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기독교 변증가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로빈 슈마허의 기고글인 ‘기독교인이 되지 못하는 방법’(Here’s how you didn’t become a Christian)을 14일(현지시각) 개제했다.
기독교 변증가로 활동하고 있는 슈마허는 작가로도 활동하면서 많은 책을 냈고 미국 내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나는 어떻게 기독교인이 되지 않았는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나는 평생 교회를 떠난 적이 없다. 아버지는 믿지 않는 분이었지만, 어머니는 신자였고 나는 아직 걷지도 못할 때부터 주일학교와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청소년 시절에는 청소년 모임, 캠프, 정기적인 교회 출석이 일상이었다. 누군가 내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인지 의문을 제기했다면, 나는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12살 때 성경이 말한 대로 앞으로 나가 침례를 받았는데, 그게 다 아니었던가?
많은 무신론자들과 회의론자들이 지적하듯이, 많은 사람들이 단지 문화나 가족적 배경 때문만으로 자신을 기독교인이라 여긴다. 나 역시 그 물줄기를 따라 자연스럽게 헤엄치고 있었고, 스스로가 참된 신자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모든 것이 바뀐 것은 내가 19살이 되었을 때였다. 무슨 이유였는지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어느 날 갑자기 성경 예언에 관한 책 하나에 매료되었다. 나는 하나님을 향해 열정적인 사람이 아니었고(오히려 정반대였고), 예언에 대해 관심도 없었으며, 평생 들어왔던 성경 말씀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책의 마지막 장에는 복음을 이해하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 있었는데, 그것은 분명 내가 이전에 수천 번은 들었을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 저자는 분명히 말했다. 예수님의 재림은 그분과 ‘구원 관계’를 맺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는 내가 바로 그런 사람임을 깨달았다.
책에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방법이 간단히 설명되어 있었고, 그것은 마치 내 어깨에 처음 얹힌 따뜻한 손처럼 느껴졌다. 나는 소파 위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저자의 안내를 따라 하나님께 구원을 간절히 외쳤다.
그 이후로 외적인 변화는 없었다. 나는 여전히 같은 직장을 다녔고, 같은 학교를 다녔으며, 같은 가족, 같은 친구들, 같은 교회에 다녔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무언가 달라졌다.
나는 어머니가 신자였기 때문에 기독교인이 된 것도 아니고, 내가 뭔가를 했기 때문도 아니다. 사실 그 순간까지도 나는 하나님께 별 관심이 없었다. 내가 하나님의 가족으로 들어가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비 때문이었다. 그분이 친히 나를 구원하신 것이다.
요한복음에서 요한은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먼저 말한 후,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지 않는지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는 이렇게 기록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한복음 1:12–13)
나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거듭나기로 결정했다. 그렇지만 그 결정은 내가 물려받은 것도, 스스로 이룬 것도, 내 본성 안에서 원했던 것도 아니었다. 이제 요한이 말한 내용을 더 자세히 살펴보자.
세 번의 스트라이크 그리고 아웃
가문 때문이 아니다. 요한은 먼저 우리가 가문(‘혈통’) 때문에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예수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이유로 안전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그들에게 이렇게 경고했다: “너희 마음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생각지 말라.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마태복음 3:9)
베드로는 이렇게 덧붙인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베드로전서 1:23)
행위로도 아니다. 우리가 침례나 선행 같은 행위로 구원받는 것도 아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외적 행위로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디도서 3:5–7)
바울은 우리가 스스로 이룬 것이 아니라 “상속자”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한다. 즉, 우리는 받은 것일 뿐이다.
우리의 의지로도 아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처음부터 원해서 기독교인이 된 것도 아니다. 이건 많은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어려운 개념이지만, 성경적으로는 확고한 진리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이기 때문이요,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런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고린도전서 2:14)
야고보는 말한다: “그가 그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으니…” (야고보서 1:18)
베드로도 동일하게 전한다: “그의 크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베드로전서 1:3–5)
바울은 이렇게 요약한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지 아니하며,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로마서 9:16)
칼빈은 이 모든 내용을 잘 정리한다: “그러므로 먼저, 믿음은 우리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중생의 열매이다. 왜냐하면 복음서 기자는 사람이 하나님께로 거듭나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고 단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하늘의 선물이다. 둘째로, 믿음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며, 하나님의 영으로 새롭게 되지 않고는 누구도 믿을 수 없다.”
필자는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니 오늘 당신이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의 부모, 선행, 혹은 타락한 결정 능력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린도전서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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