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데이비드 주콜로토 박사의 기고글인 ‘슬픔과 불안이 나를 파괴할때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Grief and anxiety are destroying me. What is God up to?)를 29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주콜로토 박사는 전직 목사이자 임상 심리학자이며 35년 동안 병원, 중독 치료 센터, 외래 진료소 및 개인 진료소에서 근무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테네시의 더운 날씨에는 습도가 너무 짙어서 숨을 들이쉴 때마다 공기를 씹어야 할 것만 같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두 시간 동안 헬스장에서 운동을 마치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고자 밖으로 나왔지만, 첫숨을 들이쉬기 위해 싸워야만 했다.
오늘은 마치 후텁지근한 은유처럼 느껴진다. 심리학자로서 길고 무거웠던 한 주를 반영하는 듯하다. 공기는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 십대의 자살, 젊은 남편을 갑작스레 잃은 두 명의 젊은 미망인들, 재발 후 중태에 빠진 헤로인 중독자 등, 유난히 슬픔이 가득한 시기였다. 이 모든 무게가 가슴을 짓누른다. 마치 습도처럼, 답답하고 숨쉬기 어렵게.
인생에는 이런 순간들이 있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싶어질 때. 슬픔의 무게, 배신의 고통, 불안의 갉아먹음이 우리를 절망으로 끌어당긴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힘이 아니라 필사적인 본능으로, 살기 위해, 숨쉬기 위해, 하나님을 찾는 것을.
이 행위, 곧 절망 속에서 하나님을 부르는 것은 수동적인 외침이 아니다. 절망에 대한 저항의 행위다. 그것은 절망의 물결에 맞서는 조용하지만 단호한 의지의 표현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믿음의 표현일 것이다.
시편 기자가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시 28:1)라고 기록했을 때, 그는 산꼭대기에 서 있지 않았다. 그는 계곡 속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외치기를 선택했다. 그 선택은 거룩하다. 그것은 깊은 신학적 진리이자 심리학적 통찰을 드러낸다. 살고자 하는 의지, 숨쉬고자 하는 의지는 단순한 생존 본능을 넘어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선택할 수 있는 존재로, 무력함 속에서도 선택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지으셨다.
완전히 지치고 두렵고 아무 대답도 없는 상황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아가게 하는 무언가는 단순한 근성이 아니다. 전략도, 자기계발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헐떡임이다. 물에 빠진 사람이 숨쉬기 위해 몸부림치듯, 우리는 강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기에 그분을 찾는다. 그것은 본능이고, 설계이며, 소망이 담긴 절박함이다. 그리고 기적은 바로 여기 있다. 하나님은 완벽한 기도나 정제된 믿음을 기다리지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의 헐떡임 속에서 만나 주신다. 지친 마음의 가장 작은 방향 전환도 하나님께서는 받으신다. 그리고 움직이신다.
우리는 흔히 믿음을 평온한 확신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 속의 믿음은 더 거칠고, 두려움과 약함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두려움과 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기로 하는 의지적 결정이다.
이것은 스토아적 태도가 아니다. 운명에 대한 체념이 아닌, 운명을 주관하시는 분께 드리는 항복이다. 모든 것이 포기하라고 말할 때 드리는 기도는 영적 단순함의 표시가 아니다. 그것은 거룩한 저항의 행위다.
슬픔 속에서 하나님을 찾기로 선택할 때, 우리는 세상과 정반대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도망치라, 무감각해지라, 산만해지라 말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영혼은 다른 길로 훈련된다. 찾고, 부르짖고, 씨름하고, 기다리는 길로 말이다.
이것은 약함이 아니다. 영적 강함이다. 눈물 속에서 기도할 때, 우리의 의지는 절망에 저항하고 있다. 하나님께 의문을 품으면서도 성경을 펼칠 때, 우리의 의지는 냉소에 저항하고 있다. 기도할 말을 찾지 못해 다른 이에게 기도를 부탁할 때, 우리의 의지는 고립에 저항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인간 영혼의 역설은 이렇다. 절망이 숨을 막으려 할 때, 더 깊은 무엇인가가 깨어난다. 살고자 하는 본능, 가장 짙은 공기 속에서도 희망이 있을 거라 믿고 들이마시는 의지가 깨어나는 것이다.
이 거룩한 기적은, 답 없는 질문들 속에서도, 하나님이 여전히 들으신다는 것이다. 우리의 말이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분의 자비가 가까우시기 때문이다. 지친 영혼의 가장 작은 움직임조차 잊히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것을 받으시고, 응답하실 뿐 아니라 가까이 다가오셔서 생명을 불어넣으시며, 우리가 가장 약할 때 은혜가 가장 강하다는 것을 다시금 증명하신다.
그것은 다듬어진 믿음도, 승리의 외침도 아니다. 그리고 그 진짜 믿음 속에서, 하나님은 일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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