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요즘 학교도서관에 종종 가 본다. 그런데 널리 알려진 영어 책인데 한글로 번역되어, 한국에서 출간된 것이 있어서 눈여겨보게 되었다. 특히 영어책도 마침 있어서 흥미삼아 함께 보게 되었다.
그런데 조금 놀란 것이 있었다. 뭔가 잘 안맞는 것 같았다. 번역에서 좀 이상하기도 했지만, “한국어로 표현하려니 그럴 수밖에 없겠구나”라고 억지로 이해도 해보려 했다. 출판을 위한 번역은 어떻게 되는지 나는 잘 모른다. 역자가 바로 하는지, 또는 전문가들이 번역하고 역자는 주 번역자로 결정하는 것인지. 한편으로는 내가 “영어책을 안 보았더라면 더 나았을 걸, 넘어갈 수도 있을 걸”이라고까지 억지도 펴본다.
제일 빠지기 쉬운 번역에서의 함정은 영어 원문의 뜻이 완전히 다르게 번역되어, 한국어 독자들이 거의 90퍼센트 다른 개념을 가질 수도 있겠구나라는 염려이다. 15~20퍼세트 정도가 다른 것은 괜찮을 수 있는데 80퍼센트 이상 다르면 염려가 될 수도 있다. 여기에서 그 책을 직접 예로 들게 되면 매우 실례가 될 것이므로 그렇게 까지는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나는 늘 “웬만하면 역서보다는 원서를 그대로 보는 것이 낫다”고 주위에 얘기하는 편이었다. 소위 오리지널을 봐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한국어 책이 다른 언어로 번역될 때도 같은 현상이 있을 것 같다. 물론 영어 책이 다른 나라 말로 번역될 때도, 한국어로 번역된 때처럼 문제는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 마디로 번역서라는 것은 어느 것이든 이런 부분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번역서를 안 볼 수도 없을 것이다. 수천 수만 권의 역서들이 전 세계의 도서관에, 전 세계의 서점들에 가득 차 있을테니 어쩔 수 없다고 본다.
좀 지나친 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동서남북의 위치가 있어 동쪽으로 가야하는데, 인근인 남쪽이나 북쪽으로 가면 이해까진 되는데, 정반대인 서쪽으로 가고 있다면 다시 제대로 가기 위해 상당히 힘들고, 벌써 너무 멀어진터라 고쳐지기는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번역이 틀리다 맞다라기보다는 번역서를 읽는 독자들의 편에서 한 번 더 신중하게, 원문의 뜻을 최대로 표현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이런 것을 생각해보면서 ‘번안곡’이라는 단어가 떠 올랐다. 가끔 TV에서 “이 노래는 번안곡으로…” 라는 소개가 나오기도 하는데, 우리는 즐겁게 듣기도 하고 또 따라 부르기도 한다. 사실 우리가 늘 즐겨 부르는 찬송가도 거의 번안곡인 건 사실이다. 가끔 영어찬송가도 부르긴 하지만 큰 부담은 없다. 그러나 번역서는 한 번 펴내어 시중에 나가게 되면 다시 수정판을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니 좀 더 사려깊은 작업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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