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철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천상담소 실장
이동철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천상담소 실장이 지난해 9월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열린 '임금체불 근절대책, 제도개선 토론회'에서 임금체불 실태와 해결방안에 대해 발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국내 임금체불액이 처음으로 2조원을 넘어섰고, 올해 1분기에도 6000억원을 웃돌며 여전히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정부는 오는 10월부터 임금체불 사업주에 대한 제재를 대폭 강화할 방침이지만, 전문가들과 현장의 근로감독관들은 실효성 있는 처벌과 인력 보강 없이는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오는 10월 23일부터 이른바 ‘상습체불근절법’이라 불리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시행한다. 개정안은 상습적으로 임금을 체불하는 사업주를 규정하고 이들에게 보다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것이 골자다. 구체적으로는 직전 연도 기준으로 3개월 이상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거나, 5회 이상 체불하면서 총 체불액이 3000만원 이상인 경우, 해당 사업주를 ‘상습체불 사업주’로 지정한다. 이들은 신용정보기관에 관련 정보가 통보되고, 국가 및 공공기관의 보조금 신청이나 각종 지원에서 제한을 받게 된다.

또한 체불금에 대한 지연이자는 기존에 퇴직자에게만 적용됐지만, 앞으로는 재직자에게도 연 20% 수준으로 동일하게 부과된다. 여기에 1년 이상 3개월분 임금을 체불할 경우, 피해 근로자는 최대 3배까지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도 함께 도입된다. 아울러 2회 이상 형사처벌을 받고 명단이 공개된 체불 사업주가 다시 임금을 체불할 경우, 반의사불벌죄가 적용되지 않으며, 출국금지 요청도 가능해진다.

그러나 현장과 전문가들은 이 같은 법률 개정만으로는 임금체불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박성우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임금체불은 형사처벌이 가능하다고 법에 명시돼 있지만, 실제로는 단순 채무관계 정도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며 “법정 벌금 상한이 3000만원임에도 대부분 10% 수준만 선고되며 실형은 드물다”고 지적했다. 이어 “임금체불죄는 유일하게 반의사불벌죄로 되어 있어 합의만 되면 처벌을 피할 수 있다”며 “진정이 들어가도 3개월 안에 지급하면 처벌을 피할 수 있는 현실에서 사업주들은 오히려 임금 지급을 미루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도 유사한 지적을 내놓았다. 그는 “한 번 체불을 해본 사용자는 불이익이 없다는 사실을 안다”며 “체불액을 지급하더라도 반드시 처벌이 뒤따라야 제도 효과가 생긴다”고 말했다. 특히 3년으로 정해진 임금채권의 소멸시효 기간을 최소 5년 이상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장 생계가 급한 근로자는 진정을 넣지 못하고 시간이 흐른다. 나중에 여유가 생겼을 때는 소멸시효가 끝난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현장의 근로감독관들도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목포지청 소속 민충기 근로감독관은 네팔 출신 외국인 근로자를 감금·폭행하고 임금을 체불한 돼지농장 사업주를 구속한 바 있다. 그는 “사업주들은 기소를 가장 두려워한다. 그렇기에 기소 직전이 되어야 체불금을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여전히 ‘근로기준법 위반으로는 실형이 나오지 않는다’는 인식이 남아 있어 실질적인 억제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현재 임금체불에 대한 양형기준은 체불액이 1억원 이상일 경우 최대 2년 6개월까지 선고가 가능하지만, 실제 실형 선고는 극히 드물고 대다수는 벌금형에 그치고 있다. 이에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상원 대법원 양형위원장을 만나 고액 체불의 경우 집행유예를 선고하지 않도록 양형기준을 강화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특히 ▲악의적인 체불 ▲근로자에게 심각한 피해를 초래한 경우 ▲취약계층 대상 범행 ▲동종 전과 등을 ‘집행유예 배제 사유’로 포함해달라는 제안이 있었으나, 아직 구체적인 반영은 이뤄지지 않았다.

법 개정 외에도 수사 인력 확충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전국 근로감독관 정원은 2200명으로, 지난해 접수된 임금체불 사건만 19만5000건에 달했다. 피해 근로자 수는 28만명을 넘었으며, 근로감독관 1인당 평균 89건 이상의 사건을 처리한 셈이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 등 다른 사건까지 포함하면, 1인당 연 180건이 넘는 사건을 맡게 돼 수사 여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4월, 통영지청에서 임금과 퇴직금 등 총 12억4000만원을 체불한 사업주를 구속한 임종범 감독관은 해당 구속영장을 신청하기까지 1년 이상 수사가 필요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20건을 담당하고 있었지만, 구속수사를 진행하며 사건이 40건까지 늘었다”며 “동료들의 업무 부담도 커지는 상황이라 수사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말했다.

실제 현장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전직 감독관 A씨는 “고용부는 실업급여나 내일배움카드 같은 서비스 행정 이미지만 강해 사업주들이 임금체불 조사에 크게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며 “진정인도 체불임금 지급이 우선이다 보니 감독관이 내실 있는 수사를 하기에는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김성희 L-ESG평가연구원 원장도 “임금체불 감독은 악성 탈세자에게 세금을 걷는 것과 같다”며 “근로감독관들은 체불 외에도 다양한 노동관계법 감독 업무를 병행해야 하는데, 인력이 부족해 사실상 다른 일을 못 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시절 근로감독관 수가 한 차례 증원됐지만 이후로는 큰 변화가 없었다며 “임금체불 문제는 어떤 정부든 해결해야 할 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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