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존재감은 없지만 삶은 행복해
도서 「비록 존재감은 없지만 삶은 행복해」

사람들을 매일 수많은 단어들을 만나고 내뱉는다. 때론 그 단어들을 뜨겁게 안는다. 스쳐 지나가는 단어가 존재감이 없다고 느낄 때가 많다. 내게로 가까이 다가오는 단어가 소중해질 때가 있다. 그 한 단어에 큰 행복감이 밀려온다. 인내는 커녕 인내 다음에 오는 공감과 배려를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억지’라는 단어가 나를 삼켰다. ‘억지’라는 단어 앞에서 나의 ‘인내’는 무너져 내렸다. 공감이 아니라 아들에게 인내조차 보일 수 없는 나이다. 배려와 공감은 아직 내가 쓸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선교지에서의 삶 속에 단 한순간도 후회가 남지 않을 수는 없다. ‘진심’은 후회의 빈도수를 줄여나가 준다. 삶의 면면에 ‘진심’이 묻어날 때, 그 삶은 후회가 아닌 감사로 채워질 것이다.

박혜정, 유남숙, 예준성, 황미 - 비록 존재감은 없지만 삶은 행복해

배위량 순례길
도서 「배위량 순례길」

대구·경북에 그리스도교 복음이 전해진 것은 배위량(베어드, William M. Baird, 1862-1931)이 상도 내륙지방을 전도하기 위해 대구를 처음 찾아온 1893년부터 시작되었다. 배위량은 동래를 거쳐 경상도를 내륙 지역을 둘러보며 선교 구상을 하는 가운데 1893년 4월 22일 대구를 방문했다. 그리고 1년 뒤인 1894년 4월 30일과 5월 12일 사이에 경상도 지역의 선교지부를 물색하기 위한 여행 중에 대구를 다시 방문했다. 선교지부에 대한 여러 가지 방안을 놓고 구상하던 중 그는 대구를 선교지부로 결정했다. 그는 1896년 1월에 대구읍성 남문 안에 땅과 집을 매입하고 그해 4월에 그곳으로 부인인 애니(Annie L. Adams)와 어린 아들 존(John)을 데리고 대구로 이사했다. 배위량은 영남 지역의 3·1운동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 그는 그 당시 평양에 있었다. 하지만 영남 지역에서 일어난 3·1운동은 다른 지역과 달리 3·1운동의 주된 사람들이 거의 기독교인들이었다.

배재욱 – 배위량 순례길

마음엄마
도서 「마음엄마」

지금도 내가 지키는 교육 철학은 '차별 없는 사랑'이다. 어떤 아이든, 어떤 가정이든, 어떤 상황이든 사랑으로 바라보려 한다. 모든 아이는 존재만으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아이의 인성과 정서, 사회성과 자기 조절력은 생애 초기에 결정적인 기반이 잡힌다. 부모와 보내는 이 시기의 애착이 아이의 세계관을 형성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정한다. 내가 감사일기를 본격적으로 쓰게 된 계기는 약 20년 전이었다. 감사를 고백하다 보면 어느새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게 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감사는 언제나 행복으로 가는 문을 여는 열쇠다. '할머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우리가 할머니 증손주 32명 안겨 드릴게요!' 고등학교 3학년인 제일 큰손자가 내 손을 잡고 가슴 뛰는 말을 해준다. 생각만 해도 설렌다.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단련해, 가능하다면 증손들에게 따뜻한 영향을 주는 '행복한 왕할머니'가 되고 싶다.

이명순 - 마음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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