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기독교 변증가이자 작가인 로빈 슈마허의 기고글인 ‘우리는 다가오고 있는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Death is coming for you. Are you prepared?)를 9일(현지시각) 게재했다.
기독교 변증가로 활동하고 있는 슈마허는 작가로도 활동하면서 많은 책을 냈고 미국 내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필자와 제 아내는 최근 한 달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막내 딸이 두 차례 육상 대회에 출전하는 모습을 지켜봤고 이후 3주 동안은 플로리다에서 시간을 보냈다. 예년 같았으면 비행기를 이용했겠지만, 요즘 항공 여행은 최악의 시외버스 여행과 비슷한 수준이라 이번에는 SUV에 짐을 싣고 직접 운전하기로 했다.
여정 중 우리는 ‘Christian Aid Ministries’가 설치한 여러 개의 도로변 광고판을 보았다. 해당 단체는 (83) FOR-TRUTH 번호를 운영하며, 전미 각지에 성경과 도덕 문제 등 다양한 기독교 주제를 다룬 광고판을 설치해왔다.
그 광고판들 중에서 필자의 눈에 가장 강하게 남은 문구는 이랬다: 심장 모니터가 멈추는 그림 아래, “당신은 죽은 후 하나님을 만날 것입니다.” 그리고 아래에는 히브리서 9장 27절이 적혀 있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는, 냉정한 현실이었다.
예수님의 재림 시까지 살아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히브리서 저자가 말하듯, 육신의 죽음 그 자체보다 훨씬 더 중대한 것은 그 이후에 벌어질 일이다. 예수님도 동일하게 경고하셨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마태복음 10:28)
하나님을 ‘영원한 멸망자’로 묘사하는 개념은 섬뜩할 수 있지만, 이는 단지 신약에서만 나타나는 개념이 아니다. 구약에서도 이 ‘멸망자’의 모습은 분명하게 등장한다.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놓치기 쉬운 핵심이 담겨 있다.
이 구약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언젠가 그 멸망자가 우리의 문을 두드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 문이 열렸을 때 벌어지는 일이야말로 우리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구원하는 피’와 ‘구원하지 못하는 피’
예수님의 생애를 제외하면, 성경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인물은 모세다. 전체 이야기를 다시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만, 필자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 그중에서도 마지막 열 번째 재앙에 관한 것이다.
앞선 아홉 가지 재앙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대부분 그 영향에서 보호받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박 재앙에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거주하는 고센 땅에는 우박이 없었더라” (출애굽기 9:26)고 기록되어 있다. 아홉 번째 재앙인 흑암에서도 “이스라엘 자손은 자기들의 거주지에서 다 빛이 있었더라” (출 10:23)고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교훈은,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 자체가 그들을 하나님의 진노에서 보호해주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정체성만으로는 마지막 재앙, 즉 죽음의 사자가 찾아오는 사건 앞에서는 충분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한 가지 재앙을 바로와 애굽에 내리리니 그 후에야 너희를 보내리라 밤 중에 내가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리니 애굽 땅의 모든 처음 난 것은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여종의 장자까지 다 죽으리니 가축의 처음 난 것도 죽으리라” (출 11:1, 5)
이번에는 혈통, 민족, 종교적 배경이 아무 소용이 없었다. 유일한 구원의 조건은 문설주에 발라진 어린 양의 피였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치러 지나가실 때에 문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피가 있음을 보시고 그 문을 넘어가시고 멸하는 자가 너희 집에 들어가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출 12:23)
우리는 그 결과를 알고 있다. 죽음은 애굽 전역을 휩쓸었고, 하나님의 경고를 믿고 믿음으로 순종한 이스라엘 가정들만이 구원을 받았다.
“모든 길은 결국 하나님께로 통한다”
오늘날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앞서 말한 광고판처럼,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리고 그 이후,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 만남이 구원자 하나님인지, 멸망자 하나님인지가 문제다. 이 결정은 단순한 윤리나 종교적 정체성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이 어린 양의 피를 믿고 순종했을 때 구원을 받았듯, 오늘날 우리도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에게는 “모든 피조물 중 맏아들”(골 1:15)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희생되셨다. 어린 양 대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 1:29)의 피를 보고, 멸망자는 손을 거두신다.
이것이 유월절 이야기의 마지막 메시지이며, 필자가 여정 중 본 그 광고판의 경고이기도 하다. 세상 대부분의 종교는 ‘우리의 길만이 하나님께 가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진실은 이렇다: 모든 길은 결국 하나님께로 이어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님은 존재하시기 때문이다. 당신이 기독교인이든, 무슬림이든, 힌두교도이든, 무신론자이든, 혹은 ‘치킨샐러드의 신’을 섬기는 자이든 간에, 죽은 후에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지금 무엇을 믿고 있든, 그 만남이라는 사실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
문제는 그 이후다. 당신은 구원자 하나님을 만나겠는가, 아니면 멸망자 하나님을 만나겠는가?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면, 지금 준비하기를 강력히 권한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상태로 심장박동이 멈춘 후, 히브리서 9장 27절의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공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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