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는 매주 월요일 주일예배설교 가운데 하나를 꼽아 소개하는 코너 '금주의 설교'를 마련했습니다. 설교말씀 전문을 통해 한 주의 시작을 은혜로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6.25를 앞둔 이번 주는 서울 노량진교회의 여충호 목사님의 주일말씀을 소개합니다. 

여충호 노량진교회 담임목사   ©노량진교회 설교방송

[본문: 이사야 1:2-9, 18-20]

과거 가난하고 배고프던 시절 우리 민족의 마음에 품었던 구호가 있습니다. '잘 살아보세' 그래서 정부는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세우고 이를 추진했고, 국민들은 새마을운동을 일으켜서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심지어 멀리 독일까지 간호사와 광부들이 파견되어서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열심히 일해 달러를 송금하므로 경제개발에 큰 밑거름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결과 우리 한국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이제 전 세계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말 그대로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는 그런 자랑스런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잘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르게 사는 것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 너무나 중요하고, 더 나아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는 본무을 통해서, 자신의 동족을 향해서 정말 아주 간절한 염원을 담고 선포하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이사야 선지자입니다.

이사야 선지자 당시에 이스라엘 상황은 너무나 너무나 좋지 않았습니다. 경제는 피폐했고 군사력은 약했습니다. 왕은 국가적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백성들은 말 그대로 향락과 부패, 물질주의, 쾌락에 함몰돼 갔습니다. 여기에 다해 북쪽에 앗수르란 나라가 오시탐탐 이스라엘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군사력과 경제력의 약화보다, 또 강대국 앗수르의 위협보다 더 큰 위협이 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르게 사라고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것이 더 큰 위협이었습니다.

물론 외적으로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 같았습니다. 제사, 예배도 꼬박꼬박 드렸습니다. 절기도 꼭 지켰습니다. 제물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고 전심으로 그것을 행한 것이 아니라 형식적으로 하는 채 했던 것입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짐나 하나님은 속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탄식 하십니다.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사1:2~3)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아무렇게나 자기 생각 위주로 섬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하신 말씀을 따라서 하나님이 과연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지, 또 앞으로 베풀어 주실 것인지... 더 나아가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어떠한 삶을 살기를 바라시는 지 바르게 알고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런데 구약의 택한 백성인 이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바라 알지 못했씁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말씀을 온전히 깨닫지 못했고, 결국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께 범죄하는 백성으로 살아갔던 것입니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사1:4)

이것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징계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5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매를 맞았다' 말씀 합니다. 발바닥부터 머리 끝까지 성한 곳이 없었습니다. 땅은 황폐하고 성읍들은 불탔고,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토지는 빼았기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 바르게 살지 못하니 그들의 결국이 이렇게 형편없이 되고 만 것이죠. 몇 년 전에 국내외적으로 이 광우병 공포가 휘몰아 친 적이 있었습니다. 소가 한 4~5년 되었는데, 이 뇌에 질환이 되어서, 소 뇌에 구명이 생겨서 죽는 아주 치명적인 가축 질병입니다. 그래서 이 광우병에 걸리면, 갑자기 소가 미친듯이 포악해 지다가 정신 이상이 생기고, 전신이 마비되어 비틀비틀 거리다가 쓸지고 시력이 살실되는... 그래서 급기야 죽게 됩니다.

그런데 이 광우병의 무서운 점은 이 단백질의 변의 현상으로 뇌에 구멍이 생기는 이 질병이 다른 짐승에게 전념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런 광우병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인간이 어겼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원래 소는 초식동물 아닙니까? 풀을 뜯어 먹고 살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인간의 욕심이 빨리 살찌워서 내다 팔면 돈을 많이 벌겠다 싶어서 동물사료를 이렇게 먹인 것이죠. 그래서 풀을 섭취해야 되는데 아니 이런 육식성 사료를 섭취하니까 몸에 이상이 생긴 것입니다. 인간의 욕심으로 말미암아 생긴 질병이란 것이죠.

그런데 영적으로 보면 우리 인간에게도 똑 같이 이런 광우병 증세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되는데, 이 말씀은 먹지 ㅇ낳고 세상의 욕심과 죄악을 밥 먹듯이 먹게 되면, 우리도 어느 순간 정신이 이상해져가지고 하나님을 모르고 '세상이 좋다, 쾌락이 좋다' 이렇게 영적으로 이상하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어러면 결국 우리는 망하고 만다는 것이죠.

우리는 영적 광우병에 걸린 이스라엘을 본문을 통해 보게 되면서, 이 이스라엘을 심판할 수 밖에 없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접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5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사1:5)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매를 떼리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이걸 원치 않는데 너희들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 내가 어쩔 수 없니 매를 드는 구나. 너희는 정신을 차려라!' 이 하나님의 안타까운 타식과 안타까운 눈물의 모습을 우리는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의 육신의 욕망을 따라서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켜 줄 것 같은 '바알'을 섬기며 그를 따라 갔습니다. 그들은 결국은 거듭된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불순종하니 하나님이 그들을 매로 치심으로 말미암아 이런 큰 징계 가운데 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요 이런 이스라엘의 죄악에도 불고하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궁휼을 베푸심니다. 이스라엘을 완전히 멸망시키지 않으셨다는 것이죠. 오늘 9절 말씀을 보십시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사1:9)

이 소돔과 고모라 같이 완전히 멸망해야 마땅한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셔서 우리를 남겨 두시고 또 다른 기회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하나님의 궁휼이 영원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끝끝내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그들을 심판하실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과연 역사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은 끝까지 하나님께 안 돌아 왔어요. 그래서 바빌론에게 멸망해서 2000년 동안 유리당하고 말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이 먼 옛날의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현대사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가요, 오늘날에도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노벨상을 받은 러시아의 대문호이며 행동하는 양심으로 알려진 이 솔제니친(Aleksandr Solzhenitsyn). 1983년에 탬플턴상을 받게 되는데 이 탬플턴상을 받고 나서 강연 가운데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반세기가 넘는 오래 전에, 그러니까 자신이 아주 어렸을 때 그는 러시아의 당한 놀라운 재난에 대하여 몇 사람의 어른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은 게야. 그러니까 이런 일이 일어나잖아'

그 후에 이 솔제니치는 50년 동안 러시아 혁명사에 대해 연구를 합니다 수백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수백명의 생생한 증인을 확보했습니다. 그래서 8권의 책을 써냈습니다. 그럴 때에 그는 이 6천만명의 생명을 집어삼킨 '러시아 혁명'. 이 파괴적인 혁명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그 주요 원인을 설며하라고 한다면 '나는 이 말을 반복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다시 한 번 이 말을 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은 게야. 그러니까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과거 제정 러시아는 정치, 경제, 문화, 예술적으로 앞서가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을 잊고 하나님을 떠나가고 나니 이런 비극이 임했던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자기 동족에게 '우리 나라와 민족의 소망은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된다'는 것을 역설했습니다. "이런 국가적 위기로부터 우리를 우원하실 이는 오직 하나님이시다"

이 사실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나라와 민족의 소망이 되십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모든 나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 민족, 미래의 소망이 없는 거죠.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각나라와 민족의 소망이 되는 하나님이 그 나라와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위하여 그 나라와 민족 백성들이 해야될 일이 있음을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합니다.

그 첫 번째는 무엇이냐? 바로 회개입니다. 오늘 18절 말씀 보면 하나님께서 이 폐역한 이스라엘과 함께 논쟁할 것을 제의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논쟁하자, 이야기하자)…" (사1:18 전반절)

주석가 매튜 헨리는 이 앞뒤 문맥을 고려해서 이 논쟁의 내용을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너희 손에 피가 가득한 상태로 내게 무수한 제물을 가지고 온다고 할지라도 나는 결코 너희와 상관하지 아니할 것다. 그러나 너희가 씻되 스스로 씻는다면 얼마든지 내게 가까이 나올 수 있다. 이 문제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하자"

어떻게 하면 이 패악한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다고요? '너희가 씨어야 한다' 씻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회개를 말하는 것이죠. '너희가 회개하면!' 오늘 이어지는 말씀이 뭐라고 말합니까?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1:18 하반절)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약속하고 계신 거죠.

그런데 이 본문의 말씀을 우리나라와 민족에게 적용할 때 문제가 있어요. 이스라엘은 나라나 민족이 다 '신앙공동체'였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를 않습니다. 과연 이 땅의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 죄를 고백할까요? 저 북한 공산당이 회개할까요? 회개안할 거에요. 오히려 우리를 조롱할 걸요.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서 먼저 구원 받은 우리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회개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예, 우리 교회가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신 것은 그들만 구원한 게 아니라,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위대함을 모든 민족과 나라에 선포하게 하므로 그 이방 민족과 나라들을 다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 사명을 망각하고 실패했죠.

오늘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세우시고, 오늘 이땅에 교회를 세우신 뜻은 우리만 잘 믿고 (우리만) 구원받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를 통하여 이 나라 이 민족을 구원하기 위함임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저와 여러분이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하여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한 개인이 나라와 민족의 죄악을 위해 고백하는 장면이 여럿 나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느헤미아에요. 느헤미아는 바벨론 수상성의 왕의 술 맡은 관원장, 고위직에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 예르살렘으로부터 동포가 와서 예루살렘성이 훼파되어 지고 성문은 불타고,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백성들이 고톡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수일을 울며 금식하며 회개기도를 합니다. 그 내용이 이런 것입니다.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느1:6~7)

느헤미아는 단순의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동족의 죄를 해개하고 있는 것이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먼저, 역사적으로 교회가 저지른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사실, 조국 교회는 광복의 기쁨을 맞이해서 지난 과오를 주님 앞에 진실로 회개하지 못했습니다. 신사참배의 죄를 저지른 것을 진실로 통회하지 못했다는 것이죠.. 또한 신사참배를 하고 일본과 가까이 지내면서 정치적 어떤 목회자 역할을 했던 당시의 지도자들을 바로잡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6.25의 이 비극을 경험하면서도 정신을 차리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할 교회가 비본질적인 문제로 교단이 분열되어 지고 이후에 계속 분열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이 세상의 빛이 되고 등불이 되라고 말씀한 교회가 세상에 교회답지 못한 모습을 여럿 보임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조롱을 받고 세상의 근심거리가 되었다는 것이죠. 이게 지금 회개해야할 일이란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교회는 이 민족의 6.25의 비극, 많은 살상이 일어나고 이산가족이 생기고 세상에 고통이 임했던 이 죄악들에 대해서도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만연돼 있는 모든 부패와 죄악드에 대해 진실로 통회하고 회개해야 되는 것이죠.

그러나 회개가 끝이 아닙니다. 교회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 19절 말씀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그런 패역 가운데 있더라도 회개하고 순종한다면 어떻게 하신다고요?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사1:19~20)

이보다 분명할 수 없는 것이죠. 그럼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무엇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식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사1:16~17)

하나님께서는 악행을 그치고 선을 행하라 말씀하십니다. 선행의 내용은 공의를 행하고 너희 주위의 지극히 약하고 작은 자들을 사랑하라. 그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22:37~40)

아무리 세상이 타락해도, 우리 나라와 민족의 많은 문제가 있어도 교회가 진실로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꼐서 교회를 통하여 이 나라와 민족에 소망을 주실줄 믿습니다. 교회의 영적으로 각성된 사람들이 이 땅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에 들어가서 불의를 폐하고 정의와 공평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이 땅을 거룩한 나라로 바꾸어 가실줄 믿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통해, 저와 여러분을 통해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6.25전쟁은 민족의 위기뿐 아니라, 절체절명의 나라가 망하고 교회가 망할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마지막 낙동강 방어선만 무너지면 이제 끝나는 거에요. 나라가 없어지고 공산화 되면 교회도 문을 닫는 거에요. 이 절체절명의 위기 가운데 있을 때 우리 부산에 모인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초량교회와 중앙교회로 모였습니다. 왜 모였습니까? 초량교회는 당시 박윤선 목사님을 중심으로 모여서 회개 기도를 드렸고, 중앙교회는 한경직 목사님을 중심으로 모여서 간절히 눈물 흘리며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구했습니다.

그랬더니 세상에 안보리(UN 안전보장이사회)에 소련이 불참함으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UN군이 즉시 파송되게 하시므로 전세를 역전할 수 있었습니다. UN군이 당시에 오지 않았다고 한다면 낙동강 방어선은 지키기 어려웠던 것이죠. 이 하나님의 은혜의 응답이었던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이후에 이성봉 목사님, 김치선 목사님 이런 기도의 사람이 생겨나서 한국교회 안에 회개의 운동이 일어남으로 말미암아 한국교회가 부흥하는 계기가 되었고, 또 이후에 우리 한국경제 회복되고 번성하는 귀한 계기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소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 남북의 평화로운 통일의 소망도 하나님께 달려 있는 줄 믿습니다.

자, 그런데 하나님의 역사의 섭리는 하나님이 직접 행하시기보다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교회를 통해서, 저와 여러분을 통하여 우리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만들어 가신다는 것이죠. 전 세계적으로 돌아보면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들이 주축이 된 나라, 흥왕하지 않았습니까? 구라파와 미국같은 나라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 믿는 사람들 핍박하고 죽이고, 그런 사람들이 주축이 되었던 나라는 망했습니다. 구 소련이 그랬잖습니까. 북한이 지금 그렇고요.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은, '아니 목사님, 그럼 중국은 어떻습니까? 중국은 공산국가인데 왜 저렇게 흥왕하고 경제가 발전하고 세계 2대 강대국이 될 수 있었습니까?' (묻습니다). 아니잖아요. 여러분 중국이 공산당 때문에 저렇게 나라가 잘 되고 번성하는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중국 교회 때문에 그런 거에요. 이번에 제가 중국 가니까 지금도요 한 시간 두 시간 이상 거리에서 기차타고 걸어와서 두 시간 이상씩 예배드리기 위하여 얼마나 말씀과 예배를 사모하는 줄 몰라요. 얼마나 뜨겁게 기도하는 줄 몰라요. 계속 계속 중국교회 부흥하고 있어요. 그리고 '(성도수가) 1억명이 넘었다' 이런 이야기 나오고, 이제는 아랍국가와 저 이슬람 지역에 선교사를 파송할 그런 꿈과 계획을 갖고 진행하고 있어요. 하나님이 중국교회 때문에 중국에 복을 주시는 것이지 중국 공산당 때문에 중국에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결국 교회가, 저와 여러분이 우리나라와 민족의 소망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기본적으로 애국애족할 수 밖에 없어요. 저는 야당편 여당편 이런 말하는 것 아니에요. 교회는 정치적으로 독립되야 하고 중립을 지켜야 되죠. 그러나 애국애족은 성경적인 거에요. 나라가 없으면, 민족이 없으면 여러분 교회에서 신앙생활 자유롭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없어요. 나라가 있고 민족이 있어야 교회도 있는 것이고 신앙생활도 할 수 있어요. 하나님은 그런 섭리 가운데 우리를 이 조국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태어나게 하신 줄 믿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되지요.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되지요. 남북의 통일을 위해 기도해야 되지요. 정치, 경제의 회복과 그리고 이 땅에서 소외되고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섬기는 것, 그것은 교회가 해야할 마땅한 일인 것입니다.

교회가 이렇게 교회 본연적 사명에 충실할 때, 깨어 기도하고 우리가 마땅히 해야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할 때 교회도 살고, 교회에 속한 저와 여러분도 살고, 이 나라와 민족도 살게 될 줄 믿습니다.

이 시실을 명심하고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십시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고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시고 할 수 있는 나라와 민족을 향한 헌신을 감당할 여러분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아름다운 금수강상으로 만들어 가실줄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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