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고전 독서를 통해 천재가 된다?
혁명적 사고가 계속 이어진다면
위대한 책이 모두에게 유익을 줄까
고전 설명서가 말하는 존 번연

최휘운
최휘운 독서논술 교사

이지성 작가는 <리딩으로 리드하라>에서 인문고전 독서가 평범한 두뇌를 천재의 두뇌로 변화시킨다고 주장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 존 스튜어트 밀 같은 사람들도 처음엔 평범했으나 인문고전 독서를 통해 천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천재들이 쓴 책을 읽다 보면 평범한 생각밖에 못하던 두뇌가 혁명적으로 꿈꾸고 천재적으로 사고하는 두뇌로 바뀐다고 한다. 사실일까?

아인슈타인은 분명 혁명적 사고를 했다. 누구나 그를 천재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혁명만 일으키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존 틀을 매일같이 뒤집는다면 놀라움을 넘어 혼돈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인슈타인도 또 다른 혁명적 사고에 대해서는 집요한 공격을 퍼부었다. 아인슈타인의 친구였던 파울 에렌페스트의 말이다.

"아인슈타인! 나는 자네에 대하여 부끄러운 생각이 드네. 자네는 마치 자네의 상대성이론에 반대했던 사람들처럼 이 새로운 양자이론에 반대하고 있지 않은가?"(W. 하이젠베르크 '부분과 전체' 中)

모티머 애들러는 어렵고 좋은 책을 붙잡고 씨름할 때 얻는 유익 두 가지를 밝혔다. 하나는 책 읽는 기술의 향상, 다른 하나는 인생의 영원하고 위대한 진리를 보다 깊게 깨닫는 것이다. 고전이, 혁명적인 생각이, 영원한 진리를 드러내 준다면 그것은 유익하다. 그러나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고정 관념이 문제인가? 문제는 고정 관념이 아니라 틀린 관념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지으셨다(창 1:27). 사람을 남녀로 구분하지 않는 혁명적 사고를 시작해 볼까? 이는 진리를 떠나는 일이다.

깨야 할 것과 깨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할 분별력이 없다면 아무리 위대한 책을 읽어도 소용이 없다. 훌륭한 구절을 읊어 감탄케 하다가도 엉뚱한 적용으로 재앙을 낳는다. 진리인 성경도 오용하면 지옥을 향하게 되지 않는가. 하물며 고전은 타락한 인간의 작품이다. 하나님의 일반은총 덕분에 건질 게 좀 많은 책이 됐을지는 몰라도 그 전체가 영원한 진리는 아니다. 작품 곳곳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어 독(毒)을 제거하지 않은 복어와 같다. 아니, 복어를 제거하지 않은 독이라 해야 하나?

클리프턴 패디먼의 <평생 독서 계획>은 "고전을 설명하는 책의 고전"으로 동서양의 다양한 고전들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 실린 133인의 작가 중에는 <천로역정>으로 유명한 존 번연(John Bunyan)도 있는데, 그에 대한 설명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평생 독서 계획>에 열거된 선배 작가들의 작품을 번연은 하나도 읽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들과 같은 반열에 올랐다."

위대한 고전을 읽고도 엉뚱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고전을 읽지 않고도 고전을 쓰는 사람이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번연은 영원한 진리를 알았다. <천로역정>만 위대한 작품이 아니다. <죄인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나 <상한 심령으로 서라>, <하늘 문을 여는 기도> 등을 읽어 보라. 영(靈)적인 핵펀치를 맞는 느낌일 것이다. 청교도의 황태자 존 오웬도 "저 땜장이처럼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다면 제 모든 학식이라도 기꺼이 맞바꾸겠습니다" 라고 하지 않았나. 고전을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많지만, 고전 읽기 자체에 소망을 두게 되지는 않는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말씀 앞에서 떨게 될 뿐이다(시 111:10).

최휘운 독서논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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