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균 목사
홍석균 목사

본문 : 다니엘서 4장 19-27절

BC 570년경에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이 두 번째 꿈을 꾸게 된다. 꿈을 꾸고 난 뒤, 불길한 예감을 느꼈고 다니엘을 부르게 된다. 왕은 다니엘에게 꿈의 내용을 해석하라고 재촉한다. 그때 다니엘은 번민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꿈의 해석이 느부갓네살 왕의 예감처럼 불길했기 때문이다. “왕께서 보신 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그 높이는 하늘에 닿았으니 땅 끝에서도 보이겠고,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열매가 많아서 만민의 먹을 것이 될 만하고 들짐승은 그 아래에 살며 공중에 나는 새는 그 가지에 깃들었나이다.”(20-21절) 처음에는 나무가 번성하는 꿈이었다. 여기서 네 개의 동사를 주목해야 한다. 첫째는 나무가 자라고, 둘째는 견고하여지고, 셋째는 하늘에 닿았고, 넷째는 열매가 많았다. 이 나무는 느브갓네살 왕을 상징하는 것으로 왕의 권세가 점점 커지고 온 세계를 다스리는 능력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꿈의 내용이 갑자기 반전된다. 한 순찰자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그 나무를 베라고 말한다. 그리고 벤 그 나무를 들풀 가운데 두라고 하셨다. 이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다. “왕이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낼 것이라 그 때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25절) 여기에서도 네 가지 동사를 주목해야 한다. 첫째는 쫓겨나서, 둘째는 들짐승과 함께 살며, 셋째는 소처럼 풀을 뜯으며, 넷째는 하늘 이슬에 젖게 된다. 꿈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하늘을 치솟던 왕의 권세가 하루아침에 땅에 떨어져 마침내 철저히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 준 것이다.

이 꿈을 통해 보여준 메시지가 무엇이었는가?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 것은 과시하거나 남용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라는 것이었다. 느부갓네살 왕은 그 권세가 자신의 것인 양 착각하면 안 되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느부갓네살 왕은 모든 권세가 자신의 것 인양 착각했고, 결국 패망할 것을 선고받은 것이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왔다. 건강, 가정, 직장, 자녀, 재산, 이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강해 보여도 모세 혈관 하나만 막히면 파리 목숨이지 않은가? 인간이 아무리 지혜롭게 보여도 뇌세포 하나만 고장 나도 속수무책이지 않은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가장 지혜로운 자는 우리의 모든 소유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이다. 하나님은 높이시기도 하시고 낮추시기도 하신다. 주시기도 하시고 취하기도 하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에스겔 17장 24장에서도 “들의 모든 나무가 나 여호와는 높은 나무를 낮추고 낮은 나무를 높이며 푸른 나무를 말리고 마른 나무를 무성하게 하는 줄 알리라 나 여호와는 말하고 이루느니라 하라”라고 말하고 있다. 또 한나의 기도에서도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삼상 2:6-7). 바닥처럼 낮아져 있는가? 신앙의 옷깃을 여미고 인내하시길 바란다. 하나님이 우리의 머리를 다시 드실 것이다. 높은 자리에 올라있는가? 그러할 때일수록 겸손의 허리띠를 다시 매길 축복한다. 그때 우리의 자리를 지켜 주실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다니엘이 왕 앞에서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어떻게 담대하게 말할 수 있었냐는 것이다. “그런즉 왕이여 내가 아뢰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라 하니라”(27절)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권력 앞에서 주눅 든다. 어떻게든 잘 보이려 과는 은폐하고 공은 과장한다. 그러나 다니엘은 왕에게 가감 없이 꿈을 풀어줄 뿐 아니라 대안도 제시한다. 그 이유는 그는 하나님 편에 섰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편에 설 때 세상의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삶의 일관성을 가진다. 다니엘서 1장에 진미를 먹지 않고, 3장에서는 금 신상에 절하지 않고, 6장에서는 사자 굴에 들어가도 요동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는 오롯이 하나님 편에 섰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디에 줄을 서야 하나? 어디에 기대면 안전을 도모할 수 있을까 계산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고 한다. 오직 하나님의 편에 서기를 바란다. 다니엘이 절대 권력자인 느브갓네살 왕 앞에서도 확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높이시기도 하시고 낮추시기도 하시고 주시기도 하시고 취하시게 하시는 분이심을 실존적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실력은 우리가 믿는 대상이 어떤 자인지 아는 바른 인식에서 나온다. 그분을 아는 깊이만큼 우리의 내공은 깊어지고, 그분을 아는 넓이만큼 세상을 포용할 수 있다. 또 그분을 아는 길이만큼 롱런하게 될 것이고, 그분을 아는 높이만큼 숭고한 신앙을 가질 것이다. 요동하는 시대에 절대 만세반석 되신 하나님 편에 안전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복한다.

홍석균 목사(한성교회 청년부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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