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채 총장
서병채 총장
나는 길을 갈 때에 거의 왼쪽으로 걸어간다. 왠지 모르게 그쪽으로 걸어가는 것이 나에게는 편하다. 가끔 오른쪽으로 걸어가 보면 뭔가 불편하다. 왼쪽으로 걸어가면 안정감을 느낀다. 나만 그런가?

옷 안쪽에 라벨도 거의 왼쪽 아래에 붙어있다. 다시 확인해보니 거의 대부분의 옷에 라벨이 그렇게 되어있다. 왜 그런지,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럴만한 이유와 함께 처음부터 그랬던 것 같다. 왼쪽에 왜 그렇게 집착하고, 또 그렇게 되어 있을까?

왼손 오른손을 다시 살펴보았다. 분명히 사용은 오른손이 많이 한다. 가끔 왼손잡이이신 분들도 있긴 하지만 거의 오른손을 사용한다. 어릴 때 시골교회에서 담임목사님과 교회마당에서 탁구 치던 경험이 기억나는데, 그때도 나는 오른 손으로 신나게 치곤했다. 교회 선배님 중에 왼손으로 치던 분이 있었는데 정말 잘 쳤다. 그러나 대부분이 오른 손으로 탁구를 친다.

중국 철학에 음양이란 말이 있지 않는가! 양면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겠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결론짓기를, “아하, 왼손은 기준이고 오른손은 활동을 하는데 사용되는구나.” 왠고하니 왼손은 많이 사용하지는 않지만, 왼손이 없으면 정말 힘들 것이다. 그리고 보기도 얼마나 흉하겠는가! 그러면서 나는 “그렇다면 사역에서 기준은 무엇일까?”라고 좀 비약적인 생각을 해봤다.

사역에서 기준? 잘 사용은 안 되지만, 또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중요한 기능을 하는 사역의 기준은 무엇일까! 사역이 잘 될 수 있도록 해주는 기준이 되겠다. 오른손으로 거의 모든 활동을 하듯이, 사역의 진행과 발전은 우리가 잘 알고 또 그렇게 진행해간다. 그러면 그렇게 진행해나가는데 더 효과적이 되기 위한 왼손의 역할 같은 사역에서의 기준은 무엇일까? 우선 내가 생각하는 기준과 꼭 같은 것은 아니지만 성경 벧후 1:5-8절을 보면 비슷한 것들이 있다.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사역에서 열매가 있게 하려면 이런 요소들도 들어가야 한다는 말씀이겠다.

이제 내가 생각해보는 기준들을 적어보려 한다. 물론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서 정리해본 것이다. 기준이라는 것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고정되어 있으면서도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 생각되는데 우선 ‘정직’이라는 것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백퍼센트 정직하다’라는 말은 어불성설인 것 같고, 가능한 정직해야지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는다고 본다. 정직이란 시류에 따라 바뀌는 것이 아니고, 시종일관적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성격도 다르고 리더십의 스타일, 또는 처세술이 다르다는 것은 인정한다. ‘목회자들은 천의 얼굴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것은 목회의 기술적인 면이니 이해가 되고 수용할 수 있는 논리이다. 이것을 가지고 정직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 다음에 기준은 주어진 사역에 ‘헌신’하고자하는 자세이다. 사역 그 자체를 위해 일을 할 것인가? 아니면 개인적인 영달(출세와 명예)을 위해 일을 할 것인가? 개인의 영달은 부수적으로 주어지는 것이기에 감사하면 될 터인데, 그것을 가지려고 한다면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어느 조직이든 사역이든, 개인의 사적인 유익만 추구하지 않고 계속해나간다면 그것은 성공한다고 했다. 바로 그 조직과 사역에 헌신을 의미한다고 봐진다.

그 다음에는 ‘겸손’도 얘기할 수 있겠다. 최근에 강의하실 한 분을 추천을 받았는데 하버드에서 교육학, 신학으로 두 개 석사를 하고,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교육학으로 석사, 심리학으로 Ph.D를 받은 분이라면서, 덧붙이기를 ‘아주 겸손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 정도 학력이면 교만도 할 만 한데 겸손까지 하다니 더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니 겸손도 큰 기준점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어떤 사역이든 시작하면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 없다. 그러나 그 성공이라는 것은 위와 같은 전제조건, 즉 흔들리지 않는 기준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납득할만하다고 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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