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윤근일 기자]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과의 합병이 결국 무산됐다. 삼성그룹은 양사의 합병을 통해 조선, 건설 업종의 업황 부진을 탈출하겠다는 장밋빛 미래를 제시했으나 국민연금 등 주주들에게는 약발이 먹히지 않았다.

삼성중공업은 19일 "지난 17일까지 신청한 주식매수청구 현황을 확인한 결과,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이 행사한 주식매수청구 규모가 합병 계약상 예정된 한도를 초과, 삼성엔지니어링과의 합병계약을 해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회사측에 따르면 삼성엔지니어링에 대한 주식매수 청구금액은 7063억원으로 당초 정한 매수대금 한도인 4100억원을 초과했다. 합병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양사가 총 1조 6299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주식매수대금을 지급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삼성중공업은 "과도한 주식매수청구 부담을 안고 합병을 진행할 경우 합병회사의 재무상황을 악화시켜 궁극적으로 주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주식매수청구 행사 과정에서 드러난 시장과 주주들의 의사를 존중하고 이를 겸허히 수용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앞서 국민연금은 지난 17일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보유지분 각각 5.91%, 6.59%에 대한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했다. 주식매수청구권은 합병 등 주주총회에서 결정된 사안에 대해 반대할 경우 회사측에 소유주식을 매수하도록 요구할 수 있게 한 권리로 사실상 국민연금이 양사의 합병을 저지하고 나선 셈.

일단 합병 발표에도 양사의 주가 회복세가 예상보다 더뎠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삼성중공업의 경우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격은 2만7003원인 데 전날 2만5050원으로 마감, 1953원 차이다. 삼성엔지니어링도 주식매매수청구권 행사가격은 6만5439원, 전날 종가는 5만9100원을 기록, 6339원이 더 높다. 이는 양사의 합병에 따른 시너지가 회사측에서 기대하는 것만큼 크지 않을 것이라는 시장의 전망과 궤를 같이 했다. 그동안의 업황 부진으로 양사의 재무건전성은 쇠약해진 상황이다. 특히 부채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앞서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은 지난 9월 합병으로 부채비율이 증가할 것이라는 시장의 우려에 대해 적극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회사측은 양사가 합병될 경우 지난 6월말 기준 부채비율이 223% 수준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는 같은 기간 삼성중공업의 단독 부채비율 226%과 비슷한 수준이다. 박 사장은 "양사 부채 총계는 17조8000억원까지 증가하겠지만 자본 총계도 신주발행 등을 통해 8조원 수준으로 늘어나 회사측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주주 설득에 나섰지만 통하지 않았다.

이미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로 합병이 무산된 사례는 있다. LG그룹은 2008년 말 LG이노텍과 LG마이크론을 합병하려다 과다한 주식매수청구 대금으로 인해 합병계약을 해지했다. 또 현대자동차그룹도 2009년 초 현대모비스가 현대오토넷을 흡수합병하려다 주주들의 반대로 합병을 연기한 상태다. 당초 삼성중공업은 삼성엔지니어링과 합병을 통해 육상과 해상을 모두 아우르는 초일류 종합플랜트 회사로의 도약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밝히고 '2020년 40조원'으로 매출 목표를 설정했다. 하지만 삼성그룹은 조선·건설 업황 부진을 탈출하기 위해 합병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오히려 '둘 다 죽을 수 있다'는 시장의 우려에 밀려 결단이 좌초됐다.

삼성중공업은 "그러나 해양플랜트 분야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 시장 지배력을 키우기 위해 두 회사간의 시너지 창출을 위한 협업은 지속될 예정"이라며 "향후 합병을 재추진할 지 여부는 시장 상황과 주주의견 등을 신중히 고려하여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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