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쉐인 아이들먼 목사의 기고글인 ‘십자가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What does the cross mean to you?)를 13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아이들먼 목사는 캘리포니아주 랭커스터에 있는 로스앤젤레스 북쪽 웨스트사이드 크리스천 펠로우십의 창립자이자 수석 목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나도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라디아서 6:14)
왜 세상은 십자가에 대해 불쾌해할까? 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이 언급될 때 불편해할까? 왜 그분의 이름은 그 어떤 이름보다도 자주 헛되이 불려질까? 그 답은 간단하다. 예수님의 이름에는 능력이 있고, 십자가에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영적 세계를 흔드는 능력 말이다.
빌립보서 2장 9-11절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셔서 예수의 이름 앞에 모든 무릎이 꿇고 모든 혀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하셨다고 말한다.
그러니 세상이 왜 십자가와 예수님의 이름을 미워하는지는 놀랍지 않다. 그것들은 양심을 찌르기 때문이다. 십자가, 죄, 회개라는 말은 언제나 인기 없는 단어들이었지만, 그것들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있다. 예수님 자신도 십자가는 거슬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희석된 진리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이들이 복음을 희석시키고 십자가에 대해 말하는 것을 피한다. 그들은 성경을 좀 더 매력적이고 ‘팔릴 수 있게’ 만들고 싶어한다. 그러나 진리는 ‘팔리는 상품’이 아니다! 우리는 진리를 지키고, 선포하며, 변호해야 하지만, 결코 타협해서는 안 된다.
A.W. 토저는 수십 년 전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현대 복음주의 교계에 들어온 새로운 십자가가 있다. 그것은 옛 십자가와 닮은 듯하지만 다릅니다. 닮은 점은 피상적이고, 다른 점은 본질적이다. 옛 십자가는 사람을 죽였다. 새로운 십자가는 사람을 즐겁게 한다. 옛 십자가는 정죄했다. 새로운 십자가는 즐겁게 한다. 옛 십자가는 육체의 자랑을 무너뜨렸다. 새로운 십자가는 그것을 북돋는다. 옛 십자가는 눈물과 피를 가져왔지만, 새로운 십자가는 웃음을 가져온다.”
토저는 이어 말한다. “오늘날 우리가 우상숭배적인 금송아지 신앙을 고수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사람들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한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들을 이끌고 있어요!’ 그런데 도대체 어디로 이끌고 있는 것인가? 참된 제자도인가?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인가? 자기를 부인하는 삶인가? 세상과의 분리인가?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는 삶인가? 거룩한 삶인가? 고귀한 인격인가? 세상의 보화를 경멸하는 마음인가? 철저한 자기 절제인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인가?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헌신하는 삶인가? 물론,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이다.”
깨끗이 치장된 십자가
이러한 ‘쾌적한, 새 십자가’ 관점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고 속이게 만든다. 그 결과, 그들은 자기를 드러내고 자기를 추구하는 기독교를 믿게 되며, 그것은 예수님의 엄숙한 전적인 항복의 요구, 곧 자기 부인의 요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 때문에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큰 선교지는 미국 교회 전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열심히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하려는 과정에서 제자도에 대한 거짓된 그림을 그리거나 아예 그것을 희석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를 따르라, 그러면 아무것도 바꿀 필요 없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마태복음 16:24)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분을 따를 때 어떤 대가가 따르는지를 분명히 아시길 원하신다. 그것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십자가는 예수님께 대가를 요구했고, 우리에게도 대가를 요구한다.
놀이터가 아닌 치열한 전장
현재 통계를 보면, 많은 이들이 여전히 미화된 기독교를 추구하며 길을 잃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인생은 놀이터가 아니라 전쟁터이다. 만약 당신이 진심으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신뢰한 적이 없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때는 없다. 종교에 갇힌 많은 사람들은 삶에서 열정과 방향성, 목적을 잃고 살며, 종종 후회와 죄책감을 안고 살아간다. “나는 충분히 착했을까?”라고 고민한다.
그러나 예수님과의 관계는 그것을 바꾼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이렇게 선언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당신의 과거는 용서받았고, 현재는 안전하며, 미래는 확실하다. 부활과 십자가는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자유롭게 하셨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로마서 6:23)
물음표로 인생을 살지 말라
당신이 무엇을 했든지 간에,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을 기회는 열려 있다. 당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길 바란다 (로마서 3:23). 예수님이 당신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란다 (요한복음 3:16). 회개하고 죄에서 돌이키길 바란다 (사도행전 3:19). 예수님을 위해 살길 바란다 (히브리서 12:1-2).
이번 부활절, 우리가 빈 무덤을 기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십자가의 능력을 잊지 말길 바란다. 십자가는 우리를 정결케 하고, 구속하며, 자유롭게 하며, 악을 무너뜨리고, 승리하게 한다. 그것은 죽어가는 세상에 소망과 평화를 준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일을 보기 전까지, 진정한 평화는 없다. 우리의 죄들 사이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D.L. 무디)
당신에게 십자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생을 물음표로 살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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