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신성욱 교수

[1] 1993년 9월, 드디어 어릴 때부터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었던 미국 유학을 떠났다. LAX 공항에 도착해서 입국절차를 마친 후 짐을 찾아 공항 밖을 나갔더니 친구 목사님 세 사람과 후배 목사님 한 사람이 차를 타고 마중을 나왔다. 차 세 대에 짐과 6명의 가족들을 나눠 실은 채 나는 한 친구 목사님 차를 타고 우리를 위해 미리 마련해주신 아파트를 향해 출발했다. 난생 처음 밟아서 구경하는 미국은 신기하기도 하고 새롭기 짝이 없었다.

[2]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동하는 동안 미국 도로의 교통체증이 한국 도로 못지않게 심각함을 목격할 수 있었다. 공항에서 벗어나자 어느 새 우리가 탄 차는 다이아몬드가 새겨져 있는 뻥 뚫린 1차선을 막힘없이 시원스레 달리고 있었다. 오른 쪽 2,3,4차선의 차들은 정체상태(bumper to bumper) 속에 느림보 걸음으로 답답하게 운전하고 있건만, 우리는 어째서 이 확 트인 길을 일사천리로 달릴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아서 친구 목사님에게 물어보았다. 그놈의 궁금증은 미국에 와서도 여전히 발동되고 있다. 그러자 친구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3] 미국은 기독교 국가라서 목회자들을 우대하기 때문에 1차선은 목회자용으로 편하게 달릴 수 있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지면서 미국에 참 잘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미국의 1차선 도로가 목회자들을 위한 차선으로 지정되어 있다니 좀 미심쩍긴 했으나 순진한 나는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이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4] 기분이 한껏 좋아진 나는 이 도로의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프리웨이’(Free Way)라 부른다고 한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생각을 해봤다. ‘Free’라? ‘free’는 ‘자유로운’이란 뜻 아니던가? ‘아, 프리웨이는 자유로이 마음껏 달리는 도로란 뜻이구나!’라고 생각했다.

한국에 있을 때 ‘free’는 거의 대부분 ‘자유로운’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미국에 가보니 ‘free’란 말은 그보다 ‘공짜의’라는 뜻으로 더 많이 사용됨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5] 그렇게 LA에 9개월을 살면서 1994년 1월엔 노스릿지(Northridge) 지진같은 강력한 지진을 난생 처음 경험하게 되었다. LA를 떠나 빨리 내가 공부하고 싶은 시카고로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내가 원하던 트리니티 신학교(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 입학이 허가되어 대륙횡단을 해서 LA에서 시카고로 이주를 하게 됐다. 시카고에 살아보니 LA의 ‘Free Way’가 어떤 것인지를 쉽게 이해할 수가 있었다.

[6] 시카고는 LA와는 달리 ‘톨웨이’(Toll Way)가 많았다. ‘요금을 내고 타는 도로’ 말이다. LA에서 공짜 도로만 타다가 시카고에서 요금을 주고 타려니 손해 보는 느낌이 아주 강하게 들었다. 미국에선 ‘공짜의’라는 뜻으로 훨씬 더 많이 사용되는 단어 ‘Free’가 한국에선 어째서 ‘자유로운’이란 뜻으로만 주로 해석이 되어왔는지 모르겠다.

‘Free’란 단어가 꽤 폭넓게 오해되고 있는 분야가 또 하나 있다.

[7] 신학과 신앙에서 세계에서 말이다. 이 단어가 대부분의 신자들에게 잘못 이해되고 있음을 아는 이가 몇이나 될까? 하나님은 우리의 죄 문제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을 유일한 중보자로 보내기로 하셨다. 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다. 따라서 그분을 메시야로 영접하고 구원자로 받아들일 때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의 선물을 주신다.

[8] 그런데 이것은 믿기만 하면 값없이 주시는 것이다. 이 때 ‘값없단’ 말을 ‘공짜의’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 인간 편에서 갚거나 지불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값없이’ 그리고 ‘공짜로’ 선물하셨다고 말이다. 어떤 점에서 보면 전혀 틀린 얘기가 아니다. 공짜가 아니고선 우리에게 혜택이 주어질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얻은 이 어마어마하게 소중하고 값진 구원이 싸구려 취급될 때가 많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9] 공짜로 받는 선물은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싸구려로 인식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이치다. 무엇이든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손에 넣어야 그 가치를 알고 소중하게 취급하게 되는 법이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구원도 마찬가지다. 공짜로 주어지는 거라 하니까 자꾸만 싸구려 취급 받게 되는 것이다. 비록 나는 공짜로 받는 거지만 이면에는 엄청난 희생의 대가가 치러진 결과임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10]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고 죽으신 사건 말이다. 때문에 복음을 ‘공짜’(free)라 표현하기보다는 ‘값으로는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소중한’이란 단어로 묘사하면 좋겠다. 그런 단어가 있을까? 당근이다. 이럴 때 사용하라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무도 적절한 한 단어를 예비해두셨다. ‘Priceless’ 단어 말이다. 이 단어의 뜻은 ‘값으로는 따질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가치가 있는’이라는 뜻이다.

[11] 인도에서 선교를 했던 한 선교사님의 간증을 알고 있다. 거기는 힌두교와 불교가 편만한 나라가 아니던가. 어느 날 그 선교사님이 힌두교와 불교 문화관에 깊이 빠져 사는 친한 친구에게 전도를 했다 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이 값없이 영생이라는 선물을 주십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반문하면서 도무지 이해를 하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12] “선교사님, 값없이 영생을 받다니요? 우리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행과 자선을 베풀어야 하는지 아십니까? 우리는 죄를 지으면 델타 신전에서 1000미터 이상 무릎으로 기고 1000명 이상에게 자선을 해야 구원을 받을까 말까 하는데 어떻게 값없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이해가 안 됩니다.”

그래도 선교사님은 전도를 포기하지 않고 그 사람과 좋은 관계를 가지며 잘 섬겼다.

[13]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값진 진주를 선물로 가져왔다. 그래서 “이렇게 귀한 선물을 어떻게 받아요, 돈을 지불할게요”라고 했다. 그랬더니 “이것은 값으로 계산할 수 없는 선물이에요. 제가 목숨을 담보로 하고 캐온 진주라구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제가 돈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했더니, 화를 내면서 하는 말이, “선교사님, 자꾸 나에게 돈을 주려고 하면 그건 나에 대한 모욕입니다.”

[14] 바로 그때 선교사님은 친구의 말꼬리를 잡아가지고 복음을 제대로 이해시켜 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말이다. “사랑하는 형제여, 값없이 구원의 선물을 받는다는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선물은 값으로는 계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만 주시는 귀한 선물이라구요.” 그렇다. 이게 바로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다.

[15]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대가는 값으로 따지자면 너무도 비싸서 누구도 지불할 수 없는 엄청난 가치가 나가는 것이란 말이다. 그래서 ‘공짜’(free)로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은 공짜나 무료처럼 싸구려가 아니다. 너무도 값이 많이 나가서 가격을 매길 수 없을 만큼 비싼 것이다. 따라서 구원을 ‘Free’로 받는 것으로 묘사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보다 정확한 용어는 ‘Priceless’란 사실을 놓치지 말고 오늘도 그에 부끄럼 없는 가치 있는 삶을 잘 살아가자.

신성욱 교수(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email protected]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

#신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