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단순한 부흥이 아니라 근본적인 개혁이다. 우리의 도덕적 질병과 영적 질병을 뿌리까지 파고들어 결과가 아니라 원인을, 증세가 아니라 병 자체를 치료해야 한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혁명의 불꽃을 잃어버렸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더 이상 위험한 일도, 희생을 치러야 하는 일도 아니다. 은혜는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값싼 것이 되어 버렸다. 요즘 우리는 세상을 향해 삶의 불편을 전혀 겪지 않아도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증명하느라 바쁘다. ‘세상의 모든 것뿐 아니라 천국도’ 누릴 수 있다면서 말이다. 은사는 큰 오르간을 이루고 있는 하나하나의 파이프와 같아서 연주자가 폭넓은 음역대로 최고의 연주를 하게 해 준다. 거듭 말하지만, 은사는 타고난 달란트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다. 타고난 달란트는 우리가 사람의 범위 안에서 일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몸을 통해 우리가 타락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영원한 일을 하게 하신다.
A.W 토저 - 신앙의 깊이를 더하라
삶이 선물이라면 우리는 이미 그것을 받았다. 완력으로 세상을 빼앗을 필요가 없다. 누군가가 이미 세상에서 우리의 몫을 주셨다. 나아가서, 삶이 선물이라면 우리가 세상과 사람들에게서 끊임없이 받는 에너지와 지원과 돌봄도 곧 선물이다. 물론 우리에게는 부족한 것, 우리가 갖지 못한 것, 얻기 위해 애쓰는 것이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의 밑바탕에는 생명 자체가 있다. 생명은 우리가 요구하고, 얻기 위해 뭔가를 하고, 받을 자격을 갖추기 전에(우리는 그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미 받은 선물이다. 자신에게 생명을 주거나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지킬 수는 없다. 우리는 자족하지 못한다. 우리의 존재를 스스로 지탱하지 못한다. 우리는 유한하고 취약하며, 돌봄과 피난처와 동행이 필요한 존재다.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만큼 생명이 원래 우리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온 것이라는 사실도 더없이 분명하다. 삶이 선물이라면 삶은 은혜요 기적이다. 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에 은혜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기적이다.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은 그 선물을 받는 것뿐이다.
바비 제이미슨 - 허무한 날에는 전도서를 읽는다
시편 119편을 묵상하실 때 한 가지를 마음에 두십시오. 우리는 종종 "율법"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선포하는 "복음"과 구별되는, 단지 하나님의 계밍들로만 생각합니다. 이는 분명 중요한 신학적 구별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또한 성경의 첫 부분 끝 구약의 처음 다섯 권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들(창세기에서 신멍기까지)은 계명 이상의 것을 담고 있습니다. 이 책들에는 또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이야기와 하나님의 장차 임할 은혜에 대한 예언 갇은 것들도 들어 있습니다. 시편 119편에 반복해 등장하는 그 용어들에 "길", "약속" 및 단순히 "말씀"이 포함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의 "율법"은 단지 지켜야 할 규칙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온갖 종류의 "지식과 진리"를 게시합니다.
데이비드 반드루넨 - 유배 중의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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