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칠곤 목사ㅣ크로스로드 한인교회

인간은 삶을 살아가면서 성공과 실패라는 상황을 모두가 경험하게 된다. 자신이 노력한 결과에 대해 성공한 느낌을 갖는데 있어 누구나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린다. 그러나 자신이 계획한 것이 마음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실패한 것으로 생각되면 자신을 패배자로 여기며 분노한다.

삶의 고난이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지지 않지만 각기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너무나도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고난이 자신에게 주어지면 너무나 쉽게 포기하고 절망한다. 이와 반면 어떤 사람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실패를 또 다른 기회로 여겨 다시금 도전하는 사람도 있는 데 이런 것들을 하도록 움직이는 힘은 각 개인의 품성이나 신앙의 힘에 의해 위기를 기회로 여기는 경우다.

후자의 사람은 삶을 늘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며 도전적으로 바라본다. 글로벌 리더 삼성카드 최치훈 사장의 말 가운데 삶에 대한 희망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나의 열정은 진행 중이다.", "실패는 마침표, 고난과 절망은 쉼표이다.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본인이 마침표를 찍지 않으면 쉼표가 되고 성공의 끝을 만나게 된다."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 도전하기 위해 어두움의 터널에서 나온 사람도 어둠속에서 계속 갈등하고 있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얼마간은 자신이 미울 수 있고 환경에 대해 불평불만을 할 수 있다.

삶에서 오는 분노가 통제가 되지 않으면 분노하는 사람 뿐 아니라 주변 공동체가 무너지는 현상이 일어난다. 영화배우 김인권이 주연으로 나오는 <신이 보낸 사람>이라는 영화를 보면 분노가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력을 주는지 알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의 생활의 실상과 지하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 놓았다는 점에서 누구든 한번 쯤 볼 만한 영화이다. 배경을 보면 두만강 국경지대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탈북과 신앙에 대한 것이다. 철호라는 사람이 탈북을 했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마을 주민을 데리고 다시 탈북하여 남한으로 가려고 계획을 세운다. 그 이유는 철호가 자신의 아내 영미가 정치범 수용소에서 하나님을 부인하지 아니하였고 자신과 함께 신앙생활을 해 왔던 동네 사람들을 고발하지 아니하였기에 비참하게 죽는다. 그 과정에서 철호는 가까스로 혼자 살아온 것에 대한 양심에 가책을 받는다.

그 후에 그는 홀로 탈출하게 되고 중국에서 큰돈을 마련하여 마을에 돌아와 지하교회를 운영하며 주민들을 설득하여 탈북을 계획하는데 뜻밖에 그 사실들이 군인들에게 알려진다. 군인들에게 동네 주민들이 한 사람 한 사람 신앙인이라는 것을 밝혀지면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점점 죽음의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동네를 지키는 한 군인은 철호에게 묻기를 "남한이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까?"라는 말에 철호는 "내가 알기로는 북한은 아닌 것 같다." 철호의 친구는 동네 사람들이 군인들에게 하나씩 잡혀 갈 때마다 너무나 두려워 철호에게 분노를 한다. "니가 여기에 다시 오지 아니하였다면 사람들이 죽지 않았을 것이다.", 동네에 사는 한 어른은 자신의 아내가 무섭게 고문을 받고 죽은 것을 보고 철호를 군인들에게 고발하고 칠곡 교회에서 김정일을 찬양하는 신앙간증을 하였지만 자신의 위선적인 모습에 괴로워한다.

철호는 위선적인 아저씨의 행동과 동네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에 대해 극심한 분노를 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총살을 당하는 과정 속에서 천국에 간 아내가 "하나님은 우리를 버린 것 같다"라고 말을 하고 절망에 빠진 남편 철호에게 위로를 해준다. " 여보! 애쓰지 마세요 그만하면 됐습니다." 라고 말을 하자 죽는 순간에 철호는 웃우면서 총살을 당한다.

영화를 보면서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도 북한의 현실과 자신들을 고발한 사람들에게 분노를 하게 된다. 그 분노를 보면서 분노의 근원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두려움이 좀비처럼 사람들 심령에 자리 잡게 되었다.

분노의 바이러스가 '죽음의 두려움'이 될 때 사람들은 폭력을 행하게 되며 그것이 사회를 혼란 속으로 몰아간다. 심리학자들은 분노의 근원의 시작을 엄마의 자궁 속에서 자라는 태아에서 부터 시작된다고 말을 한다. 그래서 태교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임산부들에게 가르친다.

자궁 속에 자라나는 태아도 무언가에 의해 손상당할지 모르는 불안과 두려움을 늘 갖는 다는 사실이다. 태아나 성숙한 인격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것 분노의 뿌리와 바이러스는 확실히 두려움에서 시작 되는 것이며 이것이 사람들에게 방어 기제를 갖게 한다. 이러한 방어기제는 자기를 지키기 위한 교만, 믿었던 사람들에게서 실망하게 되면 의심과 관계를 단절하며 견딜 수 없으면 분노를 표출한다.

분노의 바이러스인 두려움은 반드시 치료 받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의학에서 환자에게 질병이 발생하면 환자의 몸에 열을 제어 보는 일을 먼저 한다. 그 이유는 바이러스는 열을 동반해서 주어지기 때문이며 이것은 곧 병원균에 노출 되었다는 것이고 이미 바이러스나 세균이 몸에 감염이 되었다는 증거이다. 이것을 위해 의사들은 피 검사를 하며 그 병원균을 이길 항체를 찾고 심한 환자 같으면 병원균과 싸울 백혈구의 치수가 얼마인지를 확인한다. 이에 따라 항생제를 사용하여 힘들어하는 환자들이 싸울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바이러스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발견해야 한다. 그래야만이 좌절과 절망의 고통의 아픔을 이겨 낼 수 있다.

사람들이 뭔가에 있어서 분노하는 근원이 되는 바이러스는 다양하다. 그러나 분노의 깊은 뿌리를 바라본다면 그것은 두려움의 바이러스나 세균이다. 이러한 두려움은 현실에 삶이 너무나 절망적이며, 그 절망의 무게가 너무나 무거워 미래를 향해 나아갈 빛이 전혀 보이지 아니한 것이며, 때로는 지나온 과거에 상처까지 삶 속에서 솟아오르게 된다. 이것을 그냥 내어 버려두어서는 분노의 바이러스는 유행성 병처럼 개인 뿐 아니라 사회적인 병을 가져 온다. 이러한 사회적인 병의 증상은 '묻지마 범죄', '무신론', '집단적인 이기주의', '의심과 불신 그리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은 두려움이라는 바이러스가 각기 사람들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분노의 근원인 두려움은 분명 하나님의 형상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귀의 속성에서 오는 것이다. 마귀는 사람들에게 승리보다는 패배자라는 인식을 심어주기를 바라며 그것을 통해 마음속 깊은 곳에 상처를 갖게 하고 자신을 믿도록 하게 한다. 이것을 이길 힘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으면 이것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와 간구를 드려야 한다. 그러면 삶의'고난과 절망을 인생의 쉼표'로 여기며 살아갈 수 있다.

글ㅣ김칠곤 목사(크로스로드 한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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