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기독교 변증가이자 작가인 로빈 슈마허의 기고글인 ‘영원한 구원에 대한 가장 큰 오류’(Here’s the No. 1 fallacy on eternal security)을 25일(현지시각) 게재했다.
기독교 변증가로 활동하고 있는 슈마허는 작가로도 활동하면서 많은 책을 냈고 미국 내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성도의 견인 교리에 대한 논의
필자가 크리스천포스트(CP)에 쓴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구원받은 기독교인은 결코 구원을 잃지 않는다고 믿는다. 이는 흔히 성도의 견인(또는 보존)이라 불리는 교리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을 통해 받아들이시고 성령으로 효과적으로 부르시며 거룩하게 하신 자들은 은혜의 상태에서 완전히나 최종적으로 떨어져 나갈 수 없으며, 반드시 끝까지 견디며 영원히 구원받는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견해도 존재한다. 가톨릭 교회는 트렌트 공의회에서 “한 번 의롭게 된 사람이 은총을 잃을 수 없다고 말하는 자, 따라서 죄를 짓는 이는 진정으로 의롭게 된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또한 1610년 알미니안들이 모인 항의파 회의에서는 “참으로 거듭난 자라도 은혜를 소홀히 하고 죄로 성령을 근심케 하면 은혜에서 완전히, 그리고 결국 최종적으로 떨어져 나가 영원한 버림을 받는다”라고 밝혔다.
이러한 주장들은 값싼 은혜를 막으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으나, 창세기 12장 1-3절에 기록된 아브라함 언약의 무조건적 성격을 간과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고 축복을 받은 뒤 믿음을 드러냈으며,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예수께서는 “내게 주신 자 중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다.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라”(요한복음 6:39-40)라고 말씀하셨다. 바울은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한다”(빌립보서 1:6),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에베소서 1:5)라고 기록했다.
◈‘진정한 스코틀랜드인’ 오류
성경은 성도의 구원이 보호됨을 분명히 하지만, 영원한 구원을 주장하는 일부 목회자와 신학자들은 종종 가상의 질문 앞에서 후퇴한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죄 가운데 산다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그러지 않는다”라고 답하는 것이다.
이는 일명 ‘진정한 스코틀랜드인 오류(no true Scotsman fallacy)’다. 반례가 제시되면 “진짜” 혹은 “참된”이라는 수식어로 주장을 수정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스코틀랜드인은 죽에 설탕을 넣지 않는다”라는 주장에 “스코틀랜드인 앵거스 맥그리거는 설탕을 넣는다”라는 반례가 나오면, “그는 진정한 스코틀랜드인이 아니다”라고 답하는 것과 같다.
이 오류가 신학에 적용되면 성도의 보존 교리는 흔들리게 되고, 결국 성도들은 구원의 확신을 잃는다. 왜냐하면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하지 않을 행동”의 목록은 끝이 없고,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참된 신자와 거짓 신자가 있음을 언급한다. 그렇다면 이 구분을 오류에 빠지지 않고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칭의와 믿음의 보존
신자가 믿음 안에서 안전히 보존되는 이유는 ‘칭의’라는 교리에 있다. 이는 법률적 용어로, 한 번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선언이다.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하시는 것이다. 이 교리는 특정 죄가 구원을 무효화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준다. 성경은 오히려 믿는 자도 때로는 하나님의 완전한 기준에 맞지 않는 선택을 한다고 밝힌다(로마서 7장). 스코틀랜드 개혁자 존 녹스조차 영과 육 사이의 치열한 싸움을 고백하며 “육신이 하나님께 품는 불평과 원망, 분노와 노여움을 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로 구원받았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중생의 씻음으로 하셨다. 이는 우리가 그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디도서 3:5-7)라고 기록돼 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는 사라졌으며 다시 우리를 정죄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리 아시고, 예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셨다는 ‘구원의 황금사슬’(로마서 8:29-30)은 끊어지지 않는다.
◈거짓 믿음의 특징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거짓 믿음은 무엇일까? 마태복음 7장 21-23절에 언급된 거짓 믿음은 단순히 특정 행동의 목록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영국 유니온 신학대학 총장이자 신학 교수인 마이클 리브스 박사는 올해 리고니어 ‘내 교회를 세우리라’ 컨퍼런스에서 이 문제를 다루며 두 가지 특징을 제시했다. 첫째는 자기 의존이다. 거짓 믿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 앞에 서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좋은 사람”이라는 행위 중심의 답을 내놓는다. 예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귀신 추방, 능력 행사를 했다고 해도 이는 자기 의에 근거한 것이다.
둘째는 회개의 결여다. 리브스는 요한일서 2장 19절을 인용하며, 참된 믿음을 가진 자는 공동체 안에 남지만 거짓 믿음을 가진 자는 결국 떠나버린다고 설명했다. 거짓 믿음의 핵심은 죄 목록 때문이 아니라 복음의 본질, 곧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린다”(로마서 5:1)는 교리를 거부하는 데 있다. 또한 삶에서 전혀 변화가 없고, 조나단 에드워즈가 말한 “거룩한 정서”가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성도의 보존과 참된 믿음의 판별은 회개, 칭의, 믿음, 은혜라는 복음의 핵심에 근거해야 한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라는 목록에 의존하는 방식은 올바른 기준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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