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학의 본질과 서열(우선순위)

김정부 목사
김정부 목사(찬송하는교회 담임, 한국교회법학회 이사)

"언어와 문법의 관계성으로 본 성경의 우선성과 신학의 반성적 사명"
• 내용 요약: 말이 있고 문법이 있듯 성경(말씀)이 먼저 있고 신학이 나중에 있음을 밝히며, 우리의 신학이 성경을 온전히 반영하고 있는지 늘 물어야 한다는 논지입니다.

우리는 먼저 기독교 신학의 본질과 서열(우선순위)을 정확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치 언어가 먼저 존재하고 그것을 체계화한 문법이 나중에 나오듯, 하나님의 계시(성경)가 먼저고, 이를 체계화한 신학은 언제나 그 뒤를 따라가며 점검받아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삼위일체) → 진리 → 말씀 → 성경]으로 이어지는 계시의 하향식 흐름과, [성경 → 신학]으로 이어지는 반성적 흐름을 연결하여, 7가지 논지로 정리 및 증거 하고자 합니다.

1. 존재론적 우선성: 삼위일체 하나님은 모든 진리의 근원이시다
신학이나 성경이 있기 전에, 스스로 계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진리 그 자체이시며, 모든 인식과 존재의 출발점입니다. 문법학자가 존재하기 전에 언어의 주체(화자)가 있듯이, 신학 이전에 존재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 성경적 증거: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1)

2. 계시의 필연성: 진리는 '말씀'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신다
감추어진 진리(하나님)는 가만히 머물러 계시지 않고,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말씀(Logos)'으로 자신을 소통(Communication)하셨습니다. 언어가 마음속의 생각을 밖으로 꺼내는 수단이듯,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신비와 진리를 피조물에게 드러내는 통로입니다.
▲ 성경적 증거: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히브리서 1:1-2)

3. 계시의 객관화: 말씀은 '성경'이라는 텍스트로 정착되었다
흘러가는 음성 언어가 문자로 기록되어 보존되듯,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은 성령의 감동을 통해 '성경'이라는 객관적이고 고정된 텍스트로 나타났습니다. 이 성경이야말로 신학이라는 문법을 검증할 수 있는 유일하고 최종적인 '표준 대본(Text)'이 됩니다.
▲ 성경적 증거: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16)

4. 신학의 문법적 성격: 신학은 성경을 올바르게 읽기 위한 규칙이다
말을 유창하게 하는 사람도 자신이 쓰는 언어의 규칙(문법)을 배우면 더 명확하고 오해 없이 소통할 수 있습니다. 신학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가 오해 없이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선포할 수 있도록 돕는 '언어의 문법'과 같습니다. 문법이 언어를 창조할 수 없듯, 신학은 결코 성경을 창조하거나 성경 위에 설 수 없습니다.

5. 신학의 하위성(Subordination): 성경은 신학의 재판관이다
인간이 만든 문법책에 오류가 있다면 실제 사람들이 쓰는 살아있는 언어의 관습에 맞춰 문법책을 수정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이성과 역사적 한계 속에서 형성된 '우리의 신학'은 완전할 수 없으므로, 항상 최종 권위인 성경 앞에서 끊임없이 교정되고 개혁되어야 합니다.
▲ 교회사적 원리: 개혁교회의 슬로건인 *"개혁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는 바로 이 논지를 뒷받침합니다.

6. 성령의 조명: 성경과 신학을 연결하는 분은 성령이시다
언어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말하는 사람의 호흡(영)'이듯,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성령께서는 오늘날 우리가 신학을 할 때도 역사하십니다. 성령의 조명(illumination, 밝혀주심)이 없다면 성경은 죽은 문자가 되고, 신학은 건조한 말장난(문법 놀이)에 그치게 됩니다.
▲ 성경적 증거: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2:10)

7. 신학의 궁극적 목적: 문법을 넘어 '하나님과의 대화(사귐)'로 나아가는 것이다
문법을 배우는 이유는 문법책 자체를 암기하기 위함이 아니라, 타인과 깊이 소통하고 아름다운 문학을 즐기기 위함입니다. 이와 같이 신학의 목적 역시 신학 체계 자체를 우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함으로써 진리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과 깊은 인격적 사귐을 누리는 데 있습니다.
▲ 성경적 증거: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한복음 17:3)

요약하자면, 신학은 '성경이라는 거대한 언어 세계를 길라잡이 해주는 문법'과 가다고 본다면, 참된 신학자는 문법(신학)의 정교함에 도취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 문법을 통해 계시된 말씀의 본뜻을 살피고, 말씀의 주인이신 삼위일체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야 할 것입니다. (계속)

김정부 목사
찬송하는교회 담임
(사)한국교회법학회 이사
(사)한국교회연합회 법률 특별위원장
울주병원운영이사회 회장
(사)한국건강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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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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