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 교회 강단과 신앙 교육의 현장에서는 “너는 할 수 있다”, “원하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자기계발식 메시지가 점점 보편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인간 중심적 가르침에 뿌리 깊은 신학적 경고를 던졌던 이가 있다. 그는 바로 서양 기독교 신학의 거장, 성 어거스틴(Augustinus) 이다.
신간 <어거스틴의 은총론 이해>(개정판)은 기존의 <성 어거스틴의 은총론 연구>를 수정·보완하여 한국 교회의 상황에 맞게 새롭게 출간된 책이다. 저자 권진호 교수(목원대학교 신학과)는 이 책을 통해 어거스틴이 남긴 위대한 유산, 즉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신학을 깊이 있게 풀어낸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그토록 간절히 회복하길 원하는 ‘복음의 본질’로 독자들을 다시 초대한다.
"당신이 명하시는 것을 주소서,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명하소서"
어거스틴은 복음의 본질을 '은혜(gratia)'라고 보았다. 인간은 스스로의 의지나 노력만으로는 선을 행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신학적 핵심이다. 그가 남긴 유명한 기도 “당신이 명하시는 것을 주소서,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명하소서”는 인간의 자율적 선택을 넘어 하나님의 주권과 은총을 강조한다.
특히 어거스틴은 펠라기우스와의 논쟁 속에서, 인간의 자유의지가 타락 이후에도 선을 선택할 수 있다는 펠라기우스의 주장을 강하게 반박했다. 그는 성경과 자신의 경험, 그리고 철학적 사유를 통해 인간은 타락 이후 은혜 없이는 전혀 선을 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했다.
라틴 기독교와 신플라톤주의의 만남, 그리고 지성적 회심
책은 어거스틴의 은총론이 형성되기까지의 배경도 풍성하게 다룬다. 밀라노의 사제 심플리키아누스로부터 소개받은 신플라톤주의 철학은 어거스틴에게 결정적인 사상적 전환점을 제공했고, 이 철학과 기독교 신앙의 결합은 그로 하여금 라틴 기독교의 독창적 신학을 구성하게 했다.
<고백록> 7권에서 어거스틴은 자신이 하나님을 “변하지 않는 빛”으로 만났다고 고백한다. 이는 단순한 철학적 깨달음이 아닌, 전인격적인 회심의 경험이었다. 이 지성적 여정은 곧 ‘은총의 필요성’에 대한 깊은 인식으로 이어지며, 은총 없는 자유의지란 환상일 뿐이라는 어거스틴의 신학적 결론으로 발전한다.
“은혜가 없이는 기뻐할 수도 없다” — 의지, 기쁨, 그리고 구원
어거스틴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은혜가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은총 안에서 참된 의지가 회복된다고 보았다. 인간은 자신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진리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없고, 그것을 기뻐하고 수용하는 것도 결국 은혜의 역사라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런 사유를 바탕으로 어거스틴이 철학자에서 신학자로 전환하는 핵심 사상, 즉 ‘의지와 기쁨의 구조’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어거스틴이 말하는 ‘견인의 은총(donum perseverantiae)’ 개념은 깊은 울림을 준다. 구원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끝까지 선을 지켜내는 하나님의 지속적인 은혜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이 신학은, 신앙생활의 본질을 성찰하게 한다.
펠라기우스 논쟁과 오늘날의 교회
책 후반부에서는 펠라기우스의 ‘본성 내면의 법’ 개념과 어거스틴의 견책에 대한 논의가 충돌하는 장면을 조명한다. 펠라기우스가 인간 안에 선을 판단할 수 있는 내면의 정의감이 본래부터 존재한다고 주장한 반면, 어거스틴은 그것조차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왜곡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 논쟁은 단순한 고대 교부 간의 차이를 넘어서, 오늘날 인간의 자율성과 신앙의 본질을 다시 묻는 도전이 된다.
은총의 신학, 다시 복음의 중심으로
<어거스틴의 은총론 이해>는 단지 과거의 신학 논쟁을 회고하는 책이 아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한국 교회에 퍼진 ‘인간 중심적 복음’에서 벗어나 다시 복음의 중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하게 외친다. “구원의 시작도, 지속도, 완성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부터”라는 이 어거스틴의 메시지는 오늘의 교회와 신자들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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