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경기도 용인시 양지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 세미나실에서 ‘제1회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 학술세미나’가 ‘교회사의 흐름 속에서의 증거, 순교, 선교’라는 주제로 열렸다. 이번 세미나는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재단(이사장 김해철 목사)이 주최하고,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관장 이은선 박사)이 주관했다.
이날 행사는 단순한 학술 모임을 넘어, 한국교회가 어떻게 순교의 유산을 계승하고 오늘의 선교적 실천으로 연결할 것인지 모색하는 신학적 대화의 장이 됐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이상규 교수(고신대학교 명예교수)는 ‘교회사의 흐름 속에서 본 순교의 개념’을 주제로 순교의 어원적 의미와 역사적 변화를 추적했다. 그는 “순교(martyrdom)의 어원은 헬라어 마르튀스(μάρτυς)로, 원래 ‘증인’ 혹은 ‘증거’를 뜻한다”며 “2세기 중엽 이후 교회는 복음을 위해 생명을 내놓은 사람들을 ‘피의 증인’, 곧 순교자라 부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초기 교회가 순교를 인정하는 기준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그는 “첫째, 순교는 자의적으로 받아들인 죽음이어야 한다. 둘째, 그 죽음은 복음 증거와 직접 관련되어야 한다. 셋째, 그리스도의 진리를 반대하는 세력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했듯이 ‘죽음이라는 형벌이 사람을 순교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죽음의 이유가 순교자를 만든다’는 점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또한 4세기 이후, 교회가 박해의 시대를 지나면서 순교 개념이 ‘피의 증거’에서 ‘삶의 증거’로 확장된 사실에 주목했다. 이어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더 이상 순교의 피를 흘릴 수 없게 되자, 교회는 세상과 구별된 삶 즉 청빈, 순종, 정결을 ‘영적 순교’로 봤다”며 “그리스도를 위해 ‘죽을 결단’만큼이나 ‘살아내는 결단’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바로 ‘백색 순교(white martyrdom)’의 시작이었다”고 했다.
그는 현대적 관점에서 순교의 정의를 다시 정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교수는 “오늘의 순교는 반드시 피를 흘리는 죽음일 필요가 없다. 진리를 증언하고, 불의에 맞서 신앙의 자유를 지키는 행위도 순교적 증거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감리교나 성결교처럼 ‘순교·순직·순국·수난’으로 희생의 유형을 세분화하는 논의가 필요하다”며 “한국교회는 순교의 개념을 공통된 신학 언어로 다시 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마지막으로 “순교는 신앙의 절정이자 선교의 출발점”이라며 “순교의 정신이 살아 있을 때 교회는 세상 속에서 복음을 힘 있게 증거할 수 있다. 교회의 사명은 순교의 피를 기념하는 데 있지 않고, 그 증언의 삶을 이어가는 데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 발제자인 최상도 교수(호남신대)는 ‘순교 영성: 자기비움을 통한 사랑, 용서, 화해’를 주제로 순교를 그리스도의 케노시스(κένωσις) 신학에 근거한 신앙 행위로 해석했다.
그는 “빌립보서 2장 6~8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셨다”며 “이 자기비움(케노시스)이 바로 순교의 본질적 뿌리”라고 밝혔다. 최 교수는 “순교는 단순히 고난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을 내어 타인을 살리는 능동적 사랑의 실천”이라고 말했다.
이어 “초대 교회의 순교자들이 폭력에 맞서지 않고 비폭력적으로 죽음을 받아들였던 것은, 바로 케노시스적 사랑의 실현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순교는 복수의 정치가 아니라 화해의 정치”라며 “진정한 순교는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 용서와 화해의 길을 여는 죽음이다”라고 했다.
또한 “순교의 이름이 산 자의 이데올로기에 이용될 때, 그것은 이미 순교 신학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라며 “순교의 의미는 복수나 영웅주의가 아니라, 사랑과 용서의 실천으로 완성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오늘날의 순교는 피 흘리는 죽음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불의에 맞서 정의를 실천하고, 이웃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삶”이라며 “정의로운 연대, 비폭력 저항, 관용과 용서의 윤리가 바로 오늘의 순교적 행위”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케노시스 없는 순교는 언제든 왜곡될 수 있다”며 “오직 자기비움의 영성 위에서만 순교는 참된 신앙의 증거로 빛난다”고 결론지었다. 아울러 “순교신학은 비폭력 저항을 넘어 용서의 선포와 화해의 영성으로 발전해야 한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길이며, 교회가 오늘의 세상 속에서 감당해야 할 사명”이라고 말했다.
발제 이후 종합토론에서 참석자들은 “순교의 역사를 단순히 기념하는 것을 넘어, 그 정신을 선교적 실천으로 이어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은선 관장은 “순교자기념관은 단순한 추모의 공간이 아니라, 오늘의 교회가 복음 증언의 사명을 되새기는 교육의 장”이라며 “순교의 정신이 한국교회의 일상적 신앙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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