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가 연례적으로 발표해 온 ‘북한 인권 보고서’ 발간을 중단하는 문제를 검토한다는 소식에 북한 인권단체가 이례적으로 통일부 비판 성명을 내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통일부는 올해 보고서에 추가할 내용이 많지 않다는 이유를 대고 있으나 북한 인권 단체는 이는 핑계일 뿐 사실상 발간을 무기한 중단하려는 의도라며 차라리 통일부에서 북한인권기록센터를 따로 분리하라며 법률 개정 압박에 나설 태세다.
북한인권단체 ‘전환기정의 워킹그룹’(TJWG)은 지난 12일 발표한 긴급 성명에서 통일부가 올해 북한인권보고서 발간 중단을 검토하는 것에 대해 “국제사회에서 북한 인권 문제가 잊혀지도록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보고서가 발간되지 않을 경우 가장 좋아할 사람은 북한 김정은 일가와 북한 정권의 반인도적 범죄에 책임있는 자들 뿐”이라며 통일부 장관과 대통령을 향해 “재고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통일부는 올해 ‘북한 인권 보고서’ 발간 중단에 새로 추가되는 내용이 별로 없다는 이유를 대고 있다. 그러나 TJWG는 통일부의 이런 설명에 “거짓말에 가깝다”라고 반박했다. 지난 2023년과 2024년 총 2회 공개 발간한 보고서에 탈북민들의 증언을 반영하지 못하고 조사관들이 진술만 받아두었을 뿐 아직 분석조차 다 하지 못했을 만큼 많은 방대한 기록을 확보해두고 있는데 추가할 내용이 없다는 게 말이 되냐는 거다.
TJWG의 주장에 따르면 올해 북한인권 보고서 작성을 위해 통일부가 지난해 11월 남북관계관리단에서 여러 국책연구기관의 전문가들과 인권조사기록단체 대표 및 실무책임자들로부터 올해 보고서 발간 방향을 주제로 의견을 수렴해 왔다고 한다. 또 발간 전 감수 및 국내외 홍보 등을 위한 협조를 요청하고 금년 초부터 반년 넘게 보고서 초고 작성을 진행해 왔는데 갑자기 추가할 내용이 없다는 이유로 진행해온 작업을 중단하겠다는 말을 누가 믿겠냐는 거다.
북한 인권 단체들은 통일부의 이런 태세 전환에 정치적 논리가 개입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북한인권기록센터의 보고서 발간이 지난해 12·3 계엄과 탄핵 이후 조기대선이 치러지고 정권이 바뀌는 과정에서 순연돼 왔고, 정동영 장관 취임 이후 보고서 발간 계획을 장관에게 최종 보고하고 일정을 확정하는 단계에서 발간 중단 검토 소식이 흘러나온 게 모든 걸 말해 준다는 거다.
지난 2016년 3월 2일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된 북한인권법은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과 인권 침해 기록·관리, 탈북민 보호 등을 주요 내용을 하고 있다. 북한 인권 증진을 위한 국가의 의무와 대북 인도적 지원, 탈북자 보호, 북한인권기록센터 설치 등이 포함됐다.
주목할 건 이 법 제 13조에 북한인권기록센터를 통일부에 설치한 근거조항이자 보고서 발간을 기관의 주요업무로 명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통일부가 법에 명시된 기본업무인 ‘북한인권 보고서’ 발간을 특별한 사유없이 중단하는 건 중대한 법 위반이다. TJWG가 긴급성명에서 차라리 통일부의 북한인권기록센터를 법무부 북한인권기록보존소로 이관·통합하거나 독립된 기관으로 분리하도록 법률을 개정하라고 요구한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일련의 사태는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정부가 남북 긴장 완화를 목적으로 다양한 대북 조치를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 예견이 된 사항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15일 제80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취임 직후 대북전단 살포와 확성기 방송을 중단한 이유를 밝히면서 이 모든 조치가 “남북 긴장 완화와 신뢰 회복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남북 간 우발적 충돌 방지와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해 9·19 군사합의를 단계적으로 복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렇지만 북측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북 김여정은 이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발표 직전인 지난 14일 발표한 '서울의 희망은 어리석은 꿈에 불과하다' 제목의 담화에서 새 정부 출범 직후 단행한 대북 긴장완화 조치를 평가 절하하고 적대적 태도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이 지난 12일 “우리가 확성기를 철거하자 북측이 호응해 일부 확성기를 철거하고 있다”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 북 김여정은 “무근거한 일방적 억측이고 여론조작 놀음”이라며 “우리는 국경선에 배치한 확성기들을 철거한 적이 없으며 또한 철거할 의향도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또 ”한국이 확성기를 철거하든, 방송을 중단하든, 훈련을 연기하든 축소하든 우리는 개의치 않으며 관심이 없다. 우리는 미국의 충성스러운 하수인이고 충실한 동맹국인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전혀 없다”라고 했다.
새 정부가 이전 윤석열 정부와는 완전히 다른 대북관으로 북한에 접근하는 건 그들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호응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북한은 비핵화를 포기할 의사가 없고 대남 적화 전략에도 변화가 없는데 우리만 모든 걸 내려놓는 건 적 앞에서 무장해제하겠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다른 건 다 차치하더라도 특히 북한 인권 문제는 그리 간단히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유엔과 미국 등 전 세계가 주시하는 사항이다. 아무리 북과 대화를 전제로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할 마지노선을 넘는 건 곤란하다.
이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평화로운 한반도는 ‘핵 없는 한반도’”라며, 남북·미북 대화와 국제 협력을 통해 평화적 해결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평화를 위해 북과 대화 노력을 계속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북한의 비핵화와 북한 주민 인권 문제는 한 묶음으로 해결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인류 보편적 가치를 수호하는 차원에서 북한 인권 보고서는 반드시 중단 없이 발간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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