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목사   ©시애틀 성천교회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꿈꾼다. 어쩌면 인생은 행복 찾기 여행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뭔가 불만족스럽다. 자신에게 행복은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이렇듯 행복을 느끼며 사는 게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런데 행복을 만들어 주지는 못할 망정,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빼앗아가려는 사람들이 있다.

아침 7시-8시 30분. 이 시간은 나에게 정말 달콤한 시간이다. 새벽기도 후 나름대로 시간을 잘 활용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나는 저녁형 인간이다. 그래서 늦은 시간까지 내 시간을 활용한다. 그리고 새벽기도 후, 이 시간에는 달콤한 잠을 잔다.

아내는 이 시간을 빼앗아가려고 몇 차례 시도했다. "건강을 위해서 아침에 잠 자지 말고 운동하지...."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 양보하지 않고 있다. 그 시간에 달콤한 잠을 자는 것이 참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간이 여러 가지 도전을 받는다. 때때로 장례가 있어 방해받는다. 어떤 때는 새벽 심방 때문에 방해를 받는다. 수술 환자가 있을 때 먼 거리에 있는 병원일 때는 새벽 시간에 나서야 한다. 길바닥에 까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일들로 인해 새벽잠이 방해를 받는 건 문제가 될 것도 없다. 왜?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잠자는 것보다 더 소중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선택한 일이기에.

그런데 속상하게 새벽 시간을 도둑질 당하는 경우가 있다. 어느 날 새벽이었다. 7-8명의 남자와 여자들 목소리가 시끄럽게 들렸다. 느낌으로는, 어느 교회에서 아침 일찍 지역을 위해 청소를 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관공서에서 캠페인을 하거나. 아무튼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나는 짜증이 났다. 그들이 하는 시끄러운 말이 내 달콤한 잠을 깨웠기 때문이다. 이기적인 생각은 맞다. 그렇지만 왜 그렇게 시끄러웠던지. 청소를 해 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별로 반갑지 않았다. 다음에도 청소를 한다면, 아침 이른 시간이니만큼 좀 조용하게 청소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목사로서 이해하려는 쪽이니 그렇지, 또 다른 사람들은 더 불편해하지는 않을까?

어느 날 아침이었다. 그날은 정말 짜증스러웠다. 막 잠이 들었다. 사실 나는 자리에 누운 후 바로 잠이 들지 않는다. 꽤 시간이 흘러야 잠이 든다. 그런데 너무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깨고 말았다.

꼭 그렇게 큰 소리로 싸워야만 하나? 이렇게 이른 시간에. 남들은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중국말로 하니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더구나 여자 목소리가 그렇게 큰지?

부부가 살다 보면 싸울 수도 있겠지. 안 싸우면서 살면 더 좋겠지만, 그렇게 흔치는 않은 것 같다. 싸울 때는 싸울 값이라도 매너는 좀 지켰으면 좋겠다. 남에게 피해는 좀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성도들에게 자주 당부하곤 한다. 제발 교패를 붙여놓고 부부싸움 하지 말라고. 자식들이 무엇을 보고 배우겠느냐고. 이웃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만약 부부싸움할 일이 있으면, 먼저 창문부터 닫으라고. 그 다음에는 이불을 뒤집어 쓰라고. 그 후에 싸우려면 싸우라고.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 내가 하고 싶더라도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면 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좋은 것도 남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면 삼가야 한다. 왜 혼자 사는 것처럼 행동하는가?

어느 날 저녁, 경기도에 있는 어느 대형마트 지하 주차장이었다. 한 남자가 승용차를 타려던 모자(母子)를 흉기로 위협했다. 뒷좌석에 침입한 범인은 엄마를 위협해 도로를 달리다가 어느 지점에서 엄마는 내려놓고 아이만 싣고 달아났다. 그리고 아이 엄마에게 협박했다.

"내일 아침까지 1억 5천만원을 준비해라. 경찰에 신고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 왜 이런 짓을 저질렀을까? 도박으로 진 빚을 갚기 위해서였다.

내가 좋자고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불행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줘야지 불행하게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예수님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하늘 영광을 버리지 않으셨던가? 사람들에게 행복을 찾아주기 위해 잠을 주무시지 않고, 밥도 드시지 못하지 않으셨던가? 감당할 수 없는 은혜이지만, 죄인들을 행복으로 초대하기 위해 자기 목숨까지 버리지 않으셨던가?

그런 주님을 따르는 자가 바로 우리다.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도둑질하는 자가 아니다. 도리어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만들어 주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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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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