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하우스 평택 정재우 목사
세인트하우스 평택 정재우 목사 ©세인트하우스 평택

해마다 11월에 들어서면 김장으로 온 국민의 마음이 분주해진다. 모든 뉴스의 초점은 김장에 관한 그 해의 정보를 발표한다. 배추, 무, 고춧가루, 새우젓, 소금에 대한 가격 변동에 민감해진다. 김장에 대한 비용이 올라가거나 내려가거나 관계없이 모두 뉴스감이다. 김장을 앞둔 주부들의 동향도 빼놓을 수 없는 뉴스거리다.

김장에 대한 추억은 중년층 이상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김장은 한 해 중 가문의 대사였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집안이 한자리에 모여 합동으로 김장을 치른다. 그도 아니면 동네 사람들이 모여 품앗이로 서로 김장을 돕는다. 김장은 축제처럼 치러졌다.

필자가 추억하는 옛날 김장하던 풍경은 이랬다. 먼저 외할아버지가 밭에서 배추를 심어주셔서 김장철이면 먼저 밭에 가서 잘 자란 풍성한 배추를 뽑아 가지고 오는 일이었다. 리어카에 아마도 200포기 이상을 운반해 와야 했다. 무려 2km 정도의 거리를 우리 네 형제와 아버지가 실어 날랐다. 몇 차례를 왕복하며.

가져온 배추는 그날 바로 반으로 쪼개어 큰 드럼통 몇 개에 나누어 절였다. 그 소금물 드럼통은 온 동네 집집마다 김장 때 사용하기 위해 배추를 절인 후 그 소금물을 버리지 않고 이웃집에서 가져갔다.

하룻밤을 지난 절인 배추는 아침 일찍부터 온 집안 식구와 동네 사람들이 모여와 씻기 시작한다. 곧 한쪽에서는 절인 배추를 씻어서 쌓아둔다. 물이 어느 정도 빠지기를 기다려야 하기에. 다른 한쪽에서는 배추 포기 사이에 넣을 양념을 준비하느라 무, 생강, 미나리, 부추 등을 썰어 큰 고무 대야에 쏟아 버무렸다. 양념의 분량이 엄청났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아줌마들의 떠들썩한 수다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그 후 본격적으로 남자들은 물이 빠진 절인 배추를 날라주면 아줌마 부대는 한자리씩 차지하고 앉아 김치 속을 넣기 시작한다. 얼마나 손이 빠른지 모른다.

가끔 포기김치를 날라주는 우리 입에 굴이 들어간 김장김치를 한 입 가득 넣어주었다. 아, 그 맛이 어찌 잊히우랴!

김장이 마쳐지면 점심을 푸짐하게 준비한다. 특히 돼지 수육은 필수로 등장하고 동태찌개도 나왔다. 모처럼 흰쌀밥도 나왔다. 그날 김장한 김치 겉절이에 수육을 올려 한 입 크게 받아먹던 그 맛, 그 분위기, 그 축제. 우리 민족의 훈훈한 마을 공동체 전통이요 풍습이 아닌가!

그 시절 김장하는 날의 풍습은 이제 차츰 사라지고 있어 서운하고 안타깝다. 11월 22일은 김치의 날이다. 그런데 정부가 공식적으로 정해 발표한 날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잘 알지 못한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참 아쉬운 현상이다. 최근 세계 각 나라에서 K-푸드 열풍이 일어나면서 김치의 글로벌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국내적으로는 갈수록 김장이 위축되고 있다. 일인 가구가 국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김장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굳이 김치가 땡기면 가까운 마트에서 사서 먹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김치보다 패스워드 푸드에 익숙해져 김치를 외면한다.

하지만 김치를 담그는 김장은 서민 생활문화의 소중한 자산이다. 가족을 위한 사랑이요 헌신이 담긴 맛의 유산이다. 이렇게 귀한 자산이 사라지지 않게 보존하는 방식을 찾아보자. 김치맛의 유산을 제대로 지키려면 마을 공동체가 나서서 김장 경비는 각자 공동 부담하고 옛날처럼 한 자리에서 함께 김장을 하고 나누어 가는 방식은 어떨까? 김치의 세계화는 가족을 위한 사랑과 헌신이 만들어낸 우리의 풍습과 전통을 잘 지켜나갈 때 가능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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