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준 목사
최철준 목사(나주글로벌교회)

바울을 통해서 배워야 할 예배의 본질은 무엇일까?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할 뿐만 아니라 넷째로, 말씀을 듣고 삶에 적용해야 한다.

20절에서 바울은 교회를 향해 엄숙한 명령을 한다. 예언을 멸시치 말라. 여기서 말하는 예언은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이 말한 내용들을 가리킨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지 말고 잘 들으라는 것이다.

구약의 대제사장이었던 엘리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날한시에 죽은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해서 죽었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선택받았다가 하나님께 버림받은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겼기 때문이다. 말씀에 대한 태도가 인생을 결정짓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말씀을 대해야 하는가? 존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되, 21절에 범사에 헤아려서 좋은 것을 취하라고 말한다. 범사에 헤아리라는 말은 이 말씀이 하나님에게서 왔는지, 아니면 사람의 말인지를 조사해서 분별하라는 것이다.

바울은 이제 또 하나의 명령을 한다. 27절에서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주라. 바울이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주라는 말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공적인 예배에서 말씀을 들으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최종권위는 무엇 아래에 있어야 하는가? 말씀 아래, 성경 아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한 성도님은 새벽에 나와 예배를 드린다. 들은 말씀을 아침에도 듣고, 점심에도 듣고, 저녁에도 듣는다고 한다. 그렇게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듣는 이유가 무엇인가? 말씀이 꿀처럼 달기 때문이다. 말씀이 내 영혼의 생명의 떡이기 때문이다. 말씀이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공예배의 필수적인 요소를 다루었다. 네 가지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예배에서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의 요소가 있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하고 적용하는 일이 있어야 된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신다. 우리는 찬양과 기도와 감사로 그분의 말씀에 응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에 대한 우리의 응답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공적인 예배는 듣는 것과 반응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듣는 것과 반응하는 것에서 빠지지 말아야 본질적인 요소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성령을 소멸치 않는 것이다. 예배를 드리면서 성령의 주권과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

19절에 성령을 소멸치 말라는 말씀은 다른 여러 권면들의 한 가운데에 있다. 19절의 권고는 앞과 뒤 모두에 적용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에게 “성령이 그분의 말씀을 통해 너희에게 말씀하시게 하시고, 그분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분을 소멸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리고 “성령이 너희의 마음을 움직여서 너희로 하여금 찬양과 기도와 감사로 그 말씀에 응답하도록 그분을 소멸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탁월한 영성가인 리처드 포스터가 쓴 “영적 훈련과 성장”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 보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한 예배로 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한다.

1) 매일 하나님의 임재를 연습하라고 한다. 실제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바울의 말을 따르도록 노력하라고 말한다. 매 순간 찬양과 경배와 감사를 속으로 말하라. 자백하고, 성경을 묵상하며,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께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라. 이 모든 것이 공적 예배에 대한 기대를 높여 줄 것이다.

2) 공적인 예배를 준비하라고 말한다. 예배에 나오기 위해서 시간을 조정하거나, 토요일 저녁에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예배 시간에 지각하지 말고 10분 전에 나와서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며 마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3) 주님의 능력을 사모하라고 말한다. 내 자아를 만족시키려는 자기중심적인 마음을 버리라고 말한다. 내 관심사, 내 축복, 내 만족 내 것을 버리라. 예배의 언어는 ‘나’ 자신이 아니라 ‘우리’가 되어야 한다. 거기에 하나님의 방법에 대한 복종이 있다.

오늘의 한국교회 기초는 평양대부흥 운동에 있었다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역사가들은 거의 없다. 그런데 평양대부흥 운동은 그보다 몇 년 앞선 1904년 영국 웨일즈 대부흥의 영향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평양대부흥은 먼저 이 땅에 와 있던 선교사들의 모임에서 죄를 자복함으로 시작되었다. 이것은 웨일즈 부흥 운동의 소식을 듣고 그런 부흥이 이 땅에서도 일어나기를 사모하고 기도함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웨일즈 대부흥은 1900년대에 들어선 시각에 웨일즈의 몇몇 청년들 세스 죠수아, 이반 로버츠 등이 함께 모인 기도회에서 시작된다. “주님, 우리를 굴복시키소서. 나를 굴복시키소서. 우리를 감동하소서. 나를 감동하소서”라는 부르짖음과 함께 임한 강력한 성령의 임재로 시작된 것이다.

교회마다 새로워졌고, 예배에는 거룩한 불길이 임했고, 도시와 나라가 깨끗해졌다. 믿지 않는 영혼들이 무리를 지어 교회로 돌아오기 시작한다. 성도들은 그들의 모든 것을 바쳐 전도하고 선교하기 시작한다. 이 거룩한 불이 동방의 작은 나라인 한반도에 떨어진 것이다. 나라의 운명이 기울기 시작할 때 하나님 나라의 불이 이 땅에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부흥이다. 이런 부흥이 다시 우리 교회와 조국 땅에 필요한 때가 아닐까? 다시 한 번 거룩한 부흥이 일어나길 기대한다.

최철준 목사(나주글로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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