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제리 맥글로틀린의 기고글인 ‘하나님은 왜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렇게 많은 기적을 행하고 계실까?’(Why does God still do so many miracles today?)를 1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제리 맥글로틀린은 헌정 공화국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데 헌신하는 게스트를 대변하고 유대-기독교 윤리를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한 홍보 기관인 스페셜 게스트(Special Guest)의 CEO로 재직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우리가 침례교, 은사주의자, 장로교, 오순절 교단, 혹은 그 사이 어디에 속하든 간에,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한 번쯤 이런 의문을 품어봤을 것이다: “왜 하나님은 요즘 기적을 더 많이 행하지 않으실까?”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떠났을 때, 혹은 당연히 될 거라 생각했던 승진에서 탈락했을 때, 이런 의문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 순간들 속에서 하나님이 더 기적적으로 개입하지 않으신 이유를 조용히 질문하게 된다. 하지만 필자는 이 질문을 뒤집어, 관점을 완전히 바꿔보고 싶다.
“왜 하나님은 지금도 이렇게 많은 기적을 행하고 계실까?” 곰곰이 생각해보라.
히브리 백성은 이집트에서 400년 동안 노예로 살았다. 여러 세대가 태어나고 죽어갔고, 채찍 아래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잊으셨는지 끊임없이 기도하며 궁금해했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기적처럼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셨다. 칼을 든 정복자가 아닌, 말을 하는 자로. 사실 그의 말은 우리의 언변보다 훨씬 부족했다. 기억하듯이, 모세는 처음에 바로에게 가라는 하나님의 사명을 거부했다. 말이 서툴러서 자신이 하나님의 대변인이 될 자격이 없다고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언변이 아니라 순종을 보시고 그를 택하셨다.
그리고 열 가지 재앙이 임했다. 각 재앙은 점점 더 강력했고, 이집트의 우상들과 바로의 완악한 마음을 겨냥했다. 나일강이 피로 변하고, 개구리와 파리와 우박과 메뚜기가 땅을 덮고, 흑암이 임했다. 그리고 마지막 재앙으로 인해 이집트의 모든 장자가 죽었지만,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른 집은 제외되었다.
이것들은 무작위한 마술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의 계산된 표적이었다. 하나님의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완벽한 때에 역사하시는 분의 표적이었다. 그리고 홍해가 갈라졌다.
하나님은 물을 가르셔서 자신의 백성이 건너가게 하셨고, 바로의 군대가 뒤쫓아오자 물을 덮으셨다. 엄청난 기적이었다. 백성들은 환호하며 찬양의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곧 불평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능력을 직접 보고도, 그들은 의심했고, 불평했고, 두려워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신실하셨다.
40년 동안, 하나님은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그들을 먹이셨다. 매일 아침 신선하게 내려오는 완벽하고 영양 가득한 음식. 매일 반복되는 기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금세 그것에 싫증을 내기 시작했다.
“아, 또 그 완벽한 음식이네…” 그들은 사실상 매일의 기적을 귀찮은 일상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기적을 당연하게 여기는 인간의 모습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치유를 위해 기도한다. 그런데 그것이 숙련된 외과의사의 손길을 통해 오면, 우리는 그것을 ‘현대 의학’이라고 부른다. 공급을 위해 기도한다. 그런데 뜻밖의 수표나 일자리가 생기면, 우리는 그것을 ‘운’이나 ‘타이밍’으로 해석한다. 보호를 위해 기도한다. 그런데 교통사고가 날 뻔한 상황에서 무사하면, 우리는 그것을 ‘우연’이라 부른다.
우리의 심장박동, 매일 떠오르는 해, 숨 쉴 수 있는 공기 등 이 모두가 기적이다. 그러나 익숙함은 감사함을 마비시킨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야고보서 1:17)
만약 해가 매일 예측 불가능하게 뜬다면 어떨까? 어떤 날은 20시간, 어떤 날은 26시간, 심지어 내일 해가 뜰지조차 모른다면, 저녁 뉴스의 헤드라인은 아마 이렇게 될 것이다.
“내일, 아침이 올 것인가?” 그러나 하나님께서 땅을 규칙적으로 운행하시기에 우리는 그 일관성에 감사조차 하지 않는다. 예측 가능함은 경이로움을 무디게 만든다.
우리의 면역체계를 생각해보라. 만약 우리가 면역체계 없이 99%의 시간을 아프게 살다가, 어느 날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면역체계를 주셔서 이제 99%의 시간을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면,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하나님께 감사할까?
사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내 면역체계가 건강함을 감사드린 적이 언제였는가? 진실은,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기적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하지만 불에서 내려오는 불이나 떨기나무의 불꽃으로만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다. 만나처럼 조용히, 그러나 끊임없이. 매일의 공급, 조용한 인도하심, 부드러운 보호, 몸과 마음과 관계의 치유, 혼돈 속의 평안. 이런 기적들이 우리의 삶을 가득 채운다.
우리는 태도의 전환, 즉 감사하는 마음을 배워야 한다. 거대한 극적인 개입뿐만 아니라, 일상 속의 조용한 축복들인 가족, 건강, 자유, 음식, 친구들, 그리고 이 생이 끝이 아니라는 소망까지 모두를 감사해야 한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8)
믿는 자들에게는, 가장 큰 기적이 아직 기다리고 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요한계시록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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