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델젤 목사
댄 델젤 목사. ©기독일보 DB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댄 델젤 목사의 기고글인 ‘존재론적 유물론의 우울한 세계관에서 벗어나기’(Escaping the depressing worldview of ontological materialism)를 21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델젤 목사는 네브래스카주 파필리온에 있는 리디머 루터 교회(Redeemer Lutheran Church in Papillion)의 담임 목사로 섬기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미국에서는 11분마다 한 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또한 남성의 자살률은 여성보다 약 4배 높다. 자살 충동에는 다양한 요인이 얽혀 있으며, 자살을 고민하는 각 개인은 고유한 내적 압박을 경험한다.

과학철학자인 스티븐 마이어(Stephen Meyer) 박사는 Signature in the Cell, Darwin's Doubt, Return of the God Hypothesis의 저자다. 그는 유물론과 자살 충동의 연관성을 지적한다. 존재론적 유물론(ontological materialism)이란 물질과 에너지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이다.

마이어 박사는 유물론의 핵심 명제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의식 없는, 무목적적 과정에 의해 하등한 동물로부터 서서히 진화했다 ▲인간은 본질적인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자유의지는 환상이다 ▲객관적인 도덕은 환상이다 ▲인생에는 궁극적인 목적이 없다 ▲죽으면, 우리는 썩어 사라진다

많은 이들이 무신론적 세뇌 아래에서 절망에 빠진다. 이러한 무력감과 희망 없음은 결국 일부 사람들을 자살로 내몬다. 마이어 박사는 제시 킬고어(Jesse Kilgore)의 사례를 언급한다. 그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지만, 대학 교수의 권유로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읽은 후 큰 혼란과 환멸을 느끼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물론의 독성은 인간의 마음을 파괴한다.

2000년대 중반, 크리스토퍼 히친스, 리처드 도킨스, 샘 해리스 등 이른바 ‘신(新)무신론(New Atheists)’이 종교를 비판하는 여러 책을 출간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그들의 교리는 희망이라고는 한 줌도 없었다. 오직 암울함과 절망뿐이었다. 인간은 절망만으로는 살 수 없다. 다행히 신무신론의 열풍은 등장만큼 빠르게 사그라졌다. 하지만 존재론적 유물론은 여전히 우울과 공허라는 상처를 사람들의 삶에 남기고 있다. 인생이 무의미하다고 여겨질 때, 평안은 인간의 마음에서 사라진다.

피터 크리프트(Peter Kreeft) 박사(보스턴 칼리지 철학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무신론은 닿는 모든 것을 값싸게 만든다. 공산주의의 결과를 보라. 그것은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형태의 무신론이었다.”

역사는 이를 증명한다. 존재론적 유물론은 종종 대량 학살의 근저에 자리해 왔다. 그리고 자살은 이 어두운 사고방식의 개인적 연장선일 뿐이다.

스택스 로쉬(Staks Rosch)는 이렇게 썼다: “우울증은 더 큰 무신론자 공동체 안에서 심각한 문제이며, 너무도 자주 이 우울증이 자살로 이어진다. 많은 무신론자들이 이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하지만,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을 제거하면, 희망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복음전도자 빌리 그래함(Billy Graham)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의 가장 큰 심리적, 영적, 의학적 필요는 바로 희망에 대한 필요이다.”

유물론은 결국 절망과 우울을 양산하는 공식이다. 영국의 작가이자 철학자인 G.K. 체스터턴(G.K. Chesterton)은 이렇게 말했다: “세속주의자들은 신성한 것들을 파괴하지는 못했지만, 세속적인 것들은 완전히 망가뜨렸다. 티탄족이 하늘을 점령하지는 못했지만, 세상을 초토화했다.”

그들의 사악한 신념으로 인해 파괴된 삶의 수는 헤아릴 수 없다. 이런 무신론의 예언자들에게 영향을 받은 이들의 정신적·영적 황폐함을, 미국 2대 대통령 존 애덤스(John Adams)의 비전과 낙관주의와 비교해 보라. 애덤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독립을 이루게 한 원칙들은 기독교의 일반 원칙들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이 원칙들이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만큼이나 영원하고 불변하다고 믿는다. 기독교는 고대든 현대든 존재했던 모든 종교 중에서 지혜와 덕, 공의와 인류애의 종교다.”

리 스트로벨(Lee Strobel)은 한때 무신론자였다.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친구가 아프고 죽어가고 있을 때, 그가 가장 원하는 것은 설명이 아니다. 그는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을 원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혼자 두지 않으셨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미래가 무엇을 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내 미래를 붙잡고 계신 분이 누구인지는 안다.”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 그는 “모든 지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빌립보서 4:7)을 경험했다고 고백한다.

자살 충동은 우주의 창조자이자 구속자이신 하나님 위에 인생을 세울 때 희망과 목적으로 대체된다. 인간은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해,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기 시작한다.

앨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McGrath), 아일랜드 출신의 신학자이자 전직 무신론자는 이렇게 말했다: “무신론은 충분히 만족스러운 증거적 토대 위에 서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한때 대담하고 결정적이라고 여겼던 논증들은 점점 순환적이고 불확실하며 불완전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는 이어서 말했다: “기독교는 도덕적 의미와 존엄을 부여하는 가치와 이상을 제시하는 세계관을 제공한다.”

존재론적 유물론이 우울과 낙담을 낳는 반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은 성령의 생수의 강을 우리의 영혼에 흘려보낸다(요한복음 7:37-39). 믿는 자들은 성령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새 힘을 얻는다. 성경 마지막 장의 한 구절은 이렇게 하나님의 놀라운 초청을 전한다: “목마른 자는 올 것이요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요한계시록 22:17)

리처드 모건(Richard Morgan) 역시 전직 무신론자였지만,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발견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과학과 철학이 모든 문제의 해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열린 마음과 열린 태도로 ‘아마도 내가 진리를 전부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겸손의 행위이고, 하나님은 결코 그런 겸손을 거부하지 않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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