙을 무기화하는 행위를 거절한다. 정의를 행한다는 것은 권력 앞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거짓과 반쪽짜리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는 것, 이웃과 공동체,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진실을 선포하는 것이다.
정의는 공동선, 즉 모든 사람의 선(善)을 추구한다. 특히 가장 약하고 목소리 없는 자들을 위해 선이 추구된다. 정의는 복수가 아니다. 정의는 관계와 사회를 회복시키는 것, 곧 샬롬(shalom) 을 세우는 것이다. 정의는 우리 시대의 분노와 소란 속에서 조용한 혁명처럼 존재하며 듣고, 분별하며, 치유한다.
긍휼을 사랑하라: 사랑에 뿌리내린 태도
긍휼은 깨어진 세상 속 사랑의 자세다. 긍휼은 우리 모두가 은혜를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인정한다. 양극화된 사회 속에서 긍휼은 인내와 용서, 공감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긍휼은 정죄하기 전에 이해하려는 선택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 10:25–37) 는 긍휼이란 우리가 “타자(他者)”로 여기는 이들, 심지어 적대자에게조차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긍휼은 부족과 이념을 초월하며, 경계를 넘어 상처를 싸매고 존엄을 회복시킨다. 또한 긍휼은 정치적 냉소주의를 거부한다. 모든 것이 권력 게임으로 변해가는 세상에서, 긍휼은 우리에게 자비가야말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임을 상기시킨다. 긍휼은 우리의 대화 속에서, 식탁 위에서, 정치 토론 중에, 그리고 SNS에서도 드러날 수 있다.
긍휼은 상대를 모욕하거나 왜곡하거나 비인간화하지 않는 태도로 나타난다. 긍휼을 사랑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물러나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부드러움으로 세상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이다. 긍휼은 우리로 하여금 문화를 전쟁의 대상으로가 아니라 치유의 대상으로 대하게 한다. 긍휼은 은혜로 양념된 진리를 말하는 사람으로 우리를 변화시킨다.
겸손히 행하라: 소망에 뿌리내린 믿음
겸손은 오늘날 공적 영역에서 보기 드문 덕목이다. 분노와 자기 과시가 지배하는 시대 속에서, 겸손히 걷는다는 것은 혁명적인 행위다. 겸손은 우리가 세상의 구세주가 아님을 상기시킨며 그리스도만이 구세주이심을 고백하게 한다. 겸손은 우리가 모든 답을 알고 있는 존재가 아니라, 여전히 은혜의 학교에서 배우는 제자임을 깨닫게 한다.
겸손은 정치 운동이나 지도자를 우상화하는 마음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준다. 겸손은 우리가 잘못했을 때 고백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겸손은 듣기 전에 말하지 않고, 이해하기 전에 판단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해를 넘어 역사하심을 신뢰하게 한다. 결국 겸손은 희망의 행위다.
겸손은 인간의 어리석음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목적은 결코 좌절되지 않음을 믿는다. 정의가 진리 위에, 긍휼이 사랑 위에 서 있다면, 겸손은 그 모든 것을 떠받치는 조용한 희망이며 진리가 승리하고, 빛이 어둠을 이길 것이라는 확신을 준다.
진리·사랑·소망 위의 정의·긍휼·겸손
정의, 긍휼, 겸손은 각각 진리, 사랑, 희망에 뿌리를 둔다. 진리 없는 사랑은 감상적이고 약하며 사랑 없는 진리는 냉혹하고 분열을 낳는다. 그리고 이 둘이 없는 희망은 공허한 낙관주의에 불과하다. 진리는 거짓을 대면하되, 사랑으로 말한다. 사랑은 다리를 놓되, 진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희망은 그 둘을 지탱하며,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상기시킨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덕목을 실천하는 제자들의 존재를 이렇게 비유하셨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 누룩이다.” 소금은 부패를 막고 맛을 낸다. 빛은 두려움을 몰아내고 길을 비춘다. 누룩은 보이지 않지만 전체를 변하게 한다.
문화전쟁의 시대, 신자는 도피도 지배도 아닌 제3의 길을 택해야 한다. 바로 “신실한 소수로서의 신실한 존재감(Faithful Presence)” 이다. 생각해보라. 소금, 빛, 누룩은 각각 양은 적지만 전체를 변화시킨다. 우리는 바로 그처럼 세상 속으로 들어가 이 진리를 살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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