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달익 목사
서문교회 손달익 목사 

지난 2000년을 전후해서 북한의 식량난이 극심하여 소위 ‘고난의 행군’을 그들이 하고 있던 시절 여러 차례 방북하여 지원행렬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여러 측면에서 찬반양론이 있는 시절의 일들이었지만 그래도 그 시절엔 희망을 꿈꿀 수 있었다. ‘이렇게 잘 진행하다 보면 대화가 더 깊어지고 통일도 앞당길 수 있겠다’는 희망이었다. 그로부터 십 수 년이 지났다. 그러나 광복 70년, 분단 70년의 역사적인 해를 맞이하고 보내면서 우리는 이 역사적인 기회의 시기에 더 분명해진 희망 대신 더 깊은 좌절을 맛보게 된다. 그리고 ‘이러다가 자칫하면 전쟁이라도 생기겠구나’라거나 또는 ‘주변 강대국들의 다툼으로 우리에게 무슨 불똥이 또 튀지나 않을까?’라는 걱정들을 모든 국민들이 하고 있다. 반복하거나 더 설명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 어이없는 현실들에 대하여 공동의 인식을 가지고 있다. 정확하게 무슨 일이 전개되는지는 몰라도 뭔가 심상찮은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모두가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마냥 포기하듯 바라보거나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힐 수는 없다. 우리는 희망을 말하고 그 희망이 가능함을 역설하여 주변의 공감과 지지를 얻어내야 하는 책임을 역사로부터 본질로 위임받은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바벨론 포로 말기 선지자들의 한결 같은 외침은 ‘희망’이었다. ‘포로된 자들이 돌아올 터이니 광야의 길을 예비하라’거나 ‘이제 하나님께서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이 흐르게 하신다’라거나 ‘사막에 꽃이 피고 무성하게 되는 때가 온다’라는 등 가당치 않은 희망을 말함이 그 핵심 내용이었다. 당대의 선지자들이 시대의 정황과 맞지 않고 이런 역사를 만들어 낼 능력도 의지도 없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기 때문이었다. 즉 하나님께서 도우시기로 말씀하시고 약속하시니 이 희망의 때가 가능함을 역설하는 것이다. 당시의 포로 백성들에게는 절망감도 많았고 원망과 분노도 많았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하나님이 바벨론의 마르둑보다 못한 존재여서 우리를 돕지 못하시는가?’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지은 죄보다 하나님께서 내리신 징벌이 너무 가혹하다’고도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은 침묵 중에 계시며 우리를 잊어버렸거나 사랑하시기를 멈추셨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선지자들은 ‘그렇지 않다. 이제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라고 말하며 희망을 노래하고 주장했었다. 우리가 희망을 말할 수 있음도 바로 이 점에 근거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 그가 일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신다’라는 이 진리에 대한 믿음이 우리를 희망의 사람이 되게 하고 희망의 주창자들이 되게 하는 것이다.

희망을 말하는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의 또 다른 과제이다. 희망은 희망하는 것만으로 현실이 되는 법이 없다. 하나님께서도 인류 구원의 희망을 성취하시려 독생자의 죽음이라는 참혹한 과정을 스스로 감당하셔야만 했다. 모든 희망이 다 그러하다. 오래 전부터 북한을 생각하면서 기도하던 제목이 있었다. 북한의 복음화, 북한의 민주화, 북한 경제의 회복 그리고 남북 사이의 평화와 공존체제가 마련되는 것 등이었다. 기도는 고백이면서 희망사항이다. 이 희망을 가진 사람은 희망을 이루기 위한 혹독한 희생을 감수해야만 한다.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 어떻게 그들의 자유와 인권을 신장시킬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세계 최악의 경제 사정을 회복할 수 있을까? 어떻게 평화는 가능할까?’라고 늘 생각하고 옳은 길이라 생각되는 일의 실천을 위해 하나님께 순종해야한다. 북한 동포들의 굶주림을 위해 기도하고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한국교회가 냉전의 논리에 편승하여 분단고착화와 대결 구도의 이론적 선봉장을 자처하거나 스스로를 분단의 전위대로 여기는 한 우리는 희망을 말할 자격을 상실한다.

비난과 절망보다 희망과 사랑을 말해야한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니 희망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남은 과제는 희망하는 대로 실천하는 것뿐이다. 이 역사적인 한 해를 허송하지 않고 가장 역사적인 시기로 만들 수 있도록 희망을 말하고 희망하는 것을 실천하자. 그래야 내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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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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