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 슈마허(Robin Schumacher)
로빈 슈마허(Robin Schumacher) ©기독일보 DB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기독교 변증가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로빈 슈마허의 기고글인 ‘기독교인의 삶은 어려울 수 있다: 진정한 구원 신앙의 한 가지 중요한 표시’(The Christian life can be hard: One critical mark of true saving faith)를 12일(현지시각) 게재했다.

기독교 변증가로 활동하고 있는 슈마허는 작가로도 활동하면서 많은 책을 냈고 미국 내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우리는 ‘포기’에 아주 익숙한 시대를 살고 있다. 크로스비, 스틸스 & 내쉬(Crosby, Stills & Nash)의 노래 Southern Cross에는 “우리는 실패하는 데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그건 가장 쉬운 일이었다”고 노래된다. 이 말은 단순한 가사가 아니라, 현실적인 통계가 뒷받침하고 있다.

새해 결심에 관한 데이터를 보면, 결심한 사람 중 23%는 첫 주에 포기하고, 43%는 1월 말까지 포기하며, 연말까지 결심을 유지하는 사람은 고작 9%에 불과하다. 운동에 있어서도 비슷한 양상이다. 1월에 헬스장에 등록한 사람의 80%는 2월 중순까지 정기적으로 운동을 그만둔다. 하버드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온라인 교육 수강자의 이수율은 5~15% 사이를 맴돈다.

왜 우리는 이렇게 쉽게 포기하는 걸까? 전문가들은 심리적, 감정적, 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한다. 짧은 동기부여, 비현실적인 기대, 계획 부재, 책임의식 결여, 새로운 정체성으로의 전환 실패 등이 주요 원인이다. 하지만 한 가지 단순한 이유가 더 있다. 그 일이 ‘힘들기’ 때문이다.

건강해지는 일은 힘들다. 학위를 따는 것도 어렵다. 가치 있는 무엇이든 쉽게 얻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 도전은 현재의 편안함을 깨뜨리고, 상황이 어려워질 때 고통을 유발하며, 결국 인내와 강인함 없이는 완주할 수 없다.

스티브 매그니스(Steve Magness)는 저서 Do Hard Things에서 진짜 강인함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진짜 강인함은 불편함이나 고통을 경험하는 것이다… 강인함이란 고통 속에서도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잘한 결정”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오랜 세월 신앙을 지켜온 성도에게 물어보면, 신앙생활은 결코 “예수님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당신의 최고의 인생”이라는 식의 단순한 서사가 아님을 고백한다. 말하자면, 기독교인의 삶은 어렵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씨 뿌리는 자의 비유(마태복음 13장)에서도 씨를 뿌린 네 종류의 밭 중 열매를 맺은 밭은 하나뿐이었다. 그 밭은 고난을 통과해 끝까지 남은, 하나님의 손에 심긴 믿음의 삶을 나타낸다. 이런 신앙의 본질에는 ‘인내’라는 특성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전임 담임목사는 이 시대의 반기독교 정서를 언급하며 “세상에서 가장 답답한 점은 그것이 끊임없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에베소서 6장 12절에 묘사된 어둠의 세력은 결코 쉬지 않고 싸움을 계속한다. 동시에 성령은 참된 신자 안에서 구원의 증거로서 인내를 지속적으로 공급하신다. 유다는 이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유다서 1절)라고 표현한다.

예수님은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고 하셨지만(마태복음 11:30), 실제 삶에서 믿음을 지켜 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영적 인내다. 존 맥아더(John MacArthur)는 이렇게 말했다. “복음에 적대적인 세상 속에서 인내는 필수이다. 인내가 없다면, 죄와 거짓의 공세는 아무리 선한 뜻을 가진 신자라도 쓰러뜨릴 것이다.”

성경에서 반복되는 단어는 강조를 나타낸다고 해석학자들은 말한다. 그렇다면 ‘인내’는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성경에서 ‘인내’를 뜻하는 헬라어는 후포모네(hupomoné)이며,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 번째는 시련과 고난 앞에서도 버텨내는 능력이다. 성경은 고난이 찾아올 것이라 분명히 말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인내가 우리를 지탱해 줄 것이라고 약속한다.

예수님은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마태복음 10:22)라고 하셨고,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을 것이다”(누가복음 21:19)라고 말씀하셨다. 바울은 “많은 인내로, 환난과 궁핍과 곤란 가운데서”(고린도후서 6:4) 믿음을 지켰으며, “우리가 참으면 또한 그와 함께 왕 노릇 할 것이라”(디모데후서 2:12)고 말했다. 디모데에게는 “모든 일에 근신하고,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라”(디모데후서 4:5)고 권면했다. 사랑에 대해서도 바울은 “모든 것을 견디며”(고린도전서 13:7)라고 정의했다.

야고보는 “믿음의 시련은 인내를 만든다”고 말하며(야고보서 1:3), 히브리서는 인내를 가장 많이 다루는 성경 중 하나다. 당시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은 환난 속에서 신앙을 포기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하여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하니라”(히브리서 10:36)고 하며, 두 번째 의미인 “기다림”의 차원도 설명한다. 인내는 단순히 버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다리는 일이기도 하다.

때때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바로 ‘기다리는 것’이다. 욥도 “내가 어찌하여 참겠느냐?”(욥기 6:11)라고 탄식했다.

히브리서는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말한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가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게이지 아니하시더니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히브리서 12:2–3).

이처럼 ‘예수를 바라보는 것’이 바로 인내의 등대다. 캐스팅 크라운즈(Casting Crowns)의 노래 Just Be Held는 이렇게 노래한다. “만약 네 눈이 폭풍을 바라본다면 내가 널 사랑하는지 의심할 거야 하지만 네 눈이 십자가를 바라본다면 내가 항상 너를 사랑했음을 알게 될 거야”

반대로 배교(Apostasy)는 인내와 정반대에 있는 것이다. 요한은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요한일서 2:19)라고 기록한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참된 신자에 대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는 너희에게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히브리서 6:9)라고 격려한다.

기독교인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인내를 주시는 분이다. 그러니 만약 당신이 요즘 삶에 지쳐 있다면, 바울의 격려를 기억하라.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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