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신성욱 교수

[1] 시절이 하수상하니 주일날 교회예배 폐지에 대한 찬반 의견이 아주 분분하다. 공공의 유익을 위해 한시적으로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면 되지 않느냐며 교회에서의 예배를 폐지하는 목회자도 있고, 목숨 걸고 사수해야 할 주일성수를 그깟 코로나 바이러스 땜에 죽을까봐 두려워 포기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교회에서의 예배를 고집하는 목회자도 있다. 심지어 그중 일부는 ‘믿으면 바이러스에 전염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실 것’이라면서 아예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예배를 드리고 있는 이들마저 있다.

[2] 과연 어느 생각이 성경적일까? ‘생명의 위협이 있더라도 신자는 교회에서의 주일성수를 반드시 사수하는 게 옳은 것인가?’ ‘그렇게 교회에서 예배 드리더라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확진 환자나 사망자가 한 명도 생기지 않도록 보호해 주신다는 생각이 과연 올바른 신앙 자세인가? 똑부러지는 정답이 궁금한 이들로부터의 전화를 적잖게 받아오고 있다. 과연 우리는 이런 이슈들에 대해서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일까?

[3] 이처럼 치명적인 전염병들에 대한 임상적이고 역사적인 사실을 배경으로 성경이 언급하는 가르침을 살펴보기로 한다. 로마도시에 전염병이 크게 돌았던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시내 길거리 곳곳에 널브러져 죽어 있었다. 그런데 그 누구도 감히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다. 손을 대는 사람이면 누구든 다 전염되어 죽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마 시내는 사람들의 시체가 길거리마다 쌓여있었고, 온 도시가 시체 썩는 냄새로 코를 찔렀다.

[4] 그런데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한밤중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나 시신을 수습하기 시작하더니 아침이 되면 사라졌다. 이렇게 하여 며칠 후 로마 시내는 깨끗하게 정리 되어 있었다. 로마에 있는 고관으로부터 일반 서민들까지 모두가 궁금했다. 과연 저들이 누구일까? 알고 보니 카타콤으로 숨어들었던 기독교인들이었다. 그래서 기독교에 대한 오해가 풀리고 백성들 사이에 칭송이 일기 시작했다. 그 후 이것이 기독교가 공인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당시 시신을 수습한 사람들 중 염병 걸린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믿는 자들은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한다(막 16:17)는 말씀이 이루어진 케이스이다.

[5] 하지만 또 다른 사실도 마저 참조해야 한다. 2004년 12월 26일 주일, 인도양에서 쓰나미가 발생하여 20만 여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일어났다. 교회당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던 이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렇다. 예수님은 성경대로 자연 재해를 멈추는 기적을 베풀기도 하셨으나, 2004년의 쓰나미는 막지 않으셨다. 이는 역사적 사실이다.

쓰나미여서 살아나기가 불가능했지 않느냐라고 반박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쓰나미 중에도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물 속 깊이 잠수해 해저여행을 즐긴 후 살아난 경우도 있음을 놓치지 말라.

[6] 하나님의 역사와 이적을 믿는 믿음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취할 수 있는 도리는 다 하는 것도 무시되어선 안 된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의 안전도 중요하겠지만, 국가 전체와 타인들의 안전까지 연결되어 있는 사안일 때는 더욱 지혜롭고 덕스러운 판단이 필요하다. 주일성수는 가정에서도 얼마든지 지켜낼 수 있다. 초대교회 예배의 원형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괜히 우리 신앙 우리가 지킨다는 일념으로 교회에 모여서 예배 드리다가 확진자가 나오고 사망자까지 생긴다면 주변 이웃들은 물론 국가 전체에 피해를 주게 됨을 망각해선 안 된다. 그러잖아도 불신자들로부터 손가락질 받아오던 한국 교회가 신천지 이단처럼 사회에 유해한 집단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일은 결코 일어나선 안 된다.

[7] 아래 소개하는 사진 한 장이 많은 깨달음을 준다(해당 사진은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617883858364186&id=100004277616324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주). 당국이 교회에서의 예배 금지를 권유함에도 죽어도 교회당에서 예배를 드려야겠다고 고집 피우는 이들의 모습과, 환자들을 돌보느라 정신없으신 예수님의 모습이 교묘하게 대조되어 있다. 무엇을 말해주는가? 예배 자체보다 더 소중한 걸 놓쳐선 안 된다는 메시지 아니겠나?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6).

[8] 그렇다. 일상적 예배와 금식보다 더 소중한 건 병들고 주리고 약한 이웃들을 도와주는 것이다. 주일에 주님 만나러 교회당 찾는 일보다 시급한 일은 이 상황에서 주님이 무얼 하시기 원하시는지 그 일을 찾아 행하는 일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대구로 내려가서 확진자들을 도우는 일에 직접 나설 순 없다. 현 상황에서 확진자들에게 가장 필요하고도 현실적인 일이라면 무엇일까를 생각해봐야 한다. 교회가 물질로 돕거나 음식과 마스크를 공급하는 일이다. 발에 채일 정도로 흔하고 가치 없어 보이던 마스크 한 장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이상한 시대가 되지 않았는가?

이럴 때 나부터라도 마스크 많이 확보하여 공급부족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순종을 체험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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