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진실, 내 안의 바리새인
톰 허베스톨/이경미 | 홍성사 | 336쪽 | 13,000원

기독교인이라면 가장 닮고 싶지 않은 성경의 등장인물 중 한 부류가 바로 ‘바리새인’일 것이다. 이들은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는’ 경건생활을 했지만, 사랑의 예수님께서는 이례적으로 그들에게 ‘회칠한 무덤’,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독설을 서슴지 않으셨다. 성경 속 바리새인들은 ‘위선자의 대명사’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시킨 ‘장본인’이기 때문에,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로 여기고 외면하기 일쑤다.

<불편한 진실, 내 안의 바리새인(홍성사)>은 이 ‘바리새인’에 대한 책이다. 바리새인들을 구제불능 쯤으로 여기며 거리를 둔 결과, 성도들이 이들에 대해 깊이 성찰하지 못하고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것. 그러나 성경은 바리새인을 통해 우리의 참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바리새인을 제대로 바라봐야 우리의 모순을 깨닫는 은총을 누릴 수 있다는 게 책의 요지다.

저자인 톰 허베스톨(Tom Hovestol) 목사는 20대 아프리카 선교사 시절 “하나님은 왜 저토록 가치 없는 인간을 위해 쓸데없이 많은 성경 지면을 할애하셨을까?” 라는 의문에 부닥친다. “왜 복음서 한복판에 이런 불한당 같은 자들이 기록되었는가” 하는 질문은 20년 넘게 그의 주위에 맴돌았고, ‘모태 신앙’이었던 그의 인생과 사역을 바꿨다고 고백한다.

바리새인은 교리에 정통하고 성경에 박식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신앙대로 살려고 했다. 의로운 삶을 추구했으며, 어떤 종교적인 사람보다 더욱 종교적으로 평가받았다. 예수님조차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셨을 정도로 당시 바리새인은 ‘의로움의 아이콘’이었다. 그들은 당시의 썩은 종교에 항의했고 인본주의에 저항했으며, 바른 교리와 성경 해석을 추구했다. 그들은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사람 요셉으로 대표되는 ‘선한 사람들’이었고, 사도 바울도 원래 가장 높은 계급의 바리새인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바리새파는 구약과 신약 사이 중간기에 처음 출현했고, 그 선구자는 ‘율법사’ 에스라였다. 악명높은 안티오쿠스 4세(에피파네스, 재위 B.C. 175-164)는 모든 정통 유대교 신앙을 샅샅이 제거하려 했고, 그보다 200여년 전 알렉산더 대왕이 전파했던 인본주의에까지 반대하는 바리새파의 정체성은 뚜렷해졌다. 바리새파는 유대주의의 종교적 진실성에 힘입어 일어난 마카비운동의 애국 이데올로기를 이어받았고, 당대 라이벌이었던 사두개파와 유대주의의 양대 산맥을 이뤘다.

저자는 “바리새인은 초대교회를 비롯한 오늘날 교회 활동가나 보수 기독교인들과 우리 생각보다 훨씬 닮았다”며 “무엇보다 그들은 우리의 종교적 자화상을 그대로 비춰주는, 성경이 제공하는 최고의 거울”이라고 지적한다. 그들은 ‘지나치게 의로운 사람들’이었지만, 이러한 기본적인 선의와 경건이 예수님과 부딪쳤고, 예수님이 그들을 비난한 원인이 됐다.

책에서는 화려한 기독교적 배경이 있어도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4장), 의롭게 살려다 자기 의에 빠지며(5장), 바른 교리를 고수하지만 사랑이 없고(6장), 공적 모습과 사적 모습이 다르며(7장), 성경보다 전통이 사역에 더 영향을 미치고(8장), 복음을 지킨다면서 자유를 싫어하며(9장), 세상과 구별을 강조하지만 예수님은 닮지 못하고(10장), 영적으로 건강하다지만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는(11장) 등 바리새인을 닮은 우리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조명한다.

지금 우리들의 언어로 표현한다면 잘난 척 하고, 자신의 성경 해석이 맞다고 우기며,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툭하면 성경 구절을 들이대며, 교회를 자기 입맛대로 끌고가려 하고, 자기 의(義)로 충만하며, 그러면서도 윤리적으로 흠잡힐 데는 없는 ‘얄미운 사람’들이다. 우리 교회에 꼭 한두 명쯤 있을 법한 이들이다.

우리 속에 이같은 바리새주의적 모습이 있지만, 아직 희망은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바리새주의에 맞설 설득력을 가진 대답, 바리새주의를 해독할 방법이 빌립보서 3장에 분명하도고 강렬하게 제시돼 있다는 것. 빌립보서의 화자(話者) 바울은 본문에서 자신이 8일만에 할례를 받았고 태어날 때부터 순수한 혈통의 히브리 사람이었으며, 명망높은 베냐민 지파에다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라고 전제했다. 심지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그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다.

하지만 이러한 종교적인 것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바리새주의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거짓 종교를 경계해야 하는데, 바울은 이와 관련해 ‘개들과 행악하는 자들, 거짓 할례를 삼가야 한다’고 했다. 율법이 아닌, 율법주의를 단호해 경계하라는 경고다. 또 앞서 자신이 자랑했던 그 ‘육체’를 신뢰하지 말고, 영혼을 장기적으로 관망하면서 거저 주신 은혜를 통한 자신의 ‘영적 부요함’을 발견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열쇠는 ‘예수님과의 관계를 더 사모하는 것’이다. 바울이 추구했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즉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나누고 고난과 죽음을 경험해야 한다. 하지만 율법주의를 경계하는 것만큼 지나친 자유방임, 율법 무용론에 빠져서도 안 된다. 그리고 예수님과의 친밀감을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이러한 추구는 결혼과 같아서, 천국 가는 그날까지 결코 완성할 수 없는 일생의 과제이다. 우리는 금메달을 위해 달리는 선수처럼 친밀감을 추구해야 한다. 미래에 다가올 영원한 보금자리를 갈망하면서 신실한 순례자처럼 이 세상을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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