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병희 목사
▲한국교회연합 대표회장 양병희 목사.

Ⅰ. 들어가는 말

대한민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다. 반만년 유구한 역사를 공유하는 하나의 민족임에도 남과 북으로 나뉘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는 현실은 생각할수록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분단은 극한의 대립으로 국력을 소모하고 민족의 이질성을 고착시키는 심각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우리 앞에 놓여있는 현실적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키고 평화와 통일의 길을 주도적으로 열어가는 것은 우리시대의 책무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통일문제는 사회적 관심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있고, 거친 이념 논쟁의 대상으로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과 같이 추상적이고 구호뿐인 거대담론이 중심에 있고 실질적인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남북 화해와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얼마나 구체적으로 노력하느냐가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한국교회가 남북 화해와 평화·통일의 시대를 적극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홍정길 목사도 "통일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통일이 어서 오게 해 달라고 기도는 하면서 실제 통일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준비하지 않는다. 교회가 북한을 너무 모르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바 있다.

Ⅱ. 독일통일과 교회의 역할

지난 3일은 독일통일이 25주년 되는 날이었다. 1989년 11월 9일 독일 분단의 상징 베를린 장벽이 갑작스럽게 무너지면서 독일통일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정치·외교·경제 등 여러 가지 분야에서 어려움이 상존했지만 1990년 10월 3일 독일은 마침내 통일을 이루었다. 평화적인 통일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동·서독의 교회가 보여준 모습은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

동독교회는 사회주의 동독사회에서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민주주의를 실행하는 유일한 공간이었고, 서독교회도 하나님 아래 하나의 교회라는 믿음을 가지고 동독교회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독일교회는 민간분야에서 동·서독 간의 가교역할도 감당했다. 서독의 각 교회는 동독의 각 교회와 자매결연을 했고, 화해와 협력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도움이 필요한 형제는 철저히 도왔다. 이는 정치적 의도를 가진 작업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 사랑의 실천을 위한 순수한 작업이었다. 정치적 의도를 배제한 동·서독교회의 교류와 협력은 양쪽 정부의 개입과 금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냉전으로 동독과 서독 체제의 이데올로기 때문에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이 이질화 되었지만 교회만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교감하며 통일을 준비했다.

한반도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북한은 남한과 언어만 같을 뿐이지 문화와 생활습관, 세계관과 종교관까지 우리와 전혀 다르다. 한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선뜻 다가 설수 없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 속으로 들어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남북화해를 위한 교류·협력과 궁극적으로 한반도 통일에 한국교회가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적절한 과제를 설정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Ⅲ. 성경적 관점에서 본 남북 화해와 통일을 위한 접근법

남과 북은 교류를 거의 단절한 상태로 70여년을 보내왔다. 사회·문화적 이질화 현상이 심화되었고 '마음의 장벽'이 만들어져 상호 접근을 어렵게 하고 있는 현실이다. 때문에 남북 화해와 평화를 위한 접근 방법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반도의 평화와 북한 선교를 위한 접근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해 본다.

1. 역지사지이다.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서 제도적으로 하나님은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북한의 체제를 고려하지 않으면 북한을 이해할 수 없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남한과 다른 북한의 특수한 상황을 인식하고 북한 선교도 준비해야 한다. 우리입장에서만 북한에 접근한다면 선교는커녕 접근조차 할 수 없다.

2. 정치적 접근을 지양해야 한다.

정치적인 이해득실을 떠나 진정한 통일을 위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 각 분야에서 역사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북한 선교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으로 이루어질 때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보수와 진보로 구분되는 정치적인 접근을 지양해야 한다. 남북관계의 현상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진보정권에서는 교류와 협력이 활성화 되다가, 보수정권으로 바뀌면 교류가 중단되는 현실을 직시할 수 있다. 이념적 관점을 넘어 통일시대를 바라보는 역사적 관점이 필요하다.

3. 통일은 서둘러서도 안 되고 포기해서도 안 된다.

통일을 위해서는 민족이 동질성을 회복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북한이 쉽게 무너질 것이라는 기대보다 지속적이고 점진적인 교류를 확대해 나가면서 상호 간에 공감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4. 사람의 통일이 우선이다.

부담스러워도 야곱과 에서가 만나야 해결되듯이 자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을 방문하면서 자주 만날수록 북측의 관계자도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가 북한에 당장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겠다는 것보다 의약품이나 빵공장, 국수공장같이 북한 주민의 피부에 와 닿는 사회봉사의 장을 넓히는 것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본다.

5. 빠른 통일이 아니라 바른 통일이다.

속도 보다 방향이다. 빠른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방향이 잘못되면 더 큰 불행이 올수도 있다. 문화적인 충격이나, 빈부격차에 의한 상대적인 소외감이라든지, 결핵이나 전염병의 대비라든지 단기간에 목표를 성취하려는 빠른 통일보다 남북의 올바른 인식을 공유할 수 있는 바른 통일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Ⅳ. 한반도 평화와 통일시대를 위한 목회전략

북한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은 치열한 영적전쟁(spiritual warfare)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때문에 전략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준비하는 일은 실제 일을 진행하는 것보다 몇 십 배 희생과 시간이 필요하다. '양병십년 용병일일'이란 말이 있다. 하루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10년을 준비한다는 말이다. 하나님도 준비된 자를 쓰시지 의욕만 가진 자를 사용하지 않는다. 한국교회는 적어도 다음의 4가지를 준비해야 한다.

1. 탈북자들을 통일 역군으로 돕는 일이다

우리 사회에는 약 28,000명의 탈북자들이 있다. 이들도 포용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2,400만 북한주민을 품을 수 있겠는가? 한국의 교회는 이들부터 품어야 한다. 남한과 북한의 현실을 모두 경험하고 있는 탈북자들을 한국교회가 한 사람씩 결연을 맺고, 정착을 도울 수 있다면 이들은 통일과 북한선교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이 될 것이다. 현재 우리교회서 세례 받은 탈북자가 620여명이나 된다. 성도들은 그들을 가정에 초대해 식사와 사랑을 나눈다. 직장도 알선해주고 밑반찬도 챙겨준다. 그들의 작은 돈을 교회에서 관리해 주며 은행보다 몇 배 높은 이자를 준다. 자본주의 사회를 경험시키고 적응을 돕기 위해서다. 또한 이들을 위한 의료 법률 정착을 위한 상담도 전문가를 통해서 돕고 있다. 갑자기 다가올지도 모를 통일시대에 이들은 이미 자유민주주의를 경험한 선배로서 통일의 충격을 줄일 수 있는 큰 자원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2. NGO를 통한 남북교류 활성화이다

북한을 지원하는 NGO의 70%를 교회가 감당하고 있다. 북한은 그동안 인도적 대북지원의 창구로 종교기관을 자주 활용해왔다. 종교기관을 통한 인도적 대북지원은 상대적으로 정치적인 영향을 덜 받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것을 지원하여 문화적인 갈등을 완화 하는 사업, 특히 북한 사회에 기독교에 대한 호의적인 인식을 심어 주는 사업은 기독교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씨앗이 될 것이다. 통일 후에도 인도적 지원은 NGO를 통해 남북교회들이 주도하게 될 것이다.

3. 통일헌금을 준비하는 일이다.

점진적인 통일을 원하지만 우리의 소망과 달리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통일이 다가온다면 경제·사회적으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정부차원과는 별도로 교회차원의 통일헌금을 준비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한국교회는 통일을 기도하고 말하면서 실제로 큰 노력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 윤영관 한반도 평화연구원장(전 외교통상부장관)은 "기독교의 사랑을 주도적으로 실천한 서독교회의 롤 모델이 있음에도 한국교회가 제대로 배우지 않고 있다"고 했다.

매월 첫날 우리교회는 전교인이 금식을 한다. 그리고 그날 10년 전부터 통일헌금으로 준비하고 있다. 또한 북한선교헌금을 하고 있다. 이러한 실천으로 성도들의 인식 속에 통일을 준비하는 마음이 각인되었다고 생각한다.

4. 통일기도회를 준비하는 일이다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것은 기도였다. 실제로 1981년 동독 라이프치히에서 시작된 월요기도모임은 9년간 이어지면서 결국 베를린 장벽을 허물고 통일을 이루는 계기가 됐다. 처음 7명의 성도들에 의해 시작되었으나, 이후 기도회에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직전인 1989년 11월 4일에는 무려 50만 명이 모여 하나 된 독일을 요구했고 이듬해 독일통일은 이루어졌다.

지금 장신대에서는 매주 월요일 5시 베를린 장벽을 무너트린 독일교회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통일을 위한 기도를 하고 있고 명성교회서는 오래전부터 3,000여명 이상모여 기도회를 하고 있다. 한국교회연합은 매일 정오 12시에 알람을 맞춰놓고 100만인 기도운동을 실시하고 있다. 남북통일도 하나님이 휴전선을 무너트려 주셔야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다. 통일준비를 위해 해야 할 것 중에 중요한 것이 기도하는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Ⅴ. 결 론

이제는 정말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한반도의 통일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실질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역량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다. 이상희 전략문제연구소장(전 국방장관)은 "기다리는 통일이 아닌 만들어 가는 통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갑자기 다가올지 모를 통일을 한국교회는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통일시대를 이끌어 가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작은 것부터 실천해야 한다.

한국교회에서 신학생이 많이 배출되는 현상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고 본다.

통일 신학을 정립하고 통일시대를 감당하는 일꾼으로 하나님께서 쓰시기 위한 준비라고 생각한다. 남북관계에서 기독교의 사랑과 지원은 민족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통일시대를 위한 준비가 될 것이다. 또한, 남한과 북한의 현실을 모두 경험하고 있는 탈북자들을 한국교회가 한 사람씩 결연을 맺고, 정착을 도울 수 있다면 이들은 통일과 북한선교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이 될 것이다. 평화로운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남북관계의 '동반자', '조정자', '협력자'의 역할을 한국교회가 감당해야 할 것이다.

'통일은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기다리고 있을 것이 아니라 준비해야 할 때이다. 북한 주민들은 종교적으로 마치 백지와 같아서 통일이 된 뒤에는 누가 먼저 복음을 전하느냐에 따라 종교가 달라질 것이다. 올림픽에서 100m달리기 선수가 단 몇 초를 뛰기 위해서 4년이라는 시간을 피눈물 나게 준비하듯이, 우리도 준비해야 한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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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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