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신학단상'은 평신도들의 신학적 소양 함양(涵養)을 위해 각종 행사 등에서 신학자 및 목회자들의 발제문을 뽑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지난 7일 한국교회사학연구원(원장 이양호 박사) 세미나실에서 개최된 제204회 월례세미나에서 '통일로 향하는 교회의 길'을 주제로 발표한 백석대학교 주도홍 교수의 발제문을 연재합니다. 그 두 번째. <편집자주>

▲주도홍 교수(백석대·기독교통일학회 명예회장·한국개혁신학회 회장)

III. 파트너로서의 교회와 국가

■ 통일론을 새로이 정립하라

만약 한국정부가 땅의 정복으로 인한 법의 통일을 전제로 한다면, 전근대적 통일구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21세기 지구촌 시대에 적합한 통일론인지 조심스럽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물론 북한붕괴를 전제로 하지 않은 평화통일을 추구하고 있음을 통일부가 분명히 밝혔지만, 상대인 북한이 한국정부의 입장을 흡수통일 내지는 북한붕괴를 겨냥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여러 차례 그런 식으로 이해하고 있다면, 한국정부의 통일구상을 원천적으로 새로이 조정하는 열린 자세가 요구된다 할 것이다. 물론 7.4공동선언, 남북기본합의서에서도 평화통일을 위한 서로의 입장을 명확히 천명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양편의 입장이 현재 어떠한지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하겠다. 한 예로, 이념이 달라도 중국과 대만은 이미 실질적 통일을 누리고 있음을 본다. 현재로 250만 대만인이 중국에서 사업도 하고 가정도 이루어 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북한이 중국처럼 개방하여 남북이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북한이 열려야 하겠으며, 한국도 이러한 실질적 통일시대를 바라보며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통일론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이제 20세기 통일그물로는 21세기에 어떤 식으로든지 삐져나오는 물고기들을 점점 잡을 수 없게 될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국경을 뛰어넘어 지구촌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더욱 요구되는 것은 이 글로벌한 시대에 영토의 통일보다는 사람의 통일이라 할 것이다. 사람이 만나고 하나 되면 국경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사실 이미 국경이 무너지는 시대가 왔다. 그 예로 유럽연합(EU)이 그렇다. 물론 그들에게는 국경은 엄연히 존재한다.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유럽에서 국경은 말 그대로 그어놓은 하나의 선일뿐이다. 문제는 유럽연합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관점에서의 평화로운 삶이다. 남북의 경계선도 이렇게 될 날도 멀지 않다 하겠다. 유럽연합에 비해 남북관계는 그야말로 전근대적 분단을 강제하고 있는 점은 판이하다. 그럼에도 미래지향적으로 남북관계를 본다면, 대만과 중국의 양안관계처럼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또는 동독주민이 그러했던 것처럼 북한주민이 주도적으로 한국과의 평화통일을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하겠다.

■ 통일의 다원적 차원을 생각하라

이제 남북통일 과업을 이루는데 있어 국가의 독점이 타당한지를 심각히 고려했으면 한다. 국가 독점적 통일운동은 지난 시대의 유산을 계승하는 일로 변화가 요구된다 하겠다. 분단의 고통이 모든 국민의 것이듯이, 통일도 모든 국민이 함께 이룩해야 일이며, 함께 누려야 국가적 거사이다. 그러기에 남북통일의 문제를 한국정부가 독점하고 그 외 다른 길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태도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통일로 향하는 정치의 길은 여러 길 중 하나의 길일뿐이다. 이제 정부가 남북통일을 위해 열린 자세로 국민과 함께 소통하고 허심탄회하게 대화하여 그 길을 찾아가려는 변화된 자세가 필요하다. 아마도 정부가 남북통일을 주제로 국민적 대화의 장을 기획하여 실천한다면 뜨거운 호응을 얻을 것을 확신한다. 그 자체로 새로운 대한민국에 대한 기대가 충만할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안타까운 것은 심지어 기독교정신에 입각한 인도주의를 실천하는 비정부기구NGO의 업무마저도 현재 한국정부가 막고 있는데, 이러한 모습은 원칙적으로 옳지 않고, 비민주적이다. 어떻게 이런 답답한 현실로 현 정부가 원하는 실질적 협력관계가 남북 간에 이뤄질 수 있겠는가!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분단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정부가 통일과업을 독점하는 일이 타당한지를 적극적으로 재고해야 하겠다. 국가는 분명한 법적인 기준을 갖고 다양한 통일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가 감당해야 할 땅의 통일을 통한 법, 정치, 경제의 통일을 책임지며 하고, 보다 다른 차원의 사람의 통일을 이룩하는데 교회의 역할은 너무도 중요하다. 통일은 다양한 면에서 함께 준비되어야 한다. 만약 정치적으로만 남북관계를 열어가려고 한다면, 오늘의 현실을 뛰어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 점에 있어서 상대인 북한정권의 독점적 통일전략에 지혜로운 대처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재 체제 경쟁에서 확실하게 우위를 점해야 하는 정치보다는 인도주의에 입각한 교회의 순기능은 필히 요구된다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남북통일을 위한 교회의 역할은 한국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활용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독일의 통일을 '조용한 개신교 혁명'으로 일컫고 있음을 볼 때이다.

■ 진영논리를 뛰어 넘으라

"이처럼 세상의 정치를 상대화할 수 있는 힘은, 하나님나라의 시민권을 갖고 있고, 영원한 것을 소망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특권이다. 우리는 어떤 특정 정당이나 정치이념에 사로잡히거나 집착해서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 자리에 설 이유가 없다. (...) 완전한 정의와 사랑의 하나님나라에 속한 우리들은, 보수정권이든 진보정권이든 이 세상의 현실정치에 대해서 항상 사회비판적인 자세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교회가 세상의 평화와 화해의 사도가 될 수 있는 힘이다."

한국정치 수준으로 분단을 극복하여 통일로 나갈 수 있을까? 신학자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Nicholas Wolterstorff는 민주주의는 정치에 관한 자유로운 토론의 장을 제공할 수는 있으나 진영논리에 빠진 자들 사이에서 해결점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물론 월터스토프는 선진화된 미국과 유럽의 민주주의를 보며 이러한 입장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삼류 정치라는 한국정치 수준으로 남북관계에서 남남갈등이 심화된 대한민국에서 국민의 지지율에 신경을 쓰면서 그 길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로 보아도 무리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좌우를 뛰어넘는 바른 종교적 신념에 근거하여 문제를 파악하고 전체성, 온전성 그리고 통합성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남북이 70년 동안 그토록 통일을 원했으나 이렇게까지 분단이 더욱 공고해진 이유는 예측 불가능한 북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나 되지 못한 채 분열을 일삼았던 우리 안의 문제도 이에 못지않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현재 남남갈등이 심화된 한국 상황에서 북한의 인권을 강조하면 보수요, 북한 돕기를 강조하면 진보로 나누어 이해한다. 그런데 이러한 태도는 그야말로 진영논리에 빠진 것이다. 어떻게 인간의 천부적인 권리를 유린하고 박탈하는 경우를 보며 이웃으로서 침묵할 수 있다는 말인가! 왜 굶어 죽어가고 헐벗어 추위에 떨고 있는 동족을 보며 도울 수 있는 우리가 모른 체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두 가지다 있을 순 없는 일이다. 특히 기독교인들로서 이러한 문제로 한 편에 서서 서로를 정죄하고 싸우고 있다면 거대한 죄악임이 분명하다. 그것은 예수님의 사랑의 명령에 분명하게 위배되는 잘못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쩔 수 없이 이념적 성향을 가져야 하는 것이 정치이겠지만, 그래도 진영논리를 뛰어넘어야 바른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하건데 복음은 진영논리를 뛰어넘고 있다. 예수님은 이러한 진영논리를 깨뜨리시고 450년 동안 나누어 있던 사마리아를 품으셨다. 이방인과 유대인을 하나로 묶으셨다. 그렇다면 한국정부는 지혜와 힘을 구하는 자세가 옳다 하겠는데, 곧 교회로부터 빌리려는 태도가 요구된다 하겠다. 물론 이를 위해 교회를 향한 신뢰가 전제되어야 하겠지만, 한국정부의 교회를 향한 신뢰란 원칙적인 신뢰여야 하겠다. 박근혜 정부는 '남북신뢰프로세스'를 내세우고 있는데, 이제까지의 역사를 볼 때 한국정부는 우선적으로 한국교회를 향한 신뢰를 원천적으로 회복할 필요가 있다 하겠다. 이념적 관점에서 볼 때 교회야말로 신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사실 정부에 대한 입장을 달리한다고 해서 이념적인 문제로 몰아갔던 때를 잊지 않았으면 한다. 독일인의 보고에 의하면 분단 독일의 경우 동서 민간교류를 법적으로 규제하지 않았다 한다. 물론 군인이나 공무원이 동독과 접촉하는 일에는 분명한 원칙이 있었을 것은 자명하다.

■ 비대칭적 사랑이 가능하다

마이클 페리Michael Perry는 인간의 존엄성에 근거한 순수한 인간애를 향한 최고의 인식은 종교적 논의에서만 비대칭적 사랑이 가능하다고 본다. 국가 대 국가는 대칭적 사랑을 원칙으로 한다. 현재 남북관계는 5.24조치가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다르게는 남북관계를 5.24조치가 발목잡고 있다. 한국정부가 취한 조치로 어떻게든 남북관계를 가지려는데 일을 가로막고 있으니 오묘하다 할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5.24조치를 풀기 위해서는 5.24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던 그 상황으로 돌아가서 북한의 변화가 선행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정치적이라 하겠다. 그렇지만, 교회는 비대칭적 사랑을 할 수 있는데, 순수한 인도주의에 근거한 사랑은 신앙의 힘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니 원수라도 사랑해야만 하는 것이 교회의 마땅한 태도이다. 이러한 교회의 길은 정치와 법을 초월한 것이다. 사랑은 사람을 감동시켜 변하게 한다. 분명한 것은 남북관계에서도 인지상정이 통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그 어떠한 지식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이라는 말이다. 모범적인 사랑이 감동적으로 제시될 때, 북한은 한국교회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사실 대칭적 윤리를 강조하는 정치에서 인도주의적 사랑이란 한 마디로 단순하지도 않고 어려울 뿐이다. 그러기에 꽉 막힌 남북관계를 풀어헤치기 위해 한국교회의 역할은 절실히 요구된다 할 것이다. 독일통일이 '조용한 개신교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이유는 다름 아닌 서독교교회의 동독을 향한 비대칭적 사랑의 실천이 가져온 통일이었다는 표현이다. 동독을 향한 서독교회의 돕기는 분단 45년 동안 한 번도 중단되지 않았는데, 이는 특별한 공동체 die besondere Gemeinschaft를 형성하고 있었다는 말일 것이다. 국가가 이 특별한 관계를 독자적으로 길을 갈 수 있도록 후원했으며, 그러한 교회의 역할을 신뢰했다는 말이다. 안타깝게도 남북관계는 모 아니면 도라는 점이다. 정치의 길이 막히면 모든 길이 막혀서 남북 간 설치한 특별 전화도 불통이 되고 마는데, 답답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 특사인데, 이제 한국정부는 상설 특사들을 여러 차원에서 가져야 될 것이다.

■ 교회의 통일준비는 사람이다

교회는 남북통일에서 사람을 내세울 수 있어야 한다. 서로 원수 되어 살았던 사람들이 하나 되고, 북한 주민의 삶이 개선되고 무시무시한 독재에서 벗어나 자유를 향유할 수 있으며, 신앙의 자유로 교회에서 마음껏 예배를 드리며 평양이 옛 명성 제2의 예루살렘을 회복하는 일이 얼마나 거대한 경사인지를 내세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통일 전후를 염두에 둔 국가의 경제 전략은 필히 요구된다. 그렇지만 교회가 통일을 위해 물질적 준비를 강조한다면, 바람직하지 않다 하겠다. 국가가 할 일을 국가가 하고, 교회가 할 일은 교회가 나누어 하는 일은 전문화라는 관점에서 바람직하다. 오늘날 한국인은 2014년도를 기준으로 뉴스코리아 설문조사에 따르면 반 정도가 통일을 원하는데(57.7%), 연령이 높을수록 통일을 원하는 반면, 젊을수록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대가 40%, 30대는 50.8%로 나타났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경제적 부담 때문이다. 무엇보다 통일을 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물신주의에 젖어 있음을 보여주는데, 한국교회마저도 물질 우선적 준비를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세상이 내세우는 가치관과 짝하는 것이며, 동시에 경제적 부담으로 통일을 원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교회도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보다 다른 관점에서 통일을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통일을 통한 남북갈등과 남남갈등의 극복과 사람의 하나 됨과 서로 함께 살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는 통일의 정신적 가치를 내세우며, 70년 동안 이념적으로, 문화적으로, 언어적으로 서로 이방인이 되어버린 현실을 인식하며 어떻게 사랑의 복음에 입각해서 서로를 받아들이며 오순도순 함께 살 수 있을 것인지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준비하는 데 더 심혈을 기울여야 하겠다. 사실 북한교회 재건 내지는 회복은 가장 우선적으로 한국교회가 바른 교회로 거듭나는 일일 것이다. 물질은 한국교회가 십시일반으로 거두어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함께 애쓰면 될 것이다. 선교 역사에서 볼 때도, 돈을 가지고 시작된 교회가 아니라, 복음의 능력으로 교회는 시작되었으며, 가난하였지만, 능력 있는 교회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오병이어의 사건은 교회가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보여준다 하겠다. <계속>

발제ㅣ주도홍 교수(백석대·기독교통일학회 명예회장·한국개혁신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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