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의 말씀 : 요 9:35-41
35 예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이르시되 네가 인자를 믿느냐
36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38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40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2. 시작 기도
아버지! 이 새벽, 말씀을 읽어가니 나의 죄악만이 밝히 드러납니다.
오, 저는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는 자이옵니다.
저는 높은 데 마음을 두고 낮은데 처하지 않으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는 자이옵니다.
저는 우는 자들과 함께 울지 않으며 나와 동일한 고난 받는 자를 돌보지 아니하는 자입니다.
어느 것 하나 온전하지 않은 자, 티끌과 재를 무릅쓰고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죄책감으로 눌리는 영혼, 더럽혀진 영혼에 보혈의 은총을 내려주시기만을 구합니다.
하여,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않게 하소서.
겸비하여 낮은 데 마음을 두는 자 되게 하소서.
우는 자들과 함께 울며 동일한 고난당하는 자에게 손대접하기를 힘쓰게 하소서.
주여, 말씀 앞에 드러난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자비를 베푸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본문 주해
예수께서 안식일에 날 때부터 맹인된 자의 눈을 뜨게 하셨다.
예수는 눈뜬 자를 떠나갔고 그는 유대인들에게 심문을 받는다.
그의 부모까지도 출교당하는 것이 두려워 아들이 눈뜬 사실을 직고하지 않는다.
그러나 눈뜬 자는 거대한 유대 종교체제에 맞서 주께서 그에게 행하신 일을 직고한다.
그는 유대인들의 회유와 협박에 굴복하지 않고, 예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33절).

그 결과 그는 유대인들로부터 정죄를 당하고 그들로부터 쫓겨났다(34절).
예수께서 그가 쫓겨났다는 말을 들으시고 그를 만나 그에게 물으셨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35절).
눈뜬 자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제가 믿고자 합니다"(36절).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이다"(37절).
그러자 그는 "주님, 제가 믿습니다"라고 하면서 예수께 엎드렸다(38절).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심판하기 위한 것이다. 곧 보지 못하는 사람은 보게 하시고 보는 사람은 맹인 되게 하려는 것이다"(39절).
예수와 함께 있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말하였다.
"우리도 맹인이란 말이오?"(40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맹인이었다면 도리어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본다고 말하니 너희의 죄가 그대로 남아있다"(41절).

예수의 맹인 치유는 하나님이 그에게 하시는 일을 나타내신 표적이다(3절).
이는 아버지가 아들을 보내신 일로써 아들을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는 것을 표상한다(4절, 6:29).
곧 아들은 날 때부터 영적으로 만인된 모든 사람에게 생명의 빛이 되시며, 그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신다.
그러나 그를 믿지 아니하는 자는 어둠에 속한 자로 판명난다.
이렇게 해서 맹인 치유 표적은 눈뜬 자에 대한 구원과 유대인들에 대한 심판으로 귀결된다.

눈뜬 자는 유대 종교체제에 굴복하지 않고 그들에게 쫓겨난다.
빛이 비추어지니 빛의 자녀와 어둠의 자녀가 갈라진다.
하지만 눈뜬 자는 그에게 일어난 일을 다 알지 못했고 아직 예수를 믿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그가 '쫓겨났다'는 말을 들으시고, 곧 그가 어둠의 자녀와 구별된 것을 아시고 그를 만나신다.

그리고 그에게 물으셨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또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느냐?).
이 말은 '너는 너를 쫓아내었던 자들과 달리 나(인자)를 믿느냐?'라는 뜻이다.
여기서 인자는 '하늘로부터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의미한다(3:13).
이에 대해서는 눈뜬 자가 이미 입으로 시인한 바이다(33절).

그러자 눈뜬 자는 '주님, 그가 누구인가? 내가 믿고자 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여기서 '그가 누구인가?'를 묻는 것은 '사람들 중에 인자가 누구인가?'라는 뜻으로 인자된 자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한 질문이다.
왜냐하면 그는 인자를 믿고 싶기 때문이다.

이에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신다.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지금 말하는 사람이 바로 그이다'
눈뜬 자는 '이미' 인자를 보았다. 그리고 지금도 보고 있다.
'이미 보았다'는 것은 하늘로부터 오신 인자, 영원에 속한 하나님의 아들을 과거로부터 보았다는 뜻이다.
곧 그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초월한 영원의 시간에서, 또는 지상과 천상을 아우르는 영원의 시간에서 인자를 보았음을 뜻한다(8:56;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으니라).

눈뜬 자는 육신의 눈만 뜬 것이 아니라, 영적인 눈이 떠져서 예수가 인자요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게 되었다.
그를 믿는 자마다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영원의 시간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이제 예수께서는 눈뜬 자의 표적에 대한 의미를 밝히신다(39절).
그가 오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함이다.
그 심판은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는 것이요 보는 자는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가 심판하러 오셨다는 말씀은 표면적으로 '심판하러 오지 않았다'(3:17)는 말씀과 모순된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씀은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 심판을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3:17-18).

눈뜬 자에게 있어 구원은 보지 못하는 자를 보게 하는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구원은 맹인의 눈을 뜨는 사건으로 예표되었다.
그리고 예수께서 그 말씀을 성취하셨다(눅 4:18; 마 11:5).
"그 날에 못 듣는 사람이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에서 맹인의 눈이 볼 것이며"(사 29:18).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사 35:5).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사 42:7).
"너희 못 듣는 자들아 들으라 너희 맹인들아 밝히 보라"(사 42:18).
"여호와께서 맹인들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들을 사랑하시며"(시 146: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눅 4:18).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눅 11:5).

반면 유대인들에게 있어 심판은 보는 자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 또한 구약성경에 예표되어 있다.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사 6:10).
"맹인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내가 보내는 내 사자 같이 못 듣는 자겠느냐 누가 내게 충성된 자 같이 맹인이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종 같이 맹인이겠느냐"(사 42:19).

신체적으로 보지 못하는 자가 맹인이 되었다거나 보는 자가 맹인이 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보지 못한 자가 보았고 영적으로 보았다는 자가 보지 못한 자가 된 것을 말한다.
눈뜬 자는 영적으로 보지 못하는 자였으나 이제 보는 자가 되었다.
그는 눈이 떠졌으나 사실예수를, 진리를 다 알지 못하였다.
예수가 죄인인지 아닌지 잘 몰랐고(25절), 인자가 앞에 서 있으나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36절).
그러나 그는 이제 보고 믿게 되었다.

반면 유대인들은 본다고 하는 자들이나 보지 못하게 되었다.
이들은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를 거부함으로써 결국 진리에 대해 맹인된 것이다.
이들은 확실히 영적으로 다 안다고 선언하였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다(16절).
그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정하였다(22절).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우리는 아노라(24절).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안다(29절).
그래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지 않을 것이다(34절).

이들이 누구인가? 이들은 당시 신앙 공동체 지도자들이요, 그 구성원들이다.
성경을 잘 아는 자들이요, 율법에 정통한 자들이요, 교육받은 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보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참 빛이 비추자 그 빛을 거부한다.
이는 지금 그들 자신이 향유하고 있는 빛이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고 심판을 면치 못하며 사망에 이른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 중에서 으뜸가는 자였다(갈 1:13-14).
그는 하나님에 대하여 모든 것을 안다고 확신하는 '보는 자'였다.
그러나 그는 다메섹에서 보지 못하는 자가 되고 말았다.
본다고 확신하던 자가 보지 못하는 자로 심판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다시 보게 되었다. 대체 무엇을 다시 보았는가?

그는 창세전부터 약속된 아들의 생명을 보았고 그것이 성경의 진리임을 보았다.
그는 그것을 나의 복음이라고 말한다.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롬 16:25).

바울은 여전히 본다고 하는 동족들의 구원을 위해 저주의 맹세를 하기까지 힘쓰고 있다(롬 9:1-2).
그들 유대인들은 양자됨, 영광, 언약들, 율법, 예배, 약속을 가지고 있었고 그리스도를 조상으로 받았다(롬 9:4-5).
이것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영적 존재물들로써 그들이 받은 특별한 은혜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 빛에 머문 채 만물 위에서 오신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저주를 받을지언정 그들이 그 그리스도를 보기를 심히 원한다.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롬 9:5).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이 말씀은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께 세세에 찬양이 있으리로다"로도 번역된다(난하주).
바울이 본 것은 만물 위에서 오신 그리스도였고 그가 믿는 하나님은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이셨다.
그러나 동족 유대인들은 숱한 영적 존재물을 향유한 채 만물 위에 계신 참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
그 하나님은 영생을 얻은 자가 보는 영원의 하나님이시다.

4. 나의 묵상
나는 유대인들처럼 본다고 확신하는 자였다.
신앙생활에 열심이 특심이었고 유명한 목사의 설교를 즐겨 들었다.
이후 신대원을 나오고, 성경을 가르치면서 진리를 다 안다고 확신하였다.
내가 본다고 확신하는 것으로 전도하면서 영혼들을 교회로 인도하기도 하였다.

그와 더불어 다양한 영적 존재물을 향유하였다.
방언, 방언통변, 병 고침, 말씀의 은사를 받았고 숱한 영적 체험을 하였다.
성경공부 교재를 만들어 가르치면서 본다고 하는 확신은 견고하였다.
게다가 십자가 복음 기관에서도 특출하게 인정받았으니 복음까지 다 아는 자 되었다.
누구도 영적 지식에 대한 아성을 깨트리지 못하였다.

하지만 나의 신앙은 철저히 만물 안에 갇혀 있었다.
상황해결, 신성한 감정체험, 그리고 삶의 질의 고양이 신앙의 내용이었다.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을 듣도 보지도 못하였다.
믿을수록 현세적이 되어가는 유대인의 전철을 밟았다.
본다고 확신하는 자였으나 소경이었고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였다.

그런 내게 심판이 임하였다.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자,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자로 판명 났다.
나는 진실로 창세전 하나님의 나라, 영원에 대한 소경이었다.
영생을 모르니 아버지와 아들을 알지 못하는 자였다.
그러면서 다 안다고 다 본다고 자고하여 큰 소리를 쳤으니 교만이 하늘을 찔렀다.
철저히 만물 안에 갇힌 신앙, 세속종교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아들의 죽음과 무덤 안에 연합된 자에게 빛이 임하였다.
창세전 영원의 세계가 영으로 보여졌다.
창세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알고 사랑을 알고 그 영광을 보았다.
복종하여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한 아들, 그를 알고 닮기를 사모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도 아는 것과 행하는 것 괴리에서 고민한다.
말씀을 읽는데 제대로 행하는 것이 없다.
나를 위한 인생을 살고자 탐심과 욕망이 되살아난다.
높은 곳에 마음을 두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나 자신을 경멸한다.
마땅히 생각할 이상의 생각을 하며 자학하는 나를 보고 경악한다.
옛 사람이 죽은 줄 알았는데 다시 살아났다.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어 고개를 떨군다.
상한 심령이 되어 주의 자비와 긍휼을 구한다.
나도 용납할 수 없는 나를 끌어안고 엎드린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나의 담대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힘입어 아버지께 나아감에 있다.
주의 인자와 긍휼을 바라며 한 날을 주께 드린다. 내 영혼을 주께 드린다.

5. 묵상 기도
아버지...
본다고 확신하는 자였습니다.
여러 가지 은사, 숱한 체험들, 박식한 성경지식, 많은 기도시간들...
영광, 예배, 언약들, 율법, 약속들... 여러 가지 영적 존재물을 향유했습니다.
그 빛으로 족하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철저히 만물 안에 갇힌 신앙생활이었습니다.
돌아보니 사망으로 향하는 자였습니다.

아버지여...
본다고 하는 자를 심판하시니 이는 당신의 공의입니다.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자,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자 되었습니다.
심판의 자리에서 긍휼을 베푸시고 영생을 주셨나이다.
창세전 약속된 생명을 알고 그로 인해 아버지를 알고 아들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내가 믿나이다. 인자를 믿나이다.

아버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아들을 힘입어 당신께 나아갑니다.
말씀이 비추는 어둠을 대하며 상한 심령이 되나이다.
어느 것 하나 온전한 것이 없는 자, 다만 긍휼을 구합니다.
불쌍히 여기사 아들 안에 감추소서.
내 생명으로 살지 않게 하시고 오직 아들의 생명으로 살게 하소서.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하지 말게 하소서.
아버지께서 보내신 영혼들 앞에서 겸비하여 진리만을 전하게 하소서.
내 영혼을 주께 바치나이다. 오늘 하루, 나를 인도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서형섭 목사는... 한국외대에서 경영학(B.A.)와 연세대 경영대학원 경영학(MBA)를 졸업하고, 서울신대 신학대학원 목회학(M. Div.)을 공부했다. 논문 '말씀묵상을 통한 영적 훈련'(Spriritual Training through Meditiatioin on the Word)으로 풀러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D. Min.) 학위를 받았다.

그는 지난 2000년 반석교회를 개척하고, 치유상담연구원에서 6년간 수학 후 겸임교수를 지내며 동시에 한국제자훈련원에서 8년간 사역총무를 역임했다.

현재 서형섭 목사는 말씀묵상선교회(http://cafe.daum.net/wmmission) 대표로 섬기며 특히 '복음과 생명', '말씀묵상과 기독교 영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저술과 세미나 사역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말씀묵상이란 무엇인가>(갈릴리, 2011년)과 최근 출간된 <복음에서 생명으로>(이레서원, 2013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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