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신성욱 교수

[1] 인생은 고난과 아픔의 연속인 삶이다. 그 고뇌와 고통이 힘들어 살기 어렵다면 공동묘지로 가면 된다. 시험에 낙방하여 슬프고, 파산해서 슬프고, 사랑하는 이로부터 실연당하여 슬프고... 원치 않는 슬픔이 계속 찾아오는 게 우리의 인생이다.

그 중 최고의 아픔과 슬픔은 어떤 것일까? 아마도 사랑하는 젊은 자식을 먼저 보내는 것이 견딜 수 없는 가장 큰 아픔이 아닐까 생각한다.

[2] 오죽했으면 소설가 박완서가 자식을 잃고 난 후 쓴 자기 책의 제목을 『한 말씀만 하소서』라고 붙였을까. 그 책에 나오는 가슴 아픈 한 대목을 소개해보자.

“내 아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땅속에 누워 있는 것일까? 내 아들이 어두운 땅속에 누워 있다는 걸 내가 믿어야 하다니. 발작적인 설움이 복받쳤다. 나는 내 정신이 미치기 직전까지 곧장 돌진해 들어갔다가 어떤 강인한 저지선에 부딪혀 몸부림치는 걸 여실하게 느낀다.

[3] 그 저지선을 느낄 수 없어야 미칠 수 있는 건데 그게 안 된다. 인간의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초월적인 존재가 정말 계실까? 계시다면 내 아들의 생명도 내가 봉숭아를 뽑았듯이 실수도 못 되는 순간적인 호기심으로 장난처럼 거두어간 게 아니었을까? 하나님, 당신의 장난이 인간에겐 얼마나 무서운 운명의 손길이 된다는 걸 왜 모르십니까. 당신의 거룩한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을 이렇게 막 가지고 장난을 쳐도 되는 겁니까.”

[4] 왜 책 제목이 <한 말씀만 하소서>인지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미국 수정교회의 담임이었던 로버트 슐러(Robert Schuller) 목사라 하면 ‘적극적인 사고방식’(Positive Thinking)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어떤 고난과 난관이 닥쳐온다 해도 늘 긍정의 마음을 갖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살라고 강조해온 그였다. 그랬던 그도 정작 자신의 딸이 죽음의 위기에 봉착하자 그만 무너지고 말았다.

[5] 내가 유학할 당시 교육 목사로 사역했던 담임 목사님은 부흥사로 유명한 분이었다. 젊은 시절, LA의 어느 교회가 개최한 야외 집회에서 강사로 참석해서 부흥회를 인도하고 있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아침 식사를 한 후 강사실에서 쉬고 있던 때였다.

그런데 본 교회 담임 목사님이 방에 들어오더니만 강사 목사님에게 이상한 말을 하는 것이었다. “목사님, 놀라면 안돼요. 마음을 단단히 하셔야 해요!”

[6] 그 얘기만 들었음에도 강사 목사님은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고 한다. 이틀간 강력한 말씀으로 성도들에게 은혜를 끼쳐온 강사였지만 그 교회 담임 목사가 얘기한 단 두 마디에 그냥 무너져 내리고 말았던 것이다. 집회에 함께 동행 했던 어린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는 불길한 직감이 왔기 때문이다.

자식을 키워보면 안다. 자기 일이라면 모를까 자식의 일에는 한 없이 약한 게 부모다.

[7] 그렇다. 자식의 문제 앞에 강한 부모는 없다. 내 자식이 아니라 남의 자식이라면 어떤 권면이나 위로도 가능하다. 하지만 막상 그것이 자기 문제가 됐을 땐 평소 자기가 말한 대로 담대해지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경험이 없는 나 같은 이도 충분히 그럴 것이라 짐작이 간다.

그런데 실제로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찌 될까? 이렇게 가정하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통스런 일이 분명하다.

[8] 지난 한 주간은 나와 우리 다수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의 아들이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일로 같이 슬퍼하고 아파한 시간들이었다. 지구촌교회 원로이신 이동원 목사님의 둘째 아들 범이가 대장암으로 고생하다가 천국에 갔기 때문이다.

한동대 Law School과 미국 USC Law School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하던 장래가 촉망되던 43세의 젊은이였다.

[9] 너무도 꽃다운 나이에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아들과 부모님과 형님, 그리고 일가친지들과 성도들을 남겨둔 채 먼저 천국에 입성했다.
나는 이 목사님 칠순기념예배를 드릴 때 목사님 내외분과 함께 단상에 있었기 때문에 그를 가까이서 본 적이 있다. 그날 목사인 큰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기도했고, 둘째 아들인 범이는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를 읽었다. 지금도 범이가 쓴 편지의 내용이 남아 있을 정도로 감동적인 글이었다.

[10] 기억에 남는 몇 대목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리 아버지는 어머니나 자식들에게 가정적이길 원하셨는데, 너무 유명하시고 바쁘셔서 충분히 가정적이지 못하셨다는 미안함을 늘 갖고 계시는데, ‘아버지, 그렇게 분주하시면서도 아버지는 우리에게 너무도 가정적인 분이셨어요. 더는 미안해하시지 마세요.’”라고 했다.

그 다음 말에 우리는 눈물을 쏟고 말았다.

[11] “우리 아버지는 당신이 설교하시는 대로 사셨어요. 우리가 증인이에요!” 이 때는 우측에 앉아 있는 아버지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너무도 감동적인 고백이었다. 눈물이 솟구칠 정도로 엄청나게 영광스러운 자리에 내가 있음을 절감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설교자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는 ‘최고의 설교자’라는 호칭보다 ‘설교하는 대로 삶을 살았다는 자식의 증언’이리라.

[12] 그런 아버지 이동원 목사님은 자식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아픔으로 미국에 도착하여 내게 문자를 보내오셨다. 처음 문자는 아들의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라 하셨다. 장례식을 치른 지난 금요일 저녁, 여기 토요일 이른 아침에 다시 문자를 보내셨다. 거기엔 감동적인 '10가지의 감사 내용'이 적혀 있었다. 너무도 감동적이기에 여기 다시 소개해본다.

[13] <아들 범과 작별하며 드리는 10가지 감사>

1. 아들이 그 지독한 암의 통증에서 해방되어 감사합니다.
2. 영광의 나라 천국에 입성하여 감사합니다.
3. 그동안 유머가 많았던 아들을 인해 누린 기쁨을 인해 감사합니다.
4. 단 한 번도 불평 없이 자랑만 하던 아내와 애교덩어리 손자를 남겨주어 감사합니다.
5. 어려서 게임을 좋아하더니 게임변호사가 된 것 감사합니다.
6. 아들의 고통을 통해 예수님을 내어주신 하늘 아버지의 고통을 알게하심 감사합니다.
7. 아들의 암투병을 통해 수많은 암환자의 고통과 연대하게 된 것 감사합니다.
8. 또한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수많은 부모들의 고통과 연대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9. 아들의 치유를 위해 기도한 수많은 중보 기도자들과 한 지체가 되어 감사합니다.
10. 아들이 간 천국을 더 가까이 소망하게 되어 감사 감사합니다.
(2020년 10월 가을 하늘 아래, 아들 범을 천국으로 보내는 목사 아빠~이동원)

[14] 억울하고 원통하여 넋을 잃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목을 놓아 통곡하고 하늘을 원망하고 절망에 빠질 상황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무려 10가지의 감사 내용이 쏟아졌다.

나 같으면 저럴 수 있을까? 나 같으면 저런 감사가 나올 수 있을까?
내가 알기로 이동원 목사님은 심성이 곱고 약한 분이시다. 그래서 지금까지 설교하고 위로한 바와 달리 자식의 죽음 앞에서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고 생각된 분이시다.

[15] 하지만 이번 일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그분이 참으로 큰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설교만 잘하시는 게 아니라, 극한 슬픔과 아픔의 순간에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감사할 줄 아는 이 시대의 큰 바위 얼굴임을 다시금 절감하게 된다.

부디 사랑하는 이 목사님 내외분과 유족들이 하루 속히 깊은 상처와 아픔을 회복하고 영적으로 더욱 견고하고 깊어져, 존경할 선배를 찾기 어려운 한국 교회의 모범적 지도자로 오래오래 우뚝 서주시길 간곡히 바란다.

신성욱 교수(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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