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 시대 세계관
이춘성 목사(광교산울교회 청년부 담당) © 교회를위한신학포럼:서울 유튜브 채널

이춘성 목사(광교산울교회 협동목사)가 최근 TGC 코리아 복음연합 홈페이지에 ‘예배는 어떻게 용서를 이루는가’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이 목사는 “예수님은 분노와 살인에 대해서 가르치시면서 인간을 무가치하게 만드는 ‘라카(바보)’, ‘모레(미련한 놈)’라고 욕과 분노로 결국 살인을 저지른 어떤 사람에 대해서 가르치셨다(마5:22)고 했다.

이어 “그는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사람들을 판단하고 폭력을 행하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이들은 누구보다 경건하고 종교적이었다. 마태복음 5장 23절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은 이 사람에 대한 이어지는 이야기”라며 “그는 하나님에게 제단에서 제물을 드리고 죄를 용서받기 위해 성전으로 가고 있다. 그는 형제를 향한 분노와 증오로 가득하지만,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분노는 용서받고자 하는 이율배반의 태도를 지니고 성전을 향하고 있다. 이러한 이 사람의 상태를 표현하는 한 단어가 있다. ‘위선’이다. 그리고 위선의 뿌리에는 기독교 세계관에서 주로 언급되는 이원론(dualism)이 자리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위선의 뿌리인 이원론은 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실존적 이원론’이다. 이것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난다. 자신의 잘못, 문제를 인정하지 못하고 모든 문제는 외부에 있다고 생각한다. 높은 자존감 때문에, 스스로 실수할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도 인정하기 싫어한다. 외부의 평가에 민감하며, 수치의 감정을 극도로 두려워한다. 이는 일종의 완벽주의라 할 수 있다”며 “실제로는 완벽하지도,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이러한 자기 자신이 주변에 알려지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에서 완벽한 사람이란 없다. 이 때문에, 결국 이런 사람은 현실과 다른 자아를 만든다”고 했다.

또 “둘째는 ‘문화적 이원론’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것들은 열등하고 무가치하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고 영적이며, 신에게 속했으며,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기에 고대 그리스인들은 손으로 하는 노동은 노예들과 여자의 일이었다. 반면 성인 남자 자유인들은 여가의 시간을 통해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를 추구하였다”며 “당대의 지식인이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도 그리스의 이원론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들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제사하는 일,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일이 더 가치 있고,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이에 비해서 중요하지 않거나 가치 없는 것으로 치부했다”고 했다.

더불어 “지금 성전에 가고 있는 이 사람은 단순히 둘 중의 하나의 이원론에 빠진 것이 아니었다. 실존적 이원론은 모든 인간이 지닌 위선이다. 또한, 문화적 이원론은 당시 그레코-로만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위선이었다”며 “지금도 이 두 이원론은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빈틈없이 완벽한 사람으로 칭찬받고 싶어 한다. 또한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는 것에 두려워할 뿐 아니라 분노한다. 더하여 이를 막기 위해 살인에 준하는 잔인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위선은 진실한 사과와 용서를 불가능하게 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 사회는 문화적 이원론에 깊숙이 젖어있다. 한국 사회는 사농공상이라는 오래된 사회문화 구조에 영향을 받아 왔다”며 “지금은 덜하더라도 여전히 우리는 교수나 의사, 법조인이나 정치인, 학자를 더 우대하고 노동자들을 열등하게 여긴다. 외적으로는 노동이 중요하다고 말하나, 여전히 건설 노동자, 배관공들, 공장의 하청 노동자의 일은 대기업 사원이나 의사의 소득에 절반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위험은 배나 감당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이러한 문화 구조와 실존적인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들만 위선자가 아니라고 그 결백을 주장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절대적으로 더 많은 시간을 세상에서 보내며, 기도하며 말씀을 보는 시간보다 세상의 이론과 논리에 더 잘 길들어져 있다. 그런 상황과 환경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일상에 가감 없이 실천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 없는 일”이라며 “우리는 그렇게 타성에 빠지고, 영적인 무감각증에 빠져 세상의 문화와 개인의 이기적인 실존에 충실하게 살고 있다. 그러다 혹시 모를 죽음에 대한 불안이 엄습하면, 보험을 드는 심정으로 일요일, 하루 중 몇 시간을 예배에 투자하는 것으로 불안을 해소한다. 만약 이것이 우리 신앙의 본모습이라면 이는 비극이 아닐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예배는 ‘멸시-증오-복수’가 아닌 ‘회개-용서-화해’의 시스템을 작동시킨다. 예배는 이것을 예배에 참여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한다”며 “어떤 경우에는 이것이 예배에 참여한 사람들이 예배를 중단하게 만든다. 예배의 요구가 이들에게 너무나 무겁고 감당할 수 없는 요구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목사는 “예수님이 제사를 통해 용서의 요구에 관해서 설명하신 것은 구약의 제사는 ‘회개(각성)-용서-화해’의 시스템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라며 “성전에서 사람은 죄를 각성하고 이를 용서받기 위해 제물을 가지고 나온다. 그리고 제사장은 제물을 받아 죄인을 대신하여 제사를 지낸다. 그런 후에 제사장은 제물을 다 태워 아무런 죄가 없다는 것을 선언한다. 그런 후에 사람은 하나님과의 원래의 관계로 돌아간다. 화해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것이 ‘회개-용서-화해’의 시스템”이라고 했다.

이어 “이는 하나님과의 우리의 관계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온전한 화해는 ‘하나님’과 ‘나’ 사이의 영적인 관계만이 아닌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회복으로 확장된다”며 “산상설교에서 예수님은 예배의 완성은 하나님과의 화해와 사람과의 화해가 교차하는 지점이라고 분명하게 가르치셨다(마9:23~24). 예수님은 예배가 그리스도인의 양심을 깨워 각성하게 만들며, 이때 예배를 잠시 중단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이것은 단순한 예배의 중지가 아니다. 이는 예배의 확장을 의미한다. 예배의 잠시 중지는 성전과 예배당 밖으로 예배를 확장해서 우리의 삶의 터를 지성소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예배가 삶 속에 침투하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가르치신 공적 예배의 기능”이라고 덧붙였다.

또 “그리스도인들은 공적 예배 장소 밖으로 나가 또 다른 예배를 마쳐야 한다. 형제의 죄를 용서하는 것, 또는 형제에게 죄를 용서받는 것, 이후에 회복하는 것”이라며 “마치 성전에서 ‘회개-용서-화해’의 시스템이 제사를 통해 성취되듯이 말이다. 참 그리스도인의 예배란 ‘회개-용서-화해’의 거룩한 시스템이 예배당 바깥세상에서 작동하게 한다. 바울은 이를 산 제물로 드리는 참 예배라고 하였다”고 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는 철저히 이원론과 위선을 거부하는 예배이다. 하나님과의 화해와 사람과의 화해는 동전의 양면이다. 만약 사람과의 화해가 없다면 하나님과 화해도 없다. 한쪽만의 용서와 화해란 위선”이라며 “그런 면에서 하나님의 용서와 화해가 없는 세상에서 용서는 위선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아울러 “예수님은 ‘멸시-증오-복수’를 반복하는 위선적인 사람은 결국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이 시스템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는 위선은 자각 증상이 없기 때문”이라며 “당연한 듯, 아무런 문제점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마지막 하나까지 ‘멸시-증오-위선’의 씨앗이 하나님 나라에 뿌리 내리는 것을 허용하시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는 위선이 뿌리내릴 땅은 단 한 곳도 없다. 이것이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하셔서 죄인을 용서하시고 화해하신 성부 하나님의 단호함”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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