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순복음김포교회 김삼환 목사는 “앞으로의 성령운동은 반지성적 성향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교회론적 차원에서 성령운동이 일어날 때 제2의 사도행전적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며 “이를 위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 오유진 기자
“영성은 지성에 반(反)하지 않는다.”

지난달 세계성령중앙협의회 제24대 대표회장에 취임한 김삼환 목사(여의도순복음김포교회·55)는 “영성은 ‘초월적 지성’”이라며 “한국교회의 성령운동은 앞으로 지성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령운동은 대체로 지성과 신학이 필요 없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회는 점차 지성화됐는데, 교회는 이런 점을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에 침체가 온 것입니다. 성령운동이 일반 국민들에게 반지성적·반상식적으로 비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이제는 이런 점들을 개선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김삼환 목사는 유려하면서 차분한 어조로 성령운동의 미래를 전망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국제신학원 신학연구소장을 역임하고 프랑스 소르본대학교에서 종교역사학을 공부한 그는, “이제 한국교회는 치유나 은사같이 보이는 세계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적 세계, 즉 믿음과 꿈에 대한 것들을 말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지난 대표회장 취임식에서 “성령운동에 있어서 한국교회가 형이상학적 빈곤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의미입니까?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이 창세기에 나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 이 부분이 뭐냐 하면 ‘성령이 아직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역사하신다’는 거죠. 이것은 어떤 형태가 갖춰진 것이 아닙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물리학이 있고 형이상학이 있지 않습니까? 형이상학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고. 물리학은 보이는 것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형이상학적 차원이 무엇인가? 희망·꿈·믿음 이런 게 형이상학적 차원인데, 한국교회가 이 점을 주목해야 할 때가 됐습니다.

(지금까지) 은사나 권력, 지위 같은 너무 보이는 것에 신경을 쓰다 보니 성령운동의 근원이 빈곤하게 된 것입니다. 성령운동은 밑바닥에서 샘물이 나오는 것처럼 일어나야 합니다. 지금까지 이런 근본적인 것들을 무시하고, 한국교회는 돈이나 권력, 은사 같은 외형적인 것에 신경을 써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처럼 뒷심이 부족하게 된 것이지요.”

-뒷심이 부족하다는 것에 대해 좀더 설명해주신다면요?

“기도를 할 때 너무 결과를 보려고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죠. 기도의 응답에 대한 원인이 있을 거 아닙니까? 예를 들어서 창세기의 야곱이 거부가 됐습니다. 왜 그가 축복을 받았는지 원인을 생각해 봐야 하는데, 이런 원인을 무시하고 결과를 내려고 하니까 피곤하기만 하고 잘 안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의 관심이 축복, 결과에만 쏠려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처럼 보이지 않는 것에 좀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죠. 그런 믿음을 먼저 갖게 될 때 온갖 좋은 것들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했죠.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이 말을 되새겨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난날 한국교회의 성령운동은 어땠습니까? 뒤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대체로 지금까지의 성령운동은 성공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 이상 성공할 수 없을 만큼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로부터 인정도 받았고요.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성령운동이 문제라기보다 성령운동을 배태시키는 영성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성령운동을 하시는 분들을 보면 대체로 반지성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식이 필요 없다는 것이죠. 영성이 반지성적 성향을 띠게 되면 반상식·반윤리·반도덕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사회는 상식적인데, 이 성령운동이 ‘반상식’으로 비쳐서 사회와 점차 멀어지고 대립하는 것 아닙니까? 사회에서 볼 때는 교회를 오해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성령운동의 근본적인 재정비가 필요하고, 새롭게 할 시점입니다.”

-성령운동에 있어서 반지성적 성향이 변해야 한다는 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신다면.

“지성과 영성의 관계는 절대 반대가 아닙니다. 영성은 지성보다 수준이 높은 ‘초월적 지성’ 입니다. 지성을 인정하면서 지성을 넘어선 초월적 지성의 세계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죠. 하지만 지금까지 성령운동은 지성을 무시한 채 영성의 세계로만 들어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이제 전환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교회사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사적 전통을 볼 때 잘못된 영성을 구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정통신학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영성을 잘못 이야기하게 되면 이단적인 요소가 들어올 수 있어요. 지금도 ‘직통 계시’ 같은 여러 신비주의적인 요소들이 많이 보이지 않습니까? 이런 폐해를 가려내기 위해서는 말씀에 기초한 영성, 교회사적인 신학에 기반을 둔 영성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성령운동이 지성을 뛰어 넘는 초월적 지성으로서의 영성을 추구할 때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까?

“영성은 지성보다 못한 게 절대 아닙니다. 세상의 지식보다 더 뛰어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죠. 이 말씀을 비기독교인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죠.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지식보다 높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고, ‘거부해선 안 되겠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해야 합니다. 사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성령의 역사는 더 확신에 차서 나타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그리고 한국교회와 교단, 연합기관들도 좀더 형이상학적 깊이를 추구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눈에 보이는 권력이나 지위에 눈을 두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의 형이상학적 차원에 눈을 뒀으면 하는 거죠.”

-성령운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기독교인들의 개인적인 신앙도 중요하지만 교회가 중요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운동의 시작과 교회의 출발이 같습니다. 성령운동과 교회는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성령운동은 ‘교회론’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 차원에서 성화도 이야기하고 은사도 이야기하지만 교회에 대한 언급은 별로 없습니다.

교회론에 약하다 보니 교인들은 ‘이 교회가 마음에 안 들면 다른 교회가면 된다’는 가벼운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굳건한 반석 위에 세우고 성령운동을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요즘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왜 교회론을 강화해야 하느냐면 성령운동이 교회적 차원에서 일어날 때 큰 부흥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죠. 1974년 엑스플로대회를 통해 좋은 결과를 낸 적이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요즘엔 성령운동이 개인적 차원에서만 이뤄지고 있어요. 대형집회를 한다고 하지만 그건 일부 대형 교회들끼리 연합집회죠.

성령운동이 교회적 차원에서 다시 일어날 때 사도행전적 역사도 재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한국교회도 뭐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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