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살아있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일시 : 2017.04.30 승리감리교회 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22:23-33

마22:23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마22:24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 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마22:25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장가들었다가 죽어 상속자가 없으므로 그 아내를 그 동생에게 물려 주고
마22:26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마22:27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마22:28 그런즉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마22: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오해하였도다
마22: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마22:31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마22: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마22:33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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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교회 이충섭 목사
▲이충섭 목사(승리교회)

[기독일보=설교] 한 노인이 산책하는데 낯익은 동네 꼬마가 공터에 앉아 울고 있었습니다. 노인은 아이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엄마한테 혼났니? 왜 그렇게 우는 거야?”
노인이 손수건으로 눈물 콧물을 닦아 주자 아이는 겨우 말문을 열었습니다.

“친구들이 아빠를 놀려요. 아빠는 다른 아저씨들처럼 돈을 많이 벌지 못하거든요. 우리 아빠는 실패한 사람인가요?”
노인은 대답 대신 아이 옆에 쪼그려 앉았습니다.

“할아버지랑 재밌는 놀이할까?”
노인은 주위에 있는 모래를 모아 작은 더미를 만들었습니다. 그러고는 가는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모래 더미 가운데 깊숙이 꽂았습니다.

“한 명씩 번갈아 가며 모래를 조금씩 가져가는 거야. 그러다 가운데 나뭇가지를 쓰러뜨리면 지는 거지.”
노인은 처음부터 반 가까운 모래를 가져갔고 그 모습을 본 아이는 약간의 모래만 가져갔습니다. 다음번에도 그는 많은 양의 모래를 가져가려다 나뭇가지를 쓰러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까르르 웃으며 노인을 놀렸습니다.

“할아버지 바보네요. 그렇게 많이 가져가려고 하니까 나뭇가지가 쓰러지잖아요.”

노인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그래, 인생은 말이다. 누가 모래를 많이 모으는지가 아니라, 누가 쓰러지지 않는지 겨루는 놀이란다 네 아버지도 마찬가지야.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았다면 진 것이 아니란다. 네 아버지는 패배자가 아니라 인생을 열심히 살고 있는 거란다.”

포기하지 않았다면 쓰러지지 않았다면 인생 놀이는 계속될 것입니다. 돈에 맞춰 일하면 직업이고, 돈을 넘어 일하면 소명입니다.

인생은 직업이 아니고 소명입니다. 닥친 문제는 어쩔 수 없지만 반응은 내 몫입니다. 어릴 때는 나보다 중요한 사람이 없고, 나이 들면 나만큼 대단한 사람이 없고, 늙고 나면 나보다 더 못한 사람이 없습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에 도전하지 않으면, 내 힘으로 갈 수 없는 곳에 이를 수 없습니다. 결국 모든 것이 나로 부터 시작됩니다.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지만 기독교인은 모든 것이 하나님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기에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살아 있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죽은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두개인들이 부활 후의 결혼에 대해 논쟁하고 있습니다. 사두개인은 모세의 오경만을 성경을 인정하고 내세와 부활과 천사의 존재를 부인하였습니다. 사두개인은 부활의 세계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완전히 새롭게 되는 세계인줄 모르고 단순히 현세의 연장인 줄만 알았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죽은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1. 우리는 부활, 하나님의 능력, 영생을 믿습니다.(23절)

본문 23절에 “부활이 없다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라고 하였습니다.

사두개인은 부활이 없다는 것입니다. 부활을 안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활을 믿습니다. 복음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우리는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의 때에는 장가가는 일도 없고 시집가는 일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결혼의 필요성을 부인하신 것이 아니라 부활의 세계는 현세의 연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완전히 새롭게 되는 세계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4절에서 “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하였습니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사역이 그대로 되어야 합니다. 말씀사역이 일어나야 합니다. 죽은 말씀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의 말씀이 선포되어야 합니다. 산 떡이신 예수님이 선포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후에 말씀하신 말씀이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고 하셨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였습니다.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민수기 14장 28절에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대로, 우리가 말한 대로 되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대한 믿음의 말을 해야 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말을 듣고 계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생각도 아시고 우리의 믿음의 크기도 아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대로 이루시는 분임을 잊지 맙시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마19:26) 하셨습니다.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눅18:27) 하셨습니다. 우리의 믿음 없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맙시다.

하나님의 능력은 무제한입니다. 우리의 믿음 없음이 문제입니다.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리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느니라”(마17:20).

2.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을 체험해야 합니다.

우리교회는 죽은자의 하나님을 말하지 않고 산자의 하나님을 체험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데 하나님께서 옛날 아브라함에게 역사하셨던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산자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여호와 닛시’의 하나님, ‘여호와 샬롬’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삭과 함께 하신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야곱과 함께 하신 하나님은 산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산자의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 부활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교회는 산자의 하나님을 체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죽은 자의 하나님을 말해서는 안 됩니다. 전에 은혜 받았던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은혜와 진리를 주시는 나의 하나님 산자의 하나님을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산자의 하나님을 믿는 것이지 죽은 자의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어린아이와 같이 100% 신뢰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선포해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에서 흐르고 있는 맥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시고 그것을 성취하신다는 언약의 말씀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광야에 있으면서 아무것도 없을 때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하나님께서 공급하여 주시는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보호와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가나안땅에 들어가면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풍요롭게 주실 때도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실 은혜를 받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3. 살아있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없어도 믿음이 필요하고 많이 있어도 우리에게 믿음이 필요합니다. 어떤 믿음이 필요한가요?

이사야 45장 6절에 <해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가 하나님인줄을 알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으로 하나님을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에서 일하신 것이 아니라 지금도 일하시고 앞으로도 일하신다는 것을 선포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누가 더 크냐 누가 많이 가졌는가를 가지고 싸우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노예가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마치 겨자씨만한 하다고 했습니다. 겨자씨 작지만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작지만 크게 자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를 바라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바라보면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상품으로 만들지 않고 작품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나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걸작으로 만들었습니다. 걸작은 다른 상품과 비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사명으로 주님만 바라보면 됩니다. 그래야 삽니다. 담대하게 이끌고 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으로 나가자, 살아계신 하나님을 나타내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원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갈급한 문제를 해결 주어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선포하라. 다른 사람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도해야 합니다.

“산자의 하나님을 기대하라” 예수님을 초청합니다. 크게 초청합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다>
<하나님은 죽은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우리는 산자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아멘!

글ㅣ이충섭 목사(승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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