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신성욱 교수

[1] 환상의 숲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약 40분간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면서 깨달은 자연의 진리가 참 신비로웠다. 성경 속에만 진리가 들어 있는 게 아니라 숲과 나무, 풀 등 대자연 속에 하나님의 신비와 조화가 많이 숨어있음을 절감했다.

그 중 ‘갈등’이란 한자어와 관련한 이야기가 가장 뇌리에 남아 몇 자 적어본다. 자연 속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인생의 진리가 다 들어있었다.

[2] ‘갈등’이란 사전적 의미는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거나 불화를 일으키는 상태’를 말한다고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갈등은 인간의 정신생활을 혼란하게 하고 내적조화를 파괴한다고 믿는다.

‘갈등’(葛藤)의 한자를 보면 ‘칡’(葛)과 ‘등나무’(藤)라는 뜻이다. 칡나무와 등나무가 한 곳에 있으면 칡은 시계반대방향으로 등나무는 시계방향으로 감고 올라간다고 한다.

[3] 칡과 등은 각자 따로 존재할 때는 나름대로 괜찮은 의미와 쓰임이 있다. 그러나 그 둘이 엉키면 대책불능이다. 이른바 갈등이 발생한다. 물론 칡과 등이 서로 엉켜 있는 모습은 웬만해선 보기 힘들다고 한다. 칡은 칡대로 등나무는 등나무대로 서로 힘들게 하지 않고 각자 저마다의 삶을 잘 사는 모습을 주로 발견할 뿐이다. 칡과 등이 엉킨 것을 찾아보려고 여러 날 산을 헤집고 다녀보아도 쉽게 찾기 힘들다고 한다.

[4] 그런데 나는 칡과 등나무가 서로 뒤엉킨 모습을 숲에서 직접 목격하는 행운을 잡았다. 광합성을 위하여 소나무를 감고 칡나무가 올라가는데 그 위를 반대방향으로 등나무가 강하게 내리누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도 강하게 눌러서 칡이 끊어진 부분도 보이고, 또 나무에 생긴 움푹 파인 자국도 현저하게 남아 있었다. 자연의 이치와 진리가 그저 오묘하기만 하다.

[5] 신기하게도 가는 칡이 시계반대방향으로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데, 그 위를 굵은 등나무가 시계방향으로 강하게 휘감아 올라가는 모습을 보라. 나면서부터 무슨 원수가 졌는지 저리도 어긋나게 방해하며 올라가는 것일까? 굵은 놈이 힘이 있으니까 가늘고 약한 놈 위에서 억압하겠지 생각지 않는가? 하지만 그게 맞다면 갈등이란 어원이 나올 수가 없었을 게다.

[6] 지금 내가 본 것은 마디마디마다 등나무가 칡 위를 걸터앉아 저지하고 누르는 형국이지만 한 10년쯤 지나면 반대 상황이 벌어진다고 한다. 언제부턴가 등나무 위를 칡이 점령하는 순간이면 그때부터 또 한 10년 정도는 칡이 등나무를 누르는 때가 온다는 것이다.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7] 잘 될 때가 있으면 잘 못될 때가 있고, 힘들 때가 있으면 좋은 때도 있음을 칡과 등나무가 잘 보여주는 것 같다. 하지만 두 나무에 대해서 대부분이 잘 모르는 이야기가 있다.

두 나무는 다른 나무를 타고 올라가 경쟁에만 치중하는 몹쓸 존재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는 뿌리혹박테리아에 공중질소를 고정하여 제공받고 양분을 건네주는 공생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8] 서로 경쟁하듯 나무를 타고 올라가지만 속으론 서로 돕고 공생하는 나무들이란 말이다. 서로 돕기도 하고 갈등도 빚으며 살아가는 것은 식물의 세계나 인간 세계나 별 차이가 없음을 본다.

갈등은 우리 삶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지만 성장과 성숙으로 이끄는 ‘디딤돌’이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하자.

[9] 그리스도인들이여, 이 좋은 계절에 집안에서 성경만 들여다보고 있지만 말고 대자연 속에서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메시지에도 귀 기울여보라. 자연의 섭리가 깨우치는 신비가 성경을 통해 알게 되는 진리 못지않음을 발견할 것이다.

신성욱 교수(아신대학교 설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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