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4.19 학생의거 이후

송병기 박사
송병기 박사

1960년 4.19가 일어나 혼란을 겪을때에 4월 28일 이기붕 부통령은 아들 강석, 강욱 부인 박마리아와 함께 일가족 4명이 죽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충격으로 하와이에 가서 한달 정도 쉬고 오려고 생각하고 떠난다. 그러나 호외는 하와이로 망명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한번도 망명이라는 말을 해본적도 없고 하와이 가서도 서울로 돌아갈 여비를 만들기 위해 이발도 하지 않고 식료품도 절약하여 사도록 프렌체스카에게 부탁했다. 이기붕의 아들 강석이를 양자로 삼았었지만 강석이는 4.19혁명 날 때 이기붕을 죽이고 본인이 자살하여 뜻을 못 이루어 1961년 이인수를 양 아들로 삼는다. 그 후 하와이로 가서 머리를 쉴 겸 떠나지만 5.16 군사혁명으로 돌아올 기회를 잃어버리고 결국 돌아오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대한민국은 민주당의 정권을 몰아내고 1961년 5월 16일 군사혁명이 이루어져 군 소장파들의 주도로 빈곤퇴치를 목표로 달려가 국민들의 지지를 얻었다. 1962년 3월17일 아침 귀국을 하려 했으나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요청을 받고 뜻을 이루지 못한다. 그때 다리에 맥이 풀리고 언어장애와 건강에 충격을 받아 걷지 못하게 된다.

그 후 3년 동안 병석에 있으며 한국행 비행기 표만 생각하고 있다가 1965년 7월17일 0시35분 천국으로 입성한다. 이 충격으로 화니는 기절을 하여 병원으로 가게 되고 그의 시신은 서울 이화장으로 옮겨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르는데 말할 수 없는 인파가 뒤따랐다. 화니는 비행기를 탈수 없을 정도로 몸이 약해져서 장례에 참석 못하고 31년 만에 고향 빈으로 가서 건강을 추스르게 됐다. 그 후 1년이 되서야 서울을 묘소를 찾게 된다. 이승만 대통령은 서울로 돌아갈 때 돈을 절약하여 모으고 지인들의 후원으로 모은 인하대학에 기증할 돈 18만 불을 가지고 가려했다. 인천과 하와이의 첫 자를 따서 만든 곳이 인하대학이다. 귀국이 허락되지 않아 결국 그토록 그리워하던 조국으로 오지 못한 채 눈을 감으셨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건국을 성취해 놓으셨고 전쟁으로부터 민족을 구해냈으며 전 생애를 아낌없이 불살랐던 위대한 이승만 그는 이억만 리 떨어진 땅 하와이 섬에서 고국을 그리다. 너무나 쓸쓸한 최후를 맞이했다. 프렌체스카(1900생)도 1992년 3월23일에 이 대통령과 함께 합장되었다. 화니는 1965년 이 박사가 돌아가신 후 비엔나로 가서 5년을 살다가 1970년 5월 16일 이인수 아들이 손자를 낳았다는 소식과 함께 서울로 오라는 아들의 부탁으로 남편이 일생을 바처 사랑하고 봉사해온 서울로 갔다. 화니가 태어난 빈을 떠나 말년을 이화장에서 살았다. 이화장은 1948년 이후 한번도 수리를 하지 않았다. 사저를 수리하는 것은 부정부패의 원인이 된다고 하시며 못하게 하셨다. 이화장엔 세 칸을 이용하여 전시실을 만들었는데 오래된 타이프 라이터가 있었다. 이것으로 전 세계에 편지를 보낸 것이라 했다. 출장을 갈 때도 들고 다년다고 한다. 또 종이로 만든 노끈이 있었는데 일본인들의 눈을 피해 전달했던 편지라 한다.

결론

한국의 모세 이승만 대통령이 4.19세대의 부정선거 규탄을 부정하는 것은 자신이 주도해서 만든 헌법을 부정하는 것이고 4.19세대가 건국 공로까지 대통령을 부정하는 것은 4.19의 뿌리인 대한민국 건국사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1924년 창설된 동지회는 지금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김창완 동지회 회원은 “전 세계에서 다시 볼수없는 외교가며 교육가, 종교인으로 이런 인물이 나올 수 없다”고 극찬했다. 또 고영희 회원은 “한국 역사상 최고의 정치가로 그가 없이는 대한민국이 태어날 수 없었다. 그에 대한 오해는 예수님을 오해한 유대인들이 그를 십자가에 못박은 것과 같은 오해에서 나왔거나 그를 음해하기 위한 좌익 사상을 갖은 이들 가운에 나온다고 했다.고 말한다. 리승만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존경하는 인물이다”라고 했다

잘못된 교육으로 광복절은 알아도 건국절은 모르는 나라가 되었다. 도대체 건국의 아버지는 누구이며 그의 업적은 무엇일까 생각도 안하고 평안을 누리고 놀기에 급급한 사람들이 아닌가 이승만대통령이 아니였다면 과연 대한민국은 이 땅에 존재했을까 생각해 본다. 이승만 대통령을 통해 이루어 놓은 1953년 체결된 한미 상호 보호조약으로 북한의 남침을 걱정하지 않고 산업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된것이다. 교육정책, 산업적책, 국방정책, 무역정책, 원자력정책, 원양어업, (1956년 해군 경비정을 바꾸어 참치잡이 어선을 만듬)등 나라가 발전하도록 기초석을 놓아서 다음 박정희대통령이 그것을 기반으로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는 세계 12번째의 대국을 만들게 된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을 요약하면

정치는 미국식 대통령 중심제로 모범적 자유 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한것
반소, 반공의 보루로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국가를 만든 것
자유와 평등 사회로 반상(양반,상놈)의 계급이 없는 국가를 만든 것
한국을 모범적 기독교 입국론으로 예수를 믿는 국가로 만든 것
한미상호 조약으로 서로 돕는 문명 국가를 만든 것
자유 시장경재 체제로 부강한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초를 세운 것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어록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는다.
부정을 왜 해, 부정을 했으면 내가 그만 두어야지.
부정을 보고 일어서지 않는 백성은 죽은 백성이지.
이 젊은 학생들은 참으로 장하다. 내가 그만 두면 학생들은 안다치겠지.
나는 해방 본 후에 본국에 돌아와서 우리 여러 애국애족하느 동포들과 더줄어 잘 지냈으니 이제는 세상을 더나도 여한이 없다.
공산주의를 부단한 주의를 하라 콜레라와 사람이 같이 살 수 없듯이 공산주의와 같이 살 수 없다. 공산주의는 콜레라 보다 더 악독한 것이다.

참고서적: 이승만(안병훈역음2011), 프란체스카 리 스토리(이순애,2005), 한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손길(편자 김재술 2015), 건국 70주년 특집,(이승만 회보 2018),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 이승만 화보(이승만 기념사업회 2019년), 이승만 다시보기(인보길 2011), 이승만의 삶과 꿈, 대통령이 되기까지 (유영익,1996), 누가 국가를 만드는가? ( 현영갑, 2021)

송병기 박사(뉴욕장로회신학대 전 학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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