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작은 여우를 잡으라
성경
아가 2장 15절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에는 아름다운 포도원이 등장합니다. 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찾아왔습니다. 아가서 2장 11절과 12절은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라고 말씀합니다. 차갑게 얼어붙었던 땅에서 새싹이 올라오고 포도나무에도 꽃이 피었습니다. 이제 조금만 지나면 열매를 기대할 수 있는 계절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장면 한가운데서 뜻밖의 명령이 나옵니다. “작은 여우를 잡으라.”
왜 하필 꽃이 피는 계절에 여우를 잡으라고 하셨을까요? 그것도 사자나 곰처럼 크고 위협적인 짐승이 아니라 왜 ‘작은 여우’입니까? 바로 여기에 오늘 말씀의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무너뜨리는 것은 언제나 거대한 사건만이 아닙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작은 말 한마디와 작은 거짓말, 작은 욕심과 미움, 작은 상처와 타협이 쌓이면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소중한 포도원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 먼저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내 포도원에는 지금 어떤 작은 여우가 들어와 있는가?”
본론
아가서는 ‘노래 중의 노래’, 곧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는 의미를 가진 책으로, 일차적으로는 사랑하는 남녀의 관계를 시적인 언어로 노래합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에서 남편과 아내, 신랑과 신부의 관계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이미지로도 사용됩니다. 이사야 54장 5절은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고 말씀하고, 에베소서 5장 25절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포도원이 있습니다. 내 믿음이 포도원이고, 가정과 부부관계가 포도원이며, 자녀와의 관계와 우리가 섬기는 교회,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도 포도원입니다. 그런데 꽃이 피었다고 저절로 열매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꽃이 열매가 되기까지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명령합니다. “작은 여우를 잡으라.”
1. 첫째, 작은 여우를 무시하지 마십시오.
본문은 단순히 여우라고 하지 않고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라고 말씀합니다. 여우는 사자처럼 정면으로 공격하기보다 은밀하게 포도원에 들어와 어린싹과 꽃을 해칩니다. 특별히 ‘작은 여우’라고 한 것은 작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고, 발견하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쉽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이 정도쯤이야.” “한 번인데 뭐.” “나중에 고치면 되지.” 그러나 바로 이런 생각이 위험합니다. 야고보서 3장 5절은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라고 말씀합니다. 거대한 산불도 작은 불씨 하나에서 시작됩니다. 건물도 작은 균열을 계속 방치하면 위험해집니다. 신앙과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기도를 하루이틀 쉬었을 뿐이고, 말씀 읽기를 조금 미루었을 뿐이며, 누군가에게 작은 서운함을 품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작은 여우는 처음부터 포도원 전체를 무너뜨리지 않습니다. 작은 틈으로 들어와 조금씩 손상시킵니다. 관계에서도 서운함을 풀지 않으면 마음의 거리가 생기고, 거리가 생기면 대화가 줄어들며, 대화가 줄면 오해가 생기고, 오해가 쌓이면 불신이 됩니다. 교회에서도 서운함이 험담이 되고, 험담이 편 가르기가 되며, 편 가르기가 불신으로 이어지면 결국 공동체의 분열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작은 여우는 작을 때 잡아야 합니다. 성경에서도 처음에는 작아 보였던 것을 방치하다 큰 문제로 이어진 경우가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어느 날 갑자기 예수님을 팔아버린 사람이 된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2장 6절은 그가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갔다고 기록합니다. 마음속 탐욕을 방치하다 결국 은 삼십에 예수님을 넘겨주는 자리까지 갔습니다. 그러므로 작은 죄란 중요하지 않은 죄라는 뜻이 아닙니다. 작아서 위험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작기 때문에 방심하게 만들어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작은 여우는 무엇입니까? 먼저 말의 작은 여우입니다. 잠언 18장 21절은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순간적으로 던진 한마디가 상처가 되고, 상처가 쌓이면 마음의 벽이 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은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더러운 말’은 단순히 욕설이나 음란한 말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원어에는 썩고 부패하여 유익하지 못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의 마음과 관계를 썩게 만드는 말입니다.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를 옮기는 말, 뒤에서 사람을 흉보는 말, 비꼬고 조롱하는 말, 사실이라 하더라도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해 사용하는 말은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어서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성숙한 신앙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작은 여우는 서운함과 미움입니다. 처음에는 작은 섭섭함이지만 풀지 않고 오래 담아두면 미움과 분노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5절은 이것을 “쓴 뿌리”라고 표현합니다. 에베소서 4장 26절과 27절도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큰 문이 아니라 작은 틈 하나가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중독도 작은 여우가 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하고 잠깐만 하려고 하지만 어느 순간 그것 없이는 견디기 어려워집니다. 스마트폰과 쇼트폼 영상, 게임, 음란물, 쇼핑이나 도박성 행동뿐 아니라 사람의 인정과 관심에도 중독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6장 12절에서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내가 이것을 사용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것이 나를 지배하고 있는가?”
교만도 작은 여우입니다. “내가 맞아, 내 생각이 옳아, 왜 나를 인정하지 않지?”라는 생각이 반복되면서 마음이 높아집니다. 잠언 16장 18절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말씀합니다. 특별히 우리의 교회라는 포도원에도 작은 여우가 들어올 수 있습니다.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은 반드시 밖에서 들어오는 거대한 핍박만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작은 것들이 공동체를 병들게 할 수 있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를 옮기는 험담, 풀지 않고 마음에 쌓아두는 서운함, “누가 누구 편이냐”고 나누는 편 가르기, 다른 사람이 인정받는 것을 기뻐하지 못하는 비교와 시기, 직분을 섬김이 아니라 대접받는 자리로 생각하는 교만, 예배와 말씀을 너무 익숙하게 여겨 감격을 잃어버리는 영적 무감각, 그리고 “누군가 하겠지” 하며 공동체의 아픔을 외면하는 무관심이 모두 작은 여우가 될 수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에도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속한 자라”는 편 가르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고전 1:13)고 책망했습니다. 교회는 내 사람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는 곳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작은 여우를 발견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여우라고 부르면 안 됩니다. 험담하는 사람이 여우가 아니라 험담이 작은 여우이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 여우가 아니라 편 가르기가 작은 여우이며, 나를 섭섭하게 한 사람이 여우가 아니라 내 마음에서 자라나는 미움이 작은 여우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2. 둘째, 사람을 잡지 말고 문제를 잡으십시오.
오늘 본문에서 가장 강력한 동사는 “잡으라”입니다. 포도원을 허는 여우라면 내버려두지 말고 반드시 잡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잡으라고 했습니까? 사람이 아니라 여우를 잡으라고 했습니다. 가정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당신 때문이야, 우리 아이가 문제야”라고 말하기 쉽습니다. 교회에서도 “저 사람 때문에 교회가 어려워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에베소서 6장 12절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라고 말씀합니다. 남편이 여우가 아닙니다. 아내가 여우가 아닙니다. 자녀가 여우가 아니며, 목사가 여우가 아니고 성도가 여우도 아닙니다. 사람을 잡지 말고 문제를 잡아야 합니다. 부부 사이를 깨뜨리는 미움을 잡고, 부모와 자녀 사이를 갈라놓는 상처를 잡으며, 성도 사이를 이간하는 험담과 공동체를 갈라놓는 편 가르기를 잡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잘못을 덮어주라는 뜻은 아닙니다. 사랑은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8장 15절에서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뒤에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보다 당사자와 대화하고 회복을 구해야 합니다.
잘못은 바로잡되 사람은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왜 여우를 잡습니까? 여우가 미워서가 아니라 포도원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가정이 소중하기 때문에 자존심을 내려놓고, 관계가 소중하기 때문에 먼저 손을 내밀며, 교회가 소중하기 때문에 내 편을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본문도 “나를 위하여”가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나의 포도원’이 아니라 “우리의 포도원”이라고 말씀합니다. 가정도 나 혼자만의 포도원이 아니며 교회도 어느 한 사람의 포도원이 아닙니다. 우리가 함께 지켜야 할 포도원입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생겼을 때 “당신이 문제야”라고 말하기보다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우리의 포도원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찾아봅시다.”
3. 셋째, 꽃이 피었을 때 포도원을 지키십시오.
본문의 마지막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왜 지금 여우를 잡아야 합니까? 꽃이 피었기 때문입니다. 꽃은 아름답지만 아직 열매가 아닙니다. 연약하기 때문에 작은 충격에도 떨어질 수 있지만 잘 지켜내면 마침내 열매가 됩니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를 받았을 때 잘 지켜야 하고, 기도를 시작했을 때 지켜야 하며, 부부관계가 회복되기 시작했을 때 지켜야 합니다. 자녀가 마음을 열기 시작했을 때 더욱 조심해야 하고, 교회가 하나 되기 시작했을 때 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작은 여우를 어떻게 잡아야 합니까? 발견하고, 인정하고, 끊고, 채워야 합니다. 먼저 발견해야 합니다. 다윗은 시편 139편 23절에서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라고 기도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포도원에서 여우를 찾기 전에 먼저 내 마음의 포도원을 살펴야 합니다.
발견했다면 인정해야 합니다. “나는 원래 그래, 다른 사람도 다 그래”라고 합리화하면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은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회복은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인정했다면 끊어야 합니다. 여우 한 마리를 잡아도 담장에 난 구멍을 그대로 두면 또 들어옵니다. 반복되는 문제에는 반복되는 통로가 있습니다. 무엇이 내 분노를 일으키는지, 언제 중독의 유혹이 강해지는지, 누구와 있을 때 험담이 시작되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여우만 잡지 말고 여우가 들어오는 구멍까지 막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의지력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은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작은 여우를 이기는 근본적인 힘은 성령을 따라 사는 데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빈자리를 좋은 것으로 채워야 합니다. 미움을 버렸다면 사랑으로, 험담을 끊었다면 축복의 말로, 불평을 버렸다면 감사로 채워야 합니다. 중독을 끊었다면 말씀과 기도와 건강한 관계로 채우고, 게으름을 버렸다면 작은 순종을 시작해야 합니다. 비워진 포도원을 방치하지 말고 말씀과 기도와 성령으로 다시 채워야 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은 여우가 아니라 포도원에 피어 있는 꽃입니다. 여우가 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직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명령은 두려움의 명령이 아니라 사랑의 명령입니다. 소중하기 때문에 지키는 것입니다.
지금 내 삶에서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맡기신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해치고 있는 것이 보인다면 더 이상 작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오늘 결단하면 됩니다. 고쳐야 할 것은 고치고, 끊어야 할 것은 끊고, 화해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먼저 손을 내미십시오. 미루지 마십시오. 작은 여우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포도원 깊숙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은 결국 열매를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요 15: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한 가지부터 바로잡읍시다. 그것이 우리의 포도원을 지키는 첫걸음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맡기신 삶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무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을 보게 하시고 고쳐야 할 것을 미루지 않게 하옵소서. 성령께서 우리를 붙드시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최원호 목사 (서울 상봉동 은혜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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