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이면서 관계의 종교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대인관계를 통해 증명되고, 대인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깊어진다. 성숙한 신앙은 이 두 관계가 조화를 이루는 데 있다. 믿음은 단순히 하나님께 드리는 고백이 아니라, 이웃을 향한 사랑과 섬김으로 실천될 때 비로소 온전해진다. 관계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신뢰다. 신뢰는 관계의 기반을 형성하고, 그것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신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신뢰가 깨어진 순간에도 관계를 지켜내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은 상대방의 부족함을 이해하고, 실수를 용서하며,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해 노력하게 만든다. 모든 관계는 완벽할 수 없으며, 때로는 갈등과 오해가 생길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갈등 속에서도 상대방을 이해하면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의지를 가지는 것이다. 신뢰는 관계의 문을 열게 하고, 사랑은 그 문을 닫히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힘이다.
박기영 – 관계, 어떻게 할까?
많은 사람들이 종종 사랑과 정의를 별개의 개념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의는 사랑이라는 가치가 사회적으로 표출된 개념입니다. 다시 말해 선지서에 담긴 공정한 재판을 요구하는 것, 가난한 자를 착취하지 말라는 것, 심각한 빈부격차에 대해 비판하는 것들 모두가 넓은 의미에서 사랑의 가치를 자신들의 사회 속에서 구현하기 위해 내놓은 해석의 결과물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구약 성경 곳곳에 드러난 그들의 이상향은 적어도 사랑이 내재된,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정의로운 사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구원이나 하나님나라를 단편적으로 이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죽음에서 건져지고 죽은 후에는 무조건 천국에 간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런 방식으로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어떤 질문과 고민도 들어오지 못합니다. 그저 누군가의 구원 여부만을 판단하는 종교적인 신념이 될 뿐이지요. 구원은 어느 한순간에 얻게 되는 특별한 자격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삶과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자 가치입니다. 우리들의 삶에 계속해서 질문을 던져줄 그런 이야기 말입니다.
신기열 – 새로운 신앙을 만나려는 당신에게
함부로 저주하지 말자: 시므이는 압살롬의 난을 피해 도망가는 다윗을 돕지 못할망정 저주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온갖 저주를 한 것이 결국 그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시므이처럼 앞뒤를 생각지도 않고 저주 섞인 말을 하다가 화를 입은 사람이 많다. 이웃 교회 원로 목사님의 아들이 대학 4학년 때 학교에서 심장마비로 죽었다. 아들은 목사님이 교회를 개척할 때부터 부목사 이상으로 온갖 잡다한 일을 했다. 이런 아들의 죽음으로 무척 힘들었는데, 어느 날 한 성도가 무심코 “우리 목사님이 죄가 많아서 아들이 죽었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은 목사님과 사모님은 밤새도록 가슴을 치면서 울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이 지났으나 그 말에 대한 상처가 가슴에 응어리로 남아 있었다고 했다. 그러니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언 15:1). 우리는 이 말씀을 꼭 명심해야 한다.
박재수 – 다윗의 길과 여로보암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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