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서론)
‘인생의 위기의 때는 전화위복의 기회’
누구든지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처할 때가 있다. 위기는 멋진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회! ‘Man’s Extremity is God’s opportunity’(인간의 절대 절망은 하나님의 기회이다).
<누구나 이삭줍기 할 때가 있다(Anyone May Face Extremity)> (이문장, 작은소리, 2021). 저자의 ‘강해 시리즈 – 룻기’. 나오미와 룻은 삶의 막다른 골목,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그런 그들이 밑바닥에서 올라올 수 있었다면 우리도 올라 올 수 있다. 이것이 룻기의 메시지다. 깊은 말씀의 우물에서 길어 올린 룻기의 신선한 메세지가 압권(壓卷)이다.
이문장 목사는 서구 성경해석학을 두루 섭렵한 바탕위에 ‘아시아적 경전읽기’에 통달한 자다. 성경의 깊은 세계를 쉽게 풀어준다. 성경에 대한 기존 인식을 새롭게 해준다. 신학도나 평신도 모두에게 성경에 통달하는 길을 안내해 준다. 익숙히 아는 본문도 이런 말씀이었나 생각하게 하거나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들려준다. 그는 성경의 깊은 영적 삶의 이치를 밝혀서 신자들의 깨달음에 보탬이 되려는 사명으로 날마다 말씀을 붙들고 씨름하는 목사다.
이문장 목사는 탁월한 신학자이자 목회자이다. 이목사는 고대 영문과와 동대학원에서 서양사를 전공. 총신대 신학대학원(M.Div) 미국 고든-콘웰신학교(Th.M, 신약학), 예일대학(S.T.M). 영국 에딘버러대학(Ph.D, 성경해석학). 곧바로 에디버러대 교수공채에서 40:1의 경쟁 뚫고 교수가 되었다. 아시아 교회 빚진 마음으로 싱가폴 트리니티 신학대학로 옮겨서 교수로 섬기는 중, 2006년 고든-콘웰신학교의 초청을 받아 해석학과 선교학 교수로 활동했다.
2010년 출간한 <세계기독교연감>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신학계 대표로 선정되어 ‘세계기독교의 미래’ 글을 게재하였다. 해외 여러 학자들과 단체들에 큰 영향을 미치는 등 해외에서 한국교회의 위상을 높이며 활동하였다. 이목사는 한국교회(두레교회 김진홍목사) 지속적인 요청을 받고 2010년 9월 귀국 두레교회 담임을 맡았다. 많은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두레교회는 2021년 4월 18일 주일부터 ‘새음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저서로는 <이문장 목사의 요나서>, <한국인을 위한 성경연구>, <요한복음 1, 예수, 하늘의 비밀>, <이문장의 요나서>, <아벨 살해 사건 그 비밀을 밝힌다>, <성경, 이렇게 읽고 통달하라>, <혀 훈련으로 완성하는 이문장 영어비법> 외 다수의 편저와 번역서 등이 있다.
목차: 전체 룻기 4장을 4부로 구성. 1부 떠남과 돌아옴. 2부 새로운 삶. 3부 축복의 길. 4부 기업 무를 자의 영광. 서평자는 각 장에서 설교 1편을 소개하며 서평 할 것이다.
1. 누구에게나 흉년이 들 수 있다.(룻1:1-5) → ‘체득된 신앙이 없는 자는 흉년에 넘어진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사사 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어떤 기준, 원칙도 없이 하나님의 율법과 상관없이 살았다. 이스라엘의 암울하고 가장 어두운 시대.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21:25).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약속의 땅에 흉년이 들었다. “약속의 땅이라고 늘 풍요만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언약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면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약속의 땅에도 흉년이 듭니다” (P. 19, 대한민국은 이즘 물질적 풍요속에서 말씀의 기갈(흉년)의 시대다)
저자는 ‘약속의 땅’에서 지속적으로 복을 향유하는 것은 그 땅에 사는 사람에 달려 있음을 상기시킨다. 하나님과 관계를 잘 유지하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는 것. 당시는 곡식을 저장 비축하는 기술이 발달이 안 된 시대. 천수답 곧 하늘만 바라보는 시대였다. 그런 때에 흉년은 끔찍한 재난이었다. 당연히 비를 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본문에 어디에도 하나님께 비를 구하였다는 언급이 전혀 없다. 개인이나 국가의 고난이 올 때는 부르짖어 기도할 때이다.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성급한 결정을 조심하라. → ‘엘리멜렉’(여호와는 나의 왕)은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이다.
‘베들레헴’(빵집/빵공장)은 다른 지역보다 늘 곡식이 풍부하고 풍요로운 지역이었던 모양이다. 그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자, 엘리멜렉 가족은 상대적으로 흉년의 피해가 적은 모압으로 갔다. 집단 이주나 취업이주로 간 것이 아닌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 재력이 있었던 것 같다.
“인생의 흉년의 때를 잘 통과해야 합니다. 흉년이 들었다 싶을 때 성급한 결정을 조심해야 합니다. ‘순간의 선택이 십년을 좌우한다’는 광고 문구도 있듯이, 흉년의 때일수록 정확한 분별과 판단으로 바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p. 22, 필자 강조)
엘리멜렉의 두아들, ‘말론’(병든 자), ‘기룐’(연약함)의 이름은 부모가 지어 부른 것이 아니라, 룻기의 저자가 실제 이름 대신에 별명처럼 그런 이름을 붙여준 것으로 추측된다. 평소 허약한 약골로 병치레를 자주하는 두 아들. 흉년이 지속되면서, 평소 질병으로 골골하는 아들들의 생존과 안전, 건강을 염려했을 것이다. 저자는 본문 자체에서 엘리멜렉이 모압으로 이주한 원인을 합리적으로 묵상하고 있다. 그러면서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게 한다.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때 여러 생각이 떠오르게 됩니다. 올라오는 생각이 모두 옳은 생각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영의 생각이 있고 육의 생각이 있습니다. 생각을 잘 분별하여 육신의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엘리멜렉에게 그런 영적인 분별력이 적었던 것 같습니다” (p. 24)
“엘리멜렉은 ‘체득된 신앙’이 없었기에 위기때에 바른 판단과 선택을 못하였다”.
‘엘리멜렉’의 부모는 경건한 분들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는 평소에 체득된 신앙이 없었다. 그의 이름의 뜻대로 ‘여호와는 나의 왕’이 체득되었다면 흉년의 때에 최소한 2가지 태도를 보였을 것이다. 첫째는 흉년의 때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약속의 땅을 벗어나지 않았어야 할 것이며, 둘째는 ‘나의 왕 되시는 여호와’의 지시를 받고 움직였 어야 했다. 따라서 평소에 체득된 신앙이 아니면 위기때에 바른 판단과 선택을 못하게 된다. 결국은 살려고 모압 지방에 갔는데 3부자(父子)는 거기서 모두 죽었다. 살려고 이주했는데 3남자가 다 죽고 말았다.
인생의 흉년때에 하나님을 벗어나면 죽게 된다. 모압 땅에 거주한지 10년쯤 되었을 때, 나오미는 과부가 되어 이방 며느리들과 모압에 남았다. 룻기 4장 13절에 “하나님이 저로 잉태케 하셨다”는 구절로 봐서 그 두 며느리가 잉태치 못한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한 것이었다.
“한번 길을 잘 못 들었던 것이 또 다른 잘못을 저지르게 만듭니다. 그들은 연속적으로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길로 갔습니다. 흉년을 피하려고 모압으로 내려갔으나 그 보다 더 심각한 인생의 흉년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죽었는데 흉년을 피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나오미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PP. 32-33)
저자는 서구 성경해석학을 두루 습득한 바탕위에 아시아적 경전읽기를 통달한 자다. 성경의 깊은 세계를 쉽게 풀어준다. 익숙한 본문도 이런 말씀이었나 생각하게 하거나,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들려준다. 성경 말씀 속으로 독자를 이끌면서 스스로 깨닫고 결단하게 한다.
“어느 누구에게나 흉년의 때는 찾아옵니다. 스스로 잘못한 것이 없어도 흉년이 닥칠 수 있습니다. 흉년의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허락을 기다려야 하고, 허락이 없이 움직이지 말아야 합니다. 살려고 그 길로 가더라도 결국은 죽게 됩니다. 흉년의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친히 방문하셔서 어려움을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그 때를 인내로 기다리면 더욱 깊은 차원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p. 33).
2.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으며 살기(룻 2:1-3) → ‘평소에 인간관계와 말씀공부가 중요하다’
우리는 더불어 사는 사람들을 주목해야 한다. 룻기 2장에서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가 등장한다. 동시대, 동일한 공간에 보아스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평소에 알고 지내는 사람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중국문화권에서는 사람들의 관계를 중시한다. 중국 발음으로 관계를 ‘콴시’(關係)라 한다. 하나님의 일하는 방식도 사람을 통해 역사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전혀 모르는 사람을 통해서도 일하시지만, 대개는 가까이 있는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우리에게 이런 저런 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관계들을 주목하고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오미의 죽은 남편의 ‘친족’을 사용하십니다” (p. 89)
하나님은 언제나 ‘성실한 사람, 준비된 사람’을 주목하시며 그를 사용하신다.
보아스는 ‘베들레헴에 유력한 사람’으로 소개한다. 여기서 ‘유력한’(a man of great wealth)란 권세도 있고 부유하다는 뜻이다. 그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보아스를 통해 나오미와 룻의 인생반전을 이루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경우에 따라 훈련을 시키신 다음 사용하시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아니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p. 90)
누구에게나 이삭줍기를 해야 할 때가 있다. → ‘Man’s extremity is God’s opportunity’
나오미와 룻의 상황은 막다른 골목에 섰다. 인생의 가장 밑바닥이다. 누구에게나 이삭줍기를 해야 할 그런 때가 올 수 있다. 그런 밑바닥서 올라올 수 있다면 우리도 올라올 수 있다. 목숨을 연명하기 조차 힘든 상황에서도 낙망 치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 원망치 않아야 한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기본적인 예의를 지켜야 한다. 서로 상대방을 탓하기 쉬울 때이다. 어려운 처지에서도 자신이 지켜야 할 본분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룻이 할 수 있는 일은 이삭줍기 뿐이었다. 룻은 나오미에게 예의를 지키며 말한다.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2절)
말씀을 가까이하면 지혜를 얻는다. 평소에 공부/학습했던 말씀이 결정적인 때 빛을 발한다.
룻은 이스라엘의 관습과 하나님의 율법(레19장, 신24장)에 관해 잘 알고 있었다. 이방 땅 모압에 있을 때에 율법을 배운 것 같다. 하나님의 규례와 율법과 법도가 어떤 것인지 이미 학습이 되어 있었다. 평소에 쌓은 성경공부, 독서의 중요성을 여기서 엿볼 수 있다.
율법에 추수하는 자들은 밭의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며, 추수하다 떨어진 이삭은 줍지 말라. 그것은 나그네/고아/가난한 자들/과부들의 몫이었다. 룻은 모압에서 학습했던 내용이 베들레헴에 와서 도움이 되리라고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말씀을 통해서 결정적인 순간에 삶의 지혜를 얻는다. 평소에 말씀 공부, 성경읽기와 묵상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배후에서 일하신다. 지금도 ‘우연히’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드디어 룻이 밭에 나가 이삭을 줍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엘레멜렉의 친족인 보아스의 밭에 이르게 됩니다 (중략) 룻에게는 우연히 되어진 일이지만, 우리는 배후에서 하나님이 움직시고 계심을 감지하게 됩니다. 그 다음 구절에는 보아스가 우연히 자기 밭에 나오는 장면이 나옵니다 (중략) 룻이 움직이자 하나님이 동시에 움직이십니다. 아마 룻을 움직이도록 만드시고 하나님이 움직이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pp. 101-102)
매년 11월엔 한국교회 <다니엘 기도회>가 진행된다. 여러 강사들의 간증을 통해서도 우리는 이것을 확인하게 된다. ‘인간의 절대 절망은 하나님의 일하심의 멋진 기회’임을... 역경과 고난 한 가운데서 낮아진 마음으로 최선을 다 할 때, 전능하신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일하신다.
3. 하나님의 축복 방식–헤세드(hesed)의 실천(룻3:6-13) → ‘선이 선을 낳고 정성이 정성을 낳는다’
언제 어디서나 마음을 다하면 사람이 움직인다. 룻의 정성이 나오미를 움직이게 만든다. 나오미는 감동을 받아 삶에 생기가 돌며, 새로운 비전이 생기게 된다. 룻은 시어머니께 정성을 다하고, 나오미는 룻을 위해 움직인다. 선이 선을 낳고 정성이 정성을 낳는 법이다. 나오미는 룻의 ‘선한 행동’(hesed)을 이제는 자신의 선한 행동으로 갚겠다는 의무감을 드러낸다.
“네가 함께 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 친족아 아니냐 보라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룻3:2). 나오미는 보아스가 가까운 친족, ‘기업무를 자’임을 환기시킨다. 그리고 나오미는 여성의 촉(sensitivity)을 총동원하여 세밀한 계획을 세워 나갈 때 룻은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고 무조건 전적으로 순종한다.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의 음성과 명령’을 기다려라 . 일상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라.
룻은 “시어머니의 명령대로 다 하니라”(6절) 시어머니의 명령을 “그 때 그 상황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명으로 받은 것”이다(p.194). “이처럼 때로 하나님의 명은 주위 사람들 과의 관계를 통해서 주어집니다. 주위 사람들과 대화하는 중에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무심코 던지는 말 속에서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순종해야 합니다” (p. 194, 서평자도 이러한 희한한 경험을 수 차례 하였다. 새벽에 묵상하며 기도하였던 그 말씀이 그날이 저물기 전에 말씀이 이루어지는(come true) ‘일상의 기적’들!)
하나님의 응답하는 방식. → “하나님의 헤세드를 실천하라”
룻이 보아스의 발치에 누운 때는 ‘밤중’/‘자정 무렵’이었다. 보아스는 전혀 생각이나 기대하지 못했을 것! 평소에 연모(戀慕)했던 룻이 갑자기 눈앞에 등장했을 때 보아스의 설렘과 떨림…
“룻은 구약의 중심 주제요 이상(理想)인 ‘헤세드’가 어떤 것인지 실제 행동으로 보여 줍니다”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11절) 보아스는 룻의 말(“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나이다”)에 큰 감동을 받았다. 시어머니을 위한 그 헷세드에…이에 대한 보아스의 첫 반응은 축복기도였다. 그러면서 보아스는 직감하였다. ‘여호와께서 일을 행하시는구나’. ‘여호와의 응답이구나’.
인애(헤세드)가 모든 선택의 기준이다. 헤세드를 실천한 룻은 왕가의 어머니가 되었다.
“우리는 앞서 ‘헤세드’에 하나님이 ‘헤세드’로 갚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룻이 나오미에게 보인 ‘헤세드’는 이삭을 줍는 밭에서 하나님이 부분적으로 갚아 주셨습니다 (중략) 룻의 헤세드가 한 가문을 살리려고 하는데, 그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은 어느 정도일까 기대가 됩니다” (pp. 204-205, 하나님의 보상은 룻을 왕가(王家)의 어머니로 우뚝 세워 주셨다)
“우리도 룻과 보아스처럼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사람들이 알아봅니다. ‘하나님의 길’(헷세드)을 따라 살 때 사람들은 감동하게 됩니다. 그럴 때 분명 하나님의 헤세드가 우리에게 임하실 것입니다” (p. 207)
4.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신 하나님(롯4:13-22)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4:13)
룻기의 저자는 실제 인간 삶의 현장 속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그 당시의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 목격한자 였음이 분명하다. 성읍 백성과 장로들의 3가지 축복의 기원(11-12절)이 곧바로 실제화 되는 것을 3개 동사를 연속해서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13절에 룻과 보아스는 “결혼했고, 임신했고, 그리고 아이를 낳았다”. 성읍 마당 모임 이후 모든 일이 급속하게 진행되었음 강조한 것이다. “이처럼 일을 행하는 것은, 그 일의 성취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일단 일이 이루어지는 단계로 들어가면 급속하게 진행됩니다” (p. 269)
속전속결(速戰速決), 일사천리(一瀉千里)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우리 인생은 일의 결국을 모르기에 늘 초조하고 불안하다. 그러나 어느 단계부터 하나님이 일하시기 시작하면 하나님은 일사천리(一瀉千里)로 일을 진행하신다.
서평자도 최근에 ‘하나님의 일사천리’를 경험했다. 3년 전 10월 13일에 만70세 정년이 되었고, 파송교회서는 후원중단 연락이 왔었다. 짧은 2주간 내에 영국에서 살 집을 구해서 이사를 해야 했다. 무려 15곳 집들을 둘러보았다. 우리의 재정형편에 맞는 집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이 속전속결로 개입하셨다. ‘미국의 백안관 같은 좋은 집’을 준비해 주셨다. 할렐루야! (필자의 영국선교서신 제4신에 자세히 기록하였다)
룻은 보아스와 결혼하고 그의 아내가 된 것이 꿈만 같았을 것이다. 룻도 바이런(Byron) 시인의 처럼 ‘어느 날 자고 일어나 보니 내가 유명해 져 있더라’고 했을 것이다. 저자는 무엇이 롯과 나오미의 인생을 행복한 결말로 귀결되었는지를 4가지로 요약하였다.
첫째는 하나님의 주권적 간섭이다. 둘째는 사람들의 ‘헤세드’(인애)이다. 셋째는 모든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끝으로 하나님은 모든 것을 버린 룻에게 하나님이 풍성히 갚아 주셨다. 이 같은 영적인 원리는 오늘날 우리 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할렐루야! 아멘이다.
“결국 하나님 신앙, 사랑의 마음, 상대방을 배려하는 신실함, 이치에서 벗어나지 않는 행동 그리고 인내를 갖고 한 걸음 씩 움직였기에, 룻은 상상을 초월한 하나님의 특별 간섭을 체험합니다. 기적과 같은 일들을 체험합니다. 이와 동일한 일들이 오늘 우리의 삶에도 재현 될 수 있습니다” (p. 278)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찬송할 재료가 되도록 하라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네게 기업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14절)
“우리의 삶을 통해 실천하는 헤세드가 하나님의 계속된 은혜를 누리게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의 삶에 지속되어집니다. 자손 대대로 하나님의 헤세드가 우리 가문에 머무르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남들을 위해 헤세드를 실천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p. 284)
“신학의 최고의 경지는 박사학위가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
“룻기에 기록된 기적과 같은 인생 반전은 룻의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어집니다. 룻의 사랑하는 마음이 기적을 낳은 것입니다. 사랑이 가장 위대한 능력이었습니다. 사랑이 사람의 생명을 살려 냈습니다. 사랑이 하나님을 움직이도록 만들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최고의 기적이었습니다. 필자가 신학교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바가 이것입니다. 신학의 최고의 경지는 박사학위가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신학을 공부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결국 우리 안에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려는 것입니다. 성경을 많이 알면 알수록 우리 안에 사랑이 자라나야 합니다.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고 비판하고 우습게 여기는 마음이 커지는 것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p. 288)
나가는 말(결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새로워지는 교회(새음교회)
“사랑하는 마음이 기적을 이룬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온 인류에 흉년이 임했다. 우리 모두는 지구촌 흉년을 경험했다. 앤데믹시대 우리는 이런 상황에 개입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경험해야 한다. 사사들이 치리하는 혼란의 시대는 바로 지금 이 시대와 같다. 인생의 흉년이 올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룻과 나오미는 어떻게 절대절망 상황속에서도 여백이 있는 삶을 누렸을까?
본서를 계속 읽어가면 책 속의 주인공들이 마치 살아있는 듯 느껴진다. 뼈를 때리고 내 삶을 지배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살아 운동력있는 말씀을 경험하게 된다. 경건의 모양, 곧 거룩한 흉내만 내지 말고, 하나님의 헤세드(신실함, 친절, 사랑)를 당장 실천해 보라.
본서를 비롯 이문장 목사의 강해서를 꼭 읽어야 3부류의 사람들이 생각난다.
첫째는 일상에 말씀이 들어와 체득된 신앙인으로 변화되고 싶으신 분. 둘째는 성결한 삶과 통전적 성경읽기를 모색하는 자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끝으로 새로운 성경해석 방법으로 강해설교를 배우기를 원하는 목사와 선교사들에게 이 책을 강추하고 싶다. 할렐루야. 아멘.
서평후기
서평자는 이 책의 저자와 개인적으로 30여년이상 교제하고 있다. 필자가 영국 스코틀랜드 아버딘 대학원서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 이문장 교수님은 큰 도움을 주었다. 에딘버러 대학 고문서 도서관의 책을 ‘이문장 교수의 이름으로’ 30권이나 대출받을 수 있었다. (당시에 석·박사 리서치 학생은 ‘Interlibrary loan’으로 5권까지 빌릴 수 있었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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