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도의 구속에 골몰해 보면, 구속을 보편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구속이 무엇인가? 그것은 구속의 가능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구속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구속을 이루시고 획득하셨다는 말이다. 신약성경은 구속을 노래할 때마다 승리의 어조로 노래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피로 우리를 구속하여 하나님께 드리셨다(계 5:9). 영원한 구속을 이루신 것이다(히 9:12).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구속을 그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구원을 유효적으로 성취하는 것으로 해석하지 않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능력과 희생을 통해 이룬 구속의 개념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존 머레이 - 존 머레이의 구속

간단히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리스도가 죽었을 때, 나도 함께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관점으로는 내가 내 죄로 말미암아 죽었고,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나서 이전의 죄에서 의롭다 함을 얻은 다른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인데, 이는 주님이 내 자신의 죄로 인해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롬6:7). 이뿐 아니라, 이것은 나의 성화의 비밀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갈보리의 그 십자가에서 죄인인 내가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그 십자가에 나를 매달고 나 자신을 죽은 자로 여겼을 때,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이 내 안으로 들어오고 이제 더 이상 나의 싸움, 나의 선함, 나의 악함이 아니라 내 안에 사시는 주님의 싸움과 주님의 선함이 된다. 그러므로 내가 주님 안에 거하는 한 나는 주님과 같이 여겨지고, 주님이 행하신 것처럼 나도 행할 수 있게 된다.
A.B. 심슨 – 그리스도의 생명, 나의 생명

주 안에서 같은 마음, 한마음이 되지 않으면 의견 충돌로 인해 갈등이 생기고, 결국 교회 안에 서로 다른 파벌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뜻으로 같은 마음을 품으면 분명히 분쟁이 일어나고, 공동체는 큰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게 됩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불화 원인이 된 두 여인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의 낮아지심을 본받아 사랑과 겸손으로 하나 될 것을 권면합니다. 성도가 진정으로 하나 될 수 있는 길은 오직 주 안에 거하는 신앙뿐입니다(빌
2: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2:5). 그리스도의 마음이란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 그리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성품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주님의 마음을 품을 때 한뜻으로 하나 될 수 있습니다. 목회자의 생각도, 장로님과 집사님, 권사님의 생각도 주님의 뜻에 집중될 때, 한마음으로 교회를 평강으로 이끌고, 그 교회는 기쁨이 충만한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안병만 – 하나님의 기쁨, 나의 기쁨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