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이어진 탄핵 정국에 교계 내부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면서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극도로 혼란한 시기에 예언자적 사명에 힘써야 할 한국교회와 일부 지도자들이 통합을 말하면서 도리어 편 가르기를 조장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전국17개광역시도 226개시군구 기독교총연합회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 보수 성향의 교계 연합단체들은 지난 23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일부 목회자가 헌법과 신앙 양식에 부합하지 않는 정치적 발언을 쏟아냄으로써 교계뿐 아니라 사회를 혼란케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먼저 12.3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 몇몇 교계 인사들이 “정도(正道)가 아니다”라고 한 것에 대해 “헌법과 법률에 대한 무지”라고 지적했다. 그 근거로 “대통령은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에 있어 병력으로 군사상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라고 규정한 헌법 제77조를 들었다,
그런데 일부 목회자와 연합기관에서 12.3 계엄 선포 직후 윤석열 대통령에 비판적 견해를 드러낸 것을 “헌법과 법률에 대한 무지”라고 해석하는 건 무리가 있다. 어디까지나 대통령의 통치 수단의 적절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 군사독재의 유물을 다시 소환해 온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고 국격의 실추를 초래할 그 방법밖에 없었느냐는 거다.
이에 대해 보수 연합단체들은 윤 대통령이 12.3 계엄령과 관련해 발표한 ‘대국민 특별담화’ 내용을 다시 끄집어냈다. 윤 정부 출범 이후 야당이 22건의 정부 관료 탄핵 소추를 발의하는 등 행정부 기능을 마저 마비시킨 것과 국가 예산 처리에 있어 국가 본질 기능과 마약범죄 단속, 민생 치안 유지를 위한 모든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본질 기능을 훼손한 사례들이다. 한마디로 헌법과 법으로 세워진 국가기관을 교란시킨 이런 반국가 행위를 막기 위한 목적으로 발동한 대통령의 정당한 통치행위라는 거다.
목회자가 대통령의 무속 관련 논란의 불을 지피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강한 어조로 반박했다. 이들은 정치권의 무속 영향 논란에 대해, “그 발언의 의도가 무엇이며, 누구를 겨냥한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라며 발언의 진의부터 따졌다.
이 논란은 최근 한 초대형 교회 목회자가 일반 언론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 “정치권에 있는 무속의 영향이 아주 심각하다”며 “기독교계가 무속신앙과의 영적 전쟁을 해야 할 때가 됐다”라고 한 것이 발단이다. 또 12.3 계엄의 핵심 인물이 무속에 심취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핵심 인물로 노상원 전 국군 정보사령관을 언급했는데 실은 윤 대통령을 겨냥한 게 아니냐는 거다.
사실 노 전 정보사령관의 무속 논란은 사실로 밝혀지거나 입증된 게 하나도 없다. 그저 야당이 제기한 의혹이 전부고 일부 언론에 보도된 내용도 소설 수준이다. 그걸 가지고 정치권에 마치 무속이 만연한 듯 목회자가 말하는 건 아무리 원론 차원이라 하더라도 성급한 단정이다. 이것이 마치 윤 대통령이 12.3 계엄 발포한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 것처럼 말함으로써 논란을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
윤 대통령의 무속 논란은 대선 이전부터 교계에 커다란 이슈로 부상했다. 무속에 의존하는 인물을 국가 지도자로 세울 수 없다는 게 반대하는 이들이 주장하는 핵심 근거다.
그런데 이 논란은 사실 여부를 떠나 처음부터 지지자의 선택을 교란시키기 위해 경쟁자 측에서 만든 정치적 프레임이란 걸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정계에 떠도는 확인되지 않은 갖가지 소문을 악의적으로 편집해 정치적으로 매도할 목적으로 짜 맞춰진 각본이란 말이다. 그런 것에 춤을 출 정도로 한국교회가 영적 분별력을 잃은 게 문제다.
다시 말해 윤 대통령이 대선 전이나 취임 이후에 무속에 심취했다고 볼 증거는 없다. 언론에서 유명 무속인의 이름이 자주 거명되긴 해도 그가 대통령의 정신을 지배하고 무속에 빠진 인물들이 뒤에서 윤 대통령을 조종한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과장된 추측일 뿐이다.
그런데도 교계 일부 인사들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이 문제를 끄집어내 국정 책임자로서 부적격성의 중요한 근거로 삼고 있다. 심지어 무속을 멀리하라고 경고했는데 내 말을 듣지 않아 이 사달이 난 거라는 식의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목회자도 있다.
이런 말을 들먹이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대통령의 무속 관련성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도 구치소에 수감된 52일간 성경을 읽고 묵상한 대통령에 대해선 한마디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거야말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확증 편향이 아니겠나.
한국교회가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 통합을 위해 부단히 힘써야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건 공정한 사회를 지향하는 차원의 통합인 거지 무조건 한 덩어리를 만드는 기계적 전체주의를 바라는 건 아니다. 만약 통합이 불의를 눈감아주고 불법을 용인해 줘서 달성되는 가치라면 단호히 거부하는 게 복음적이다.
탄핵 정국에서 많은 교계 인사들이 교회 강단에서, 또 주말 도심에서 열리는 시국집회에서 ‘자유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을 향해 극단주의, 망국적인 편 가르기라고 비난하면서 통합을 말하는 건 교회 지도자로서 올바른 태도라 할 수 없다.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 민주주의 체제 전복을 기도하는 세력의 준동에 대해선 침묵하면서 그들을 비판하는 이들을 향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말씀을 들이대는 것 또한 이치에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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