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돌프 아이히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학계의 의견은 크게 갈린다. 일부 학자들은 그를 평범한 사람이었으나 전체주의 체제 아래에서 비판적 사고 없이 살인을 저지른 인물로 본다. 반면, 다른 학자들은 그를 유대인 절멸 의도를 가진 극단적인 반유대주의자로 평가하거나, 나치 정권을 이용해 자신의 사디즘을 정당화하려 했던 정신병자로 간주한다. 이처럼 상반된 해석들이 엇갈리며 아이히만에 대한 이미지가 다층적으로 형성됐다.
최근 출간된 책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글항아리)은 예루살렘 법정에 서기 전 아이히만의 삶을 추적한다. 아이히만은 나치 독일의 유대인 문제 담당관으로서 보안국을 운영하며, 1942년 반제 회의 이후 유대인 말살 정책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헝가리 유대인의 4분의 3이 사망한 데 대한 책임이 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는 15년 동안 자유로운 삶을 누렸다.
책은 그가 아르헨티나로 도피한 후 가졌던 대담의 녹음테이프와 녹취록을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 테이프들은 오랫동안 존재가 알려졌지만, 품질이 좋지 않아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철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저자는 이를 해독하고,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자료와 함께 아이히만의 실체를 탐구한다.
저자는 아이히만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어떤 역할을 했으며, 전후에는 어떻게 도피 생활을 이어갔는지를 조명한다. 그는 신분증 위조, 가명 사용, 도주 경로에 대한 거짓 정보 흘리기 등을 통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아르헨티나에 정착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자신의 존재를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이름과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 했으며, 유대인 600만 명밖에 죽이지 못한 것을 통탄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책에서 저자는 아이히만이 단순히 '평범한 인간의 악'을 상징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한나 아렌트는 그를 "판단 능력이 부족하고 자기 표현에 무능한 인물"로 묘사했으나, 이스라엘에서 300시간 동안 아이히만을 심문했던 아브너 레스는 그를 "충분한 지식을 갖췄고, 매우 지적이며 노련한 인물"로 평가했다.
아이히만은 철학자 칸트를 비롯해 니체, 플라톤, 쇼펜하우어 등의 사상을 인용하며 자신을 변론했다. 심지어 유대인 철학자 스피노자의 텍스트까지도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활용했다. 그는 자신의 목적에 맞게 모든 텍스트를 왜곡하는 지적 체계를 가졌으며, 이는 단순한 행정 관료 이상의 사고력을 지닌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아이히만이 단순한 하급 관리가 아니라, 나치 이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실행했던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그의 도피 생활을 통해 전후 국제 사회가 나치 전범들을 어떻게 다루었는지에 대한 통찰도 제공한다. 아이히만에 대한 기존의 논의에 새로운 시각을 더하며, 그의 실체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제시하는 중요한 연구서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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