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꿈들이 우리의 가치를 끊임없이 증명(証明)하도록 압박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에 심어 주신 이 거룩한 꿈은 우리의 가치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확정(確定)되었음을 선언하며 그 압박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합니다. 바로 이것이 이 거룩한 꿈이 우리 삶에서 참된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해야만 하는 결정적 이유입니다. 순서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가를 결정하는 뿌리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삶을 목회와 선교 같은 ‘하나님의 일’과 직업과 물질 같은 ‘세상의 일’로 나누어 왔습니다. 최근에는 ‘삶의 모든 자리가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라는 통찰이 이 구분을 허물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그 어느 것도 ‘첫 번째 꿈’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첫 번째 꿈은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그분의 자녀가 된 ‘자녀 됨’입니다.
허욱 - 자기 증명의 파산
모세 율법을 잘 아는 사람에게 이 선언은 충격적일 수 있다. “제물이 헛되다.”, “분향이 가증하다.”, “절기를 미워한다.” 그러나 율법의 본래 뜻을 이해한 사람이라면 덜 놀랐을 것이다. 율법의 중심은 하나님을 온 존재로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더 무거운 일을 버려 둔 채, 제사와 절기만 반복한다면, 그것은 경건이 아니라 위장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유다에게 이렇게 촉구하신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사 1:16-17). 여기서 유다의 회복은 단지 용서(지위의 변화)에 머물지 않는다. 회개(삶의 변화)가 함께 온다. 특히, 고아와 과부에게 공의를 행하는 일이 핵심이다. 율법이 반복해서 이웃 사랑으로 명하는 이들이 바로 고아와 과부이기 때문이다. 선행은 이사야의 구원 이해에서 책 전반에 걸쳐 중요한 주제로 남는다.
토머스 맥콜, 케일럽 프리드먼, 매트 프리드먼 - 선행, 개신교와 만나다
그리스-로마 세계 안에서 엘리트가 아닌 대중에 의해 작성된 문헌들 중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장르는 독서 관습에 의해 결정되며, 독서 관습은 문학 작가와 독자가 속한 사회적 세계에 의해 형성된다. 그리스-로마 문학을 보존한 이들은 대부분 귀족 계층이었고 그들의 관심은 주로 자신들의 엘리트 문학에 집중되었기에, 오늘날 복음서를 비교할 수 있는 사회 다수 계층의 문헌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마가복음은 엘리트 문학처럼 읽혀지지 않는 대중문학에 속할지라도, 대중문학은 또한 그리스-로마 세상 대부분의 문맹적 대중 가운데 그 내러티브가 지향하는 바를 성취할 역량이 되었다. 이런 관점으로 볼 때 마가복음의 문학적 특성은 점진적으로 문학 비평가들 안에서 인식되고 있다. 예수님을 “집주인”이라 부르는 것은 예수님의 분열된 집의 이슈를 다룬 마가복음의 첫 주요 강화를 연상시킨다. 그곳에서 예수님의 가족들은 그분이 미치셨다고 생각하며, 그를 붙잡으러 나왔는데, 이는 앞서 논의한 바와 같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만을 포함하도록 그분의 가족을 재정의하신다. 이 강화에서 예수님은 이제 곧 온전한 권위로 돌아오실 집주인으로서 자신을 제시하신다. 따라서 이 강화 안에서 “깨어 있는 것”은 첫 번째 강화 안의 가르침인,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과 동등하다.
데이비드 M. 영, 마이클 스트릭랜드 - 마가복음 속 예수님의 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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