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구 박사
정성구 박사 ©기독일보 DB

고난 주간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을 기억하는 주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들을 구속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 그러나 정권과 교권이 합해서 예수는 정죄되고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3일 만에 부활하셨다. 이런 내용은 신약성경 4복음서에 모두 있는 내용이다.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다르지 않다. 서기관, 제사장, 바리새인 등 기존 질서는 새로운 개혁 사상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정권과 교권과 재판이 합작해서 구원과 진리와 생명의 복음을 전하러 오신 메시아를 죽였다. 그리고 거기에는 배신자들이 있었다. 가롯 유다와 수제자 베드로였다. 가롯 유다는 성경에 있는 대로 ‘돈을 좋아하는 자’였다. 그래서인가 3년 동안 모시던 예수를 은 30을 받고 팔아넘겼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스승에게 입맞춤하고 위장 전술을 썼다. 예수를 가까이 모신 것을 기회로 삼아 수사당국에 넘겼다.
인류 역사를 보면 국왕의 주변에는 반드시 배신자가 있었다. 대개 배신자는 주군의 엄청난 사랑을 받고 곁에 있었던 자들이었다. 물론 예수님은 가롯 유다의 배신을 알고 있었고, 몇 차례 경고했으나, 이미 사탄이 그의 마음을 장악하고 있었다. 돈은 일만 악의 뿌리라고 했던가! 역대의 모든 배신자들은 돈에 매수된 자들이었고, 돈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했었다. 물론 권력 탈취를 위한 배신도 많았다. 그리고 또 다른 배신자는 예수의 수제자인 시몬 베드로였다. 그는 그 누구보다 예수의 사랑받는 제자들의 반장 격이었다. 그는 평소 나서기를 좋아하고 리더십이 있는 데다, ‘다른 사람은 다 예수를 배반, 배신할지라도 자신은 죽음의 자리까지도 가겠다’라고 호언장담했던 자였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예수님이 체포되자 안면 몰수 했다. 그리고 예수님과 같이 다녔던 제자인 것을 숨기고 시치미를 뚝 뗐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체포되는 과정을 멀리서 보고 있었고, 어린 계집종이 그를 알아보고 “예수와 같은 패거리다!”라고 고발하자, 베드로는 철저히 부정했다. 그 계집종은 베드로의 말투가 갈릴리 사투리라는 것을 말했으나, 베드로는 완강히 거부하고 ‘자기와 예수는 무관하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의 배신을 미리 다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공개적으로 “닭 울기 전, 3번이나 예수님을 부인 할 것이다!”라고 경고한 바 있었다. 베드로는 나약한 인간이자 겁쟁이었고, 자기 목숨을 더 귀하게 본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배신한 배신자들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대로 지음 받은 인생들이지만, 모든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려고 배신자가 되었다. 소망 없는 인생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중보자인 메시아 곧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셔야 했고, 그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 교리’이다. 인간은 모두가 배신자들이다. 그러므로 결국 회개를 통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생명을 얻는 길이요, 바른 진리의 길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에는 듣도 보도 못한 불법 재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빌라도는 당시 로마로부터 유대 나라의 총독 곧 재판관으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는 예수의 무죄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내란혁명 세력이 그를 에워싸고 겁박했다. 예수를 석방하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강력한 시위를 벌였다. 빌라도는 정치꾼이다. 그래서 빌라도는 재판관의 사명보다 밖에서 들려오는 폭력배들의 소리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재판관 빌라도에게 압박을 가하면서, ‘만약 예수를 풀어주면 내란을 일으키겠다!’라고 시위했었다.

빌라도는 총독이자 재판관으로서 본국 황제의 눈치도 봐야 했지만, 바로 재판소 앞에 있는 시위군중들을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송사를 용인하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라!” 하고 군중들에게 처리하라 했다. 빌라도는 예수의 무죄를 유죄로 만들었다. 그 불법의 재판 하나로 2000년 동안 모든 기독교인들은 사도신경을 암송하면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고 지금까지도 빌라도에게 저주를 보내고 있다. 예레미야의 말씀대로 ‘인생은 다 거짓되나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 것이다!’라고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의와 불의는 항상 대치되어 있고, 인간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최근에 우리나라의 화두는 ‘누가 배신자였는가!’이다. 그리고 ‘누가 불법 재판을 했는가’이다! 예수님의 말씀 중에도 ‘불의한 재판관’이란 말이 나온다.

불의한 재판관은 그때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불의한 재판관이 혹시 붉은 물을 먹은 재판관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자들이 돈에 환장했는지, 붉은 사상에 물들어 대한민국을 팔아먹었는지 알 길이 없다. 들리는 말로는 정치권뿐 아니고, 사법부도 붉게 물들었다는 말이 사실인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를 돌보며 뒤엉켜 있다. 화란어 Kartel, 영어로 Cartel이란 말은, 본래 네덜란드어였다. 예를 들어 ‘우유가 카르텔 되었다’(De Melk is gekarteled)는 것은, ‘우유가 엉켜서 버터가 되었다’는 뜻으로, ‘끼리끼리 굳어 있다’는 의미가 된다.

예수님은 정권과 교권들의 배신자들에 의해 십자가에 처형되었지만, 결국에는 우리의 구주가 되셨고,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소망이 되어 주셨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성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