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두 머레이 작가
압두 머레이 작가. ©embracethetruth.org/abdu-murray/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압두 머레이 작가의 기고글인 ‘'그리스도는 왕이다'라는 문구의 진정한 의미’(What the phrase ‘Christ is King’ really means)를 최근 게재했다.

머레이 작가는 종교 신앙과 신흥 문화 트렌드가 교차하고 충돌하는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연사, 작가,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Embrace the Truth’라는 단체를 지난 2004년 설립한 후 수십 년 동안 주요 종교 및 비종교 사상 전통이 신흥 문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노력해왔는지 분석한 바가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부활절은 기독교 신앙 전체가 기반을 두고, 심지어는 그것에 의존하는 중심적인 기적이다. 물론, 크리스마스는 더 화려하고, 특히 서구권에서는 부활절보다 더 긴 기간 동안 기념된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 곧 우리의 죄와 죽음을 이기신 사건이 없다면 크리스마스는 또 다른 유명한 인물의 생일을 축하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에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부활절이다.

매년 부활절이 다가오면,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핵심 주제로부터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는 산만한 이야기들과 엉뚱한 논쟁들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부활절의 비밀"이나 "초대 교회가 숨긴 진실" 같은 제목의 다큐멘터리는 부활의 역사적 진실성을 반박하려는 시도를 하며 매년 반복된다.

올해 고난주간 동안에는 “그리스도는 왕이시다(Christ is King)”라는 겉보기에 분명히 기독교적인 문구가 또 하나의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어떤 이들은 이 표현이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핵심 기독교 신앙의 고백이라고 말한다. 즉, 인류의 구세주이자 메시아이신 예수께서 온 세상의 왕이라는 믿음이다.

그러나 이 문구를 반유대주의적인 신호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보도도 있다. 그들은 이 표현을 통해 자신들의 발언을 감추고, 일반적인 기독교인들의 비판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예를 들어, 무슬림으로 개종한 유명 인물 앤드류 테이트와 SNEAKO는 “그리스도는 왕이시다”라는 말을 트윗한 바 있다. 이 표현은 이슬람의 신앙과 전혀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을 비판하고 기독교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보인다.

우리는 최근의 역사 속에서, 단순한 표현들이 선전 도구로 변질되어 갈등을 조장하고, 그 표현들 자체를 방패삼아 자신들을 방어하는 사례들을 보아왔다. 하지만 이런 모든 수사적 조작과 사회적 혼란을 넘어서서, “예수 그리스도는 왕이시다”라는 주장에는 본래의 의미가 존재한다. 그 의미는 특정 집단을 정복하거나,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짓밟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왕이신 이유는 그분이 더 이상 죽음 아래 있지 않기 때문이며, 2,000년 전 첫 부활절 이후로 지금까지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

수세기 동안, 지상의 왕들은 자비롭거나 폭군으로서 거대한 영토를 다스려 왔지만, 그 모든 권력과 힘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죽음과 부패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들이 세운 제국들 또한 쇠퇴하거나 완전히 무너졌다. 지상의 왕들은 사라지지만, 그리스도 왕은 영원히 살아 계십니다. 지상의 왕들은 싸우지만, 그리스도 왕은 용서하신다.

이와 관련하여, 흔히 존 스토트(John Stott)의 작품으로 알려진 시 「가시관을 쓴 왕(The Thorn-Crowned King)」이 떠오른다: 수많은 왕들이 황금 왕관을 썼지만, 오직 한 분만이 가시로 된 왕관을 쓰셨고, 수많은 왕들이 보석으로 장식된 보좌에 앉았지만, 오직 한 분만이 외롭게 십자가에 매달리셨네. 환호하는 무리들이 장식된 거리로 왕들을 환영했지만, 오직 한 분만이 머리를 숙인 채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갈보리로 나아가셨네. 단 한 분의 왕. 다른 모든 왕국은 사라지고 사라지고 있지만, 그분의 왕국만은, 그분의 가시 면류관처럼 영원하리라.

그리스도께서 왕이신 이유는 그분이 죽음을 이기셨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모든 왕들이 결국 패배한 그 적, 죽음을 정복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는 아니지만, 그 나라는 모든 사람, 부자나 가난한 자, 강한 자나 온유한 자, 백인이나 흑인, 남성이나 여성, 이방인이나 유대인을 부르시는 나라이다. 죽임당하신 어린양, 그리고 부활하신 왕 안에서 우리는 소망을 찾는다.

에베소서 2장 14~16절에서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음을 이렇게 말한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바울은 “그리스도는 왕이시다”는 표현이 사람들을 해치는 데 쓰일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만일 누군가가 그 표현을 이용해 다른 사람을 상처입힌다면, 그는 그리스도께서 왕이신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적개심을 죽이시는 왕이시다. 예수님의 부활이야말로 그분이 하시려 했던 일을 정말로 이루셨음을 증명하는 사건이다. 이번 부활절, 그 진리에서 시선을 빼앗기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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